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관(雷管)은 충격에 의해 발화해 폭탄이 터지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뇌관은 폭발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형태는 다르지만 경제에도 존재한다. 가공할만한 경제위기의 단초를 제공하는 위협 요인이 바로 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900조원에 육박한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비유되는 것은 그 문제의 심각성을 대변한다. 가계부채를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가계부채의 지금까지 추세를 멈추게 하거나 반대 방향으로 돌릴 수 있는 물꼬를 터야한다. 조선비즈는 가계부채의 현황과 문제점를 짚어보고 해결방안을 모색해 본다.[편집자주]

‘900조원에 육박한 가계부채·갈수록 빨라지는 증가속도·생계형 대출급증 등 질(質)의 악화’

한국 경제가 봉착한 가계부채 3대 난제다. 가계부채 문제가 개선은 커녕 악화일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유럽발 재정위기 여파와 소득 양극화, 고물가 등으로 인해 실질 소득이 제자리걸음하면서 가계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계부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빚을 진 사람이 돈을 벌어 갚는 것이지만 가계의 빚상환 능력이 더욱 취약해지고 있다.

◆ 가계부채의 3대 난제…규모·속도·질 ‘악화일로’

가계부채는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었다. 2003년 카드 사태와 신용불량자 문제로 한번 터지고 난 후 2005년 가계부채가 500조원을 넘어선 이래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꾸준히 지목돼 왔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과는 달리 정부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한 행동은 소극적이었다. 가계부채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올 때 마다 정부는 '가계의 자산이 부채보다 더 많다'며 가계부채가 안정적인 수준에서 관리되고 있다고 되뇌어왔다. 또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등 선진국과 비교한 통계들을 들이밀며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급급했다.

가계부채는 그 사이 급팽창했다. 1999~2010년 연평균 13% 증가해 경상 GDP(국내총생산) 증가율(7.3%)을 크게 웃돌았다. 2011년 9월말 현재 가계부채는 892조원이다. 자영업자 대출 100조원까지 합치면 사실상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이제는 통계로 봐도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GDP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9년 기준 85.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77%를 훌쩍 넘어섰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152.7%로 OECD 평균인 134.1%보다 더 높아졌다.

가계부채의 양도 문제지만 질은 더 큰 문제다. 2007년부터 생계형 대출로 분류되는 카드 캐피탈 상호저축은행 등 비은행권 가계대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는 저신용계층이나 은행 부채가 많아서 추가로 은행에서 대출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2금융권으로 몰렸다. 정부가 지난해 은행권의 가계대출을 억제하면서 생긴 이른바 ‘풍선효과’도 한몫했다. 2금융권 대출은 신용대출이 많고 금리가 높아 조그마한 외부충격에도 부실로 이어질 수 있는 취약점을 갖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중채무자들이 양산되고 있다. 2011년 11월말 현재 신용등급 7등급 이하인 사람중 돌려막기를 위한 대출상품을 3개 이상 쓰고 있는 사람이 100만명으로 추산된다.

김영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 부연구위원은 "가계 소득증가율보다 대출 증가율이 높은데 이는 경기악화로 소득이 줄어드니까 대출로 커버하는 생계형 대출이 늘어났다는 의미"라며 "내년에 경기가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문제가 발생한다면 2금융권 가계부채에서 터질 것"이라고 말했다.

◆ 가계부채의 교훈…'터지면 국가경제 위기로 전이'

전체 가계대출의 70% 이상은 자산을 충분히 보유한 신용등급 상위자들이다. 이들은 대출금액이 많지만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받고 있고 소득과 자산이 있는 사람들이다. 대외충격으로 주택 등 부동산가격이 크게 하락하는 일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문제는 고금리의 2금융권 대출을 쓰고 있는 저신용계층, 저소득계층이다. 이들의 대출은 소액이지만 그 수가 많다. 이미 양극화가 심화된 상황에서 올해 경기가 나빠질 경우 소득이 줄어들고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면 연체율이 높아지고 신용불량자 수가 늘어나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들 저신용계층, 저소득계층의 가계부채는 내년 총선 대선과 맞물려 사회문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금융권이 시급히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가계부채의 뇌관이 터지면 금융기관 부실→실물경제 붕괴→국가경제 위기라는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미국의 저축대부조합 부실 사태를 비롯해 북유럽 3국의 금융위기, 일본의 장기불황, 미국의 서브프라임사태 모두 과도한 가계부채가 출발점이었다.

가계부채는 금융시스템의 문제와 겹치면서 금융회사와 금융시스템 전반의 부실과 붕괴를 가져왔다. 국가의 근간인 가계가 흔들리고 금융시스템 마저 쓰러진다면 실물경제까지 파급돼 국가경제 전체에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 무디스 등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이 한국 경제의 최대 잠재적 리스크로 일제히 가계부채를 꼽고 있다는 사실을 곱씹고 곱씹어야 한다.

◆ 물꼬를 돌리는 전방위적인 행동에 나서야

가계부채 문제는 오랜 기간 동안 축적돼 온 만큼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은 없다. 가계부채가 문제된다고 해서 가계부채 규모를 갑자기 확 줄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내외 환경을 감안하면 급작스러운 금리인상 등 충격요법으로 가계부채를 잡는 것은 오히려 가계부채의 부실화를 가속화할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근본적인 해결은 경기가 좋아져 일자리가 늘고 가계 소득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런 거시적인 해결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지만 쉽지가 않은 실정이다.

이처럼 상황이 녹록치 않지만 가계부채의 3대 난제인 ‘규모·속도·질’을 개선할 수 있는 물꼬를 더 늦기 전에 터야한다.

정부는 우선 가계대출의 고질적인 구조인 만기일시상환방식을 원금분할상환방식으로 개선하기 위한 더욱 다양하고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금융권을 대표하는 은행들은 서민금융 지원 확대와 다중채무자 문제 해결 등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고 채권자 중심의 파산·회생제도와 연대보증제도에서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상황에 따라 정부는 과감한 재정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개별 가계들의 의식 개선도 요망된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대출을 받아 올바르게 자금을 운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학교 교육 단계에서 제대로 된 금융·신용 교육도 체계적으로 갖춰나가야 한다. 대출자가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도록 조장하는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감시 감독도 강화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