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허리가 날씬해야 건강하다지만 나라는 정반대다. 허리(중산층)가 계속 두툼해져야만 건강하고 튼튼한 사회다. 중산층의 비중이 높아야 소비 여력도 커지고, 안정적인 경제 운용이 가능하다. 그런데 '자본주의 3.0(시장주도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경제의 허리(중산층) 사이즈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중산층 비중이 가장 높았던 때는 1992년의 76.3%. 그런데 지난해 중산층 비중은 67.5%로 중산층 비중이 늘어나기는커녕 오히려 8.8%포인트 줄었다.

21년간 통신 대기업 A사에 다니다 지난 2009년 말 퇴직한 변모(47)씨는 1년7개월여 만에 연봉 6500만원의 중산층에서 탈락할 위기에 처했다. 퇴직금 2억6000만원은 통신 벤처회사에 투자했다가 부도나면서 전부 날렸고, 그 후엔 월 100만원 정도를 받으면서 일자리 4곳을 전전했다. 변씨는 "주위를 둘러보면 퇴직한 사람 10명 중에 다른 일로 성공적으로 옮겨간 사람은 1~2명밖에 안 되고 대부분 가난의 수렁에 빠지고 만다"고 말했다.

변씨처럼 중산층 탈락의 위기에 처한 가구가 늘면서 중산층 대열에 아직 남아 있는 923만가구가 불안에 떨고 있다. 한창 일할 나이의 중산층들은 높은 집값과 사교육비에 허덕이느라 노후를 위해 저축할 여력도 별로 없다.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 언제든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중산층을 옥죄어 가고 있다. '괜찮은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젊은 층이 중산층에 합류할 기회도 좁아졌다.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는 "우리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하는 중산층이 행복하지 못하고 만성 불안증에 시달린다면 한국은 '자본주의 4.0' 시대로 건강하게 발돋움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