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국내 대기업이 만든 해외법인 5개 중 1개는 케이맨군도, 버진아일랜드, 홍콩 등 조세피난 지역에 설립된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30대 그룹(공기업 제외)의 해외 법인 중 조세조약 미체결국에 있는 해외 법인은 5월 말 현재 167개로 1년 사이 26개가 증가했다. 같은 기간 30대 그룹이 세운 전체 해외법인 수는 1942개로 130개가 늘었다. 신생 해외법인 20%가 조세피난 지역에 세워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조세피난 지역에 진출한 30대 그룹의 '숨은 계열사'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해외법인 수가 더 많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조세조약은 이중과세를 피하고 탈세방지를 위해 국가 간에 체결하는 것으로 6월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일본·영국 등 77개국과 조세조약을 체결했다. 미체결국가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대표적인 조세피난처로 지목한 버진아일랜드·모리셔스·파나마·케이맨군도·버뮤다·마셜군도 등이 포함돼 있다. 또 홍콩·대만·페루·괌·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콩고 같은 신흥경제 국가들도 조세피난처로 활용된다. 조세피난처의 경우 기업 소득에 세금을 거의 매기지 않고 회사 설립이나 외국환 업무를 규제하지 않아 다국적 기업들의 돈세탁 또는 비자금 은신처로 자주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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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가 가장 공격적으로 이용

30대 그룹 중 조세피난처에 가장 많은 해외계열사를 둔 그룹은 롯데로, 지난 1년간 4개가 늘어난 33개를 기록했다. 롯데그룹은 이에 대해 "탈세 의도가 전혀 없는 정상적인 영업활동"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롯데그룹은 작년 7월 조세회피지역인 케이맨군도에 본사를 둔 중국 홈쇼핑 업체 럭키파이를 인수하기 위해 케이맨군도에 SPC(특수목적회사)를 설립했다는 것이다. 계열사인 호남석유화학도 말레이시아 화학업체 타이탄을 인수했는데, 이 회사의 본사는 버진아일랜드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롯데 다음으로 삼성(30개)·LG(21개)·SK(20개)·현대그룹(8개)·동양(7개)·한화·STX·한진(각각 5개) 등의 순서로 조세피난처에 해외법인이 있었다. 삼성은 작년 홍콩에만 4개 법인을 추가로 세웠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대중국 교역 등 글로벌 기업활동을 하려고 홍콩 등지에 국외 법인을 뒀다"고 밝혔다. LG그룹은 "파나마에서 가전을 팔고, 마셜군도에서 자원개발을 하기 위해 법인을 각각 설립했다"고 말했다.

재산 빼돌리기 우려도 제기

세무 당국에서는 공개적으로 설립된 회사보다는 몰래 숨겨둔 페이퍼 기업들 중에서 비자금 창구 역할을 하는 회사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조세피난처 62개국으로 순유출된 금액이 2006년 554억달러에서 2010년 889억달러(약 95조원)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재계에서는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설립했다고 무조건 탈세를 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일방적인 해석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동욱 연구원은 "글로벌 기업이나 금융사들이 절세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조세피난처를 우리 기업만 못하게 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며 "탈세 목적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관련 기업과의 거래 관계, 자금 흐름, 채권·채무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