경기는 나빠지는데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 정부가 ‘꼼수’ 논란을 일으키며 물가 지수 통계를 개편했어도 물가 상승률이 4%를 웃돈 채 한 해를 넘기게 됐다.

올 상반기엔 기름 값이 오르더니 연말 들어선 공공요금이 올랐다. 물가 상승 탓에 소비자들의 지갑은 계속 얇아지고 있다. 내년엔 국제 원자재값 하락과 경제 성장 둔화로 물가 상승률이 올해보다 떨어질 것으로 정부는 내다보고 있지만 민간에선 체감 경기는 별반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 12월 소비자 물가 4.2% 상승…고물가 지속

지난 9월을 기점으로 상승세가 주춤했던 물가가 연말 들어 다시 들썩이고 있다. 이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월비 0.4%, 전년대비 4.2% 상승했다. 지난달에 이어 이달에도 4%대 물가난(難)이 지속된 것이다. 통계청이 11월 발표한 통계개편 이전 구(舊) 기준을 적용하면 이달 물가상승률은 4.4%까지 치솟는다.

특히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상승률은 3.6%를 기록하며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근원물가상승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수요측 물가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연말 물가불안을 고조시킨 것은 잇따른 공공요금 인상이다. 올해 내내 정부의 물가안정 정책으로 인해 인상이 미뤄진 가스요금 등 공공요금이 연말에 한꺼번에 오른 것이다. 시내버스료가 6.8%, 지역난방비 11.2%, 도시가스료 14.7%, 전기료가 2.0% 올랐다. 실생활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각종 공공요금이 한꺼번에 오르면서 물가상승 압력이 다시 높아졌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경제주체들의 인플레 기대심리를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소비자들의 물가 전망을 보여주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6개월 연속 4%대 수준을 이어갔다. 인플레 기대심리가 높아지면 물가상승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낮아져서 각종 상품과 서비스가격의 인상을 당연하게 여기는 풍조가 만연해진다. 높은 물가상승 압력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 내년 물가 장담 못 해

전문가들은 연말에 나타났던 공공요금 인상이 내년 초까지 이어질 것으로 본다.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란 수지 악화가 커지는 것을 감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올해의 체감 물가 악화가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게 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 억제해왔던 공공요금 인상을 더는 미룰 수가 없기 때문에 내년에는 이 요인이 물가불안을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너무 높기 때문에 공공요금발 연쇄 물가상승 압박도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도 "기대 인플레이션이 높다는 게 가장 우려스럽다"며 "서비스, 공공요금에 이어 임금도 인상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올해 물가가 워낙 올랐기 때문에 내년엔 기저효과로 상대적으로 상승률이 둔화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한은은 내년 상반기 물가 상승률을 올해 전체(4%)보다 0.5%포인트 낮은 3.5%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물가 개편을 감안하면 이런 수치는 물가 부담이 완화됐다고 평가할만한 수치가 아니다.

이 연구위원은 "올해 바뀐 계산 방법으로 한 해의 물가 상승률이 4.0%가 나왔는데, 내년 초 3.2~3.4%를 기록한다 해도 이는 엄청나게 높은 것"이라며 "정부의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틀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물가 탓에 지갑은 계속 얇아져

내년 물가 상승률이 올해보다 둔화한다 해도 이미 올해 4%나 오른 상태이기 때문에 체감 경기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정 연구원은 "물가 상승률이 둔화된다 하더라도, 이미 대폭 오른 뒤에 또 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끼기에 안정됐다고 느끼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물가 고공행진으로 근로자들의 지갑은 얇아진 지 오래다. 한은·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실질임금(명목 임금을 물가지수로 나눠 100을 곱한 수치)은 271만8000원으로 지난해 말(281만6200원)보다 3.5% 줄었다. 실질임금 감소폭은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8년(-9.3%),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8.5%)에 이어 역대 세 번째를 기록하고 있다. 이번 분기도 실질임금이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가 안정의 책임을 지고있는 한은은 현재로선 별다른 도리가 없다.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경제 성장률 둔화가 불 보듯 뻔한데 이 시점에 금리 정상화(인상)를 재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경제 전망을 좋지 않게 보는 전문가들은 금리 인하 가능성도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한은이 금리 조정을 통한 물가 안정을 도모하긴 어렵다"며 "정부가 물가 관리에 나서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