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안정세였던 외채(대외채무)가 올 들어 빠르게 늘어나면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외국인이 한국 국채를 꾸준히 사들이고 있는데다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매도도 늘어나고 있지만 뾰족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외채 4000억 달러를 심리적 지지선으로 보고 있다. 지난 1분기 외채 증가속도를 감안하면 이미 넘었을 수도 있는 수치다.

◆ 외채 1분기 219억 달러 급증‥4000억 달러가 심리적 지지선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외채는 3819억 달러로 집계됐다. 외채 규모가 3800억 달러대를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4분기(3600억 달러)에서 219억 달러 증가한 수치다. 외채 중 만기가 1년 이하인 단기 외채는 지난 분기보다 117억달러 늘어난 1469억달러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외채는 국민총생산(GDP)의 30% 정도로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호주만해도 1조 달러를 넘는다. 하지만 지난 19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해외 신용평가사들이 우리나라의 외채 규모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는 만큼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정부는 외채 규모 4000억달러를 심리적 저지선으로 삼고 있다. 3개월 사이에 219억달러가 증가한 만큼 같은 증가 속도라면 4000억 달러가 넘을 수도 있다고 정부는 내다보고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지난 6일 기자들과 만나 “이같은 속도로 외채가 증가하면 4000억 달러를 넘을 수 있다”며 “경제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향후 넘을 수밖에 없겠지만 불요불급한 부분이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선제적으로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역외 NDF 매도· 외국인의 국채 매입 등이 단기 외채 증가 요인

정부는 단기외채 급증의 주요 원인으로 차액결제선물환(NDF)거래로 불리는 국내 비거주자들의 달러 매도를 꼽는다. 차액결제선물환거래는 게약할 때의 선물환환율과 만기가 됐을때 현물환율간의 차액만큼 달러로 정산해서 지급하는 형태다.

외국인이 지난해 4분기 선물환 8억2000만 달러어치를 순매수했지만 올해 1분기에는 113억4000만달러를 순매도했다. 국내 경제기초가 튼튼해지고 원화가치가 상승하면서 역외 외환시장에서 선물환 매도가 이어지고 있다. 원화가치 상승, 즉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하락하면서 외국인들이 환율 격차를 이용해 투기적 거래를 목적으로 선물환을 매도하는 것이다.

외국인들이 선물환을 매도하면 이는 국내 은행들이 선물환을 매입해 받아줘야 한다. 그런데, 국내 은행들이라고 해서 환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선물로 달러를 받는 것은 마땅치 않다. 국내은행들은 일단 선물환을 매입하는 대신 달러를 팔아서 위험을 피하는데(환헤지), 없는 달러를 팔 수는 없고, 외국 은행에서 달러를 빌려 팔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달러 차입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상반기에 조선사들의 수주가 활황이었던 것도 외채 증가 원인으로 작용했다. 올해 조선 업체의 수주 계약 총액은 지난해보다 115% 증가한 19조원을 넘어섰다. 삼성중공업이 10조원 규모의 LNG선 4척을 수주한 것을 비롯해 대우조선해양현대중공업이 초대형 컨테이너선 10척과 드릴십 2척을 각각 수주했다.

조선사들 역시 선박을 수주할 때와 최종적으로 선박을 인계하고 대금을 받는 시점이 2~3년 정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환율변동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선물환을 은행에 매도한다. 조선사들의 수주가 늘면서 선물환매도도 자연히 늘어났기 때문에 똑같은 방법으로 은행이 선물환을 사주고, 다시 환헤지를 하면서 단기 외채도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외국인들의 한국 채권투자가 늘어난 것도 외채 증가를 이끌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4일 발표한 외국인 채권투자동향을 보면, 6월말 현재 외국인 채권보유금액은 올 들어 6조7201억원 증가한 81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1월 이후 7개월만에 사상 최대치다. 특히 중국은 올해 들어서 2조1196억원을 국내 채권에 쏟아부었다.

◆ 선물환포지션한도 축소는 '하나의 변수'

정부는 외채 증가에 미리 대응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지난달 29일 기획재정부는 6개 국내 주요은행과 3개 외국계 은행의 고위관계자를 불러 단기외채 증가에 대한 정부의 우려를 전달했다.

하지만 외채 증가에 대응해 더 내놓을 대책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 정부의 고민이다. 단기외채 급증을 막기 위해 정부는 이미 지난 1일부터 한층 강화된 선물환포지션 한도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지나치게 선물환을 사들이거나 선물환을 파는 것을 방지하는 제도로, 선물환 포지션(사들인 선물환과 판 선물환의 차이)이 어느 한 방향으로 자기자본의 일정비율 이상이 되면 규제를 한다.

외국계은행 국내지점과 국내 시중은행들의 선물환포지션 한도가 지난 1일부터 각각 250%, 50%에서 200%, 40%로 축소된 만큼 정부는 당분간은 지켜봐야하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선물환포지션 한도의 추가 규제 가능성에 대해 “(선물환포지션 한도를 줄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만 하나의 변수가 될 수는 있다”며 “지난 1일부터 강화된 규제를 적용한 만큼 외채가 늘어나는 부분을 자세히 분석하면서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재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글로벌 자금흐름 및 외화자금의 국내 유출입 추이와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단기외채 급증세를 억제해 금융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부가 국내은행과 외국은행 지점의 선물환 포지션 한도를 축소하는 방안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있다.

더욱이 단기 외채 증가의 주범인 NDF를 직접 규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4년 정부가 외환 투기세력을 막기 위해 NDF를 팔 수 있는 거래한도를 90%로 제한했다가 한달 만에 규제를 철회한 바있다. 국내 외환시장과 역외 선물환시장간에 환율 격차가 발생하는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도 재임 중이었던 지난 5월 NDF 직접 규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최근 원 달러 환율이 하락하면서 외국인들의 채권투자는 줄어들 전망이다. 홍정혜 신영증권 채권 애널리스트는 "지난달 원 달러 환율이 1090원일때 외국인들의 채권투자가 늘었지만 ECB(유럽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는 등의 영향으로 환율이 1050원대로 하락하면서 국고채 비지표물에서 매도가 나오고 있다"며 "앞으로 채권매도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