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000660)의 새 주인 자리를 놓고 SK그룹과 STX그룹이 맞붙었다.

두 그룹 모두 세계 2위 반도체업체인 하이닉스를 사들여 새로운 성장동력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SK그룹은 그룹내 대표 선수인 SK텔레콤##이 단독으로, STX그룹은 해외 자본인 중동 국부펀드와 연합군으로 인수전에 나설 예정이다. 

그러나 양측 모두 사업적으로 시너지 효과가 별로 없는데다 반도체사업의 특성상 투자금이 막대하고 경기변동성이 크다는 게 고민거리다. 

또 양측은 하이닉스를 매력적인 매물로 보고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으나 실사를 통해 인수의 적정설을 면밀히 따져본 뒤 본입찰 참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어서 하이닉스 매각 작업이 순항할지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 SKT "수출사업 해보자" VS STX "M&A 통한 성장은 계속된다"

SK그룹은 성장에 한계가 있는 성숙단계의 통신과 정유 위주의 사업에서 탈피, 반도체라는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 특히 '내수 위주의 사업만 한다'는 컴플렉스를 가진 최태원 회장이 대표적 수출기업인 하이닉스 인수를 강력히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성장 기반 확보와 글로벌 사업기회 발굴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포석인 셈이다.

이동통신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은 국내 휴대폰 보급의 확산에 힘입어 막대한 이익을 내는 '황제기업'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국내 통신산업이 요금인하 등의 정부규제를 받아온 데다 가입자수가 예전 만큼 폭발적으로 늘지 못하게 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 부재의 갈증을 느껴왔다. SK그룹 관계자는 "반도체를 그룹 내 신성장 동력 사업으로 삼을려고 하이닉스 인수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는 STX그룹은 지난 10년 동안 끊임없는 인수합병(M&A)을 통해 회사의 덩치를 키웠다. 그 결과 해운·무역, 조선기계, 건설, 에너지 등을 주력사업으로 확보했다.

하지만 STX의 주력사업인 해운과 조선은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해운·조선이 동시에 불황기에 접어들면 그룹 전체의 실적도 휘청거렸다.

이종철 STX 부회장은 "STX는 해운과 조선 의존도가 90% 이상인데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사업 다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며 "하이닉스의 인수를 통해 신성장동력을 마련해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 SKT "현금 동원 문제 없다" VS STX "중동 국부펀드와 손잡는다"

시장에서는 하이닉스의 채권단 지분 15%를 인수한다고 가정했을 때 2조5000억~3조원의 인수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SK텔레콤은 인수자금 마련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올해 1분기말 기준으로 보유현금은 1조5000억원(단기금융상품 포함) 가량이다. 단말기 할부채권을 하나SK카드로 넘김으로써 향후 3년간 마련할 수 있는 현금이 3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STX그룹은 중동 국부펀드와 손잡고 인수전에 나선다. 자체 자금조달 능력에 부정적인 인식을 덜기 위한 전략이다. 그룹 전체의 차입금 규모가 7조원을 넘어서고 있어 인수자금과 투자비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적지 않다.

STX가 중동 국부펀드와 50대50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한다고 보면 하이닉스 인수에 필요한 돈은 1조3000억~1조5000억원 정도가 된다. 이종철 부회장은 "현금성 자산과 처분 가능한 우량 자산 매각을 통해 인수자금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차입금 없이도 충분히 인수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STX와 계열사가 보유한 현금은 3조원 가량이다. 또 STX대련의 기업공개(IPO)와 STX핀란드의 지분매각 등이 예정돼 있다.

◆ 하이닉스 인수 실익 있을 지는 의문

SK텔레콤과 STX가 하이닉스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하이닉스를 품에 앉았을 경우 어떤 실익이 있을지는 아직까지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하이닉스 메모리반도체 사업과 SKT 모바일·콘텐츠 사업의 시너지는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또 제조업인 반도체 사업의 경험이 없어 경영측면에서도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대표적 장치산업인 반도체의 특성상 해마다 수조원의 투자금이 들어가는 것도 큰 부담요인이다. 최근까지 유력한 인수후보로 거론됐던 현대중공업##이 인수전 참여를 갑자기 포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종철 STX 부회장은 "어느 정도 투자가 필요한 지는 실사과정에서 판단하겠다"며 "실제로 60조원(10년간 필요한 투자금)이라는 돈이 필요하고 우리가 감당할 수 없다고 보면 본입찰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