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작년 6월 부산저축은행이 1500억원을 유상증자할 때 정치권 인사가 개입했다는 단서를 잡고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시 증자(增資) 과정이 주목받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증자는 은행 건전성 지표인 자기자본비율(BIS) 문제 때문에 추진됐다. 건설경기 침체로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벌여놓은 개발사업에 줄줄이 제동이 걸리자, 대출을 회수하지 못하면서 BIS 비율이 급속히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BIS 비율이 8% 밑으로 떨어지면 한 번에 80억원 이상 대출이 어려워지고, 퇴출은 물론 자칫하면 불법대출이 들통난다는 위기감이 은행 대주주들 사이에 있었다고 한다.

삼성꿈장학재단과 포스텍이 장학기금 500억원씩 1000억원을 부은 증자에는 부산저축은행 대주주들과 고교 동문인 장인환 KTB자산운용 대표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KTB자산운용이 사모펀드를 모집하는 형태로 이 은행 우선주를 매입했다. 장씨는 부산저축은행이 중앙부산저축은행을 인수할 때 도왔고, 브라질 채권에 투자하도록 해 수익도 내줬다고 한다. 그는 삼성꿈장학재단의 기금관리위원이며 포스텍 자금운용 자문위원도 맡고 있다.

삼성재단과 포스텍의 기금관리위원을 동시에 맡고 있는 김일섭 전 안진회계법인 대표도 관여했다. 하지만 김씨는 "손실에 대비해 겹겹이 방어벽을 쳐두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것을 예상 못했다"며 "특히 장 대표가 사업상 부산저축은행과 10여년 관계를 맺어 외부 입김이 작용할 여지는 전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금융권에선 증자 당시 2000억원 넘는 부실대출이 발생해 투자부적격등급(BB) 상태였던 부산저축은행이 1000억원이나 되는 거액을 빨아들인 데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이 많다. 정치권에선 투자결정 당시 내부 의결절차 등이 비정상적으로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검찰 주변에선 브로커 박모씨가 접촉한 정치인이 증자에 힘을 써주는 대신 부산저축은행이 이 정치인 지역구의 대출 민원을 해결해줬다는 말도 돌고 있다.

삼성꿈장학재단과 포스텍은 두 재단이 연대해 부실한 부산저축은행에 투자를 권유한 KTB자산운용에 대해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31일 확인됐다. 삼성꿈장학재단 고위 관계자는 "작년 KTB자산운용이 투자를 권유할 당시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도 않았고 또 투자자금에 대한 사후 관리도 소홀히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두 재단은 소송을 대리할 법무법인을 이미 선임해둔 상태이며 검찰 수사가 일단락되는 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두 재단은 지난 3월 말 부산저축은행 투자손실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만 해도 "KTB자산운용이 기금을 운용하는 다른 자산운용사에 비해 월등한 수익을 내오긴 했다"며 일부 두둔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눈덩이처럼 커지자 확실하게 잘잘못을 가리자는 쪽으로 급선회했다.

KTB 장인환 사장은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로비설에 대해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펄쩍 뛰었다. 그는 "지난 3월 말 이미 검찰조사를 받았으며 아무런 혐의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