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한국 경제가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빈부가 뚜렷하게 분리돼 있다"고 지적했다.

30일 FT는 "분리된 한국 경제(South Korea: An economy divided)"라는 기사에서 "한국이 과거 독일처럼 급속한 성장을 이루면서 성공적인 수출주도형 성장 모델로 떠올랐지만, 실제로는 부자와 빈민 간의 격차가 심하고 내수 경제가 불균형하다"고 지적했다.

FT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같은 재벌 기업들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빠른 경제 회복을 이끌면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침체에 잘 대처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국가 경제의 급속한 성장이 중소기업 위기와 가계가 짊어져야 하는 부채 문제를 가렸다"면서 계층 간의 양극화가 더욱 악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FT 보도화면 캡처.

UBS증권의 던컨 울드리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거시 경제지표를 보면 계층 간 양극화를 감지할 수 있다”면서 “수출 지표는 강한 반면 내수는 약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현대차는 지난해 해외에서 18%의 매출 증가를 올렸지만, 국내에서는 6% 줄었다는 것이다.

한국이 중소기업보다 재벌기업을 선호하는 경향은 한국은행의 환율 시장 개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FT는 지적했다. 수출 대기업들이 일본 수출업체들에 비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이 원화 약세를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울드리지는 “환율 절상을 제한하는 것은 수출업체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내수 기반 기업들과 가계 소득이 희생자가 된다"며 "수출 재벌기업들을 선호하는 정책은 영원히 지속할 수 없다”고 밝혔다.

FT는 재벌기업들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중소기업을 압박하는 관습이 계속되는 한 양극화가 좀처럼 개선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싱가포르국립대의 장세진 교수를 인용해 “재벌 기업들이 해외에서 이익을 내지만 내수 시장에서는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내수 경제 성장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가 최근 들어 빈부격차 해소를 우선 과제로 보고 재벌기업들이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라고 압력을 주고 있지만, 아직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FT는 지적했다. FT는 경원대의 홍종학 교수를 인용해 "집권 초기에 정부는 친재벌 정책들을 통해 서민 경제까지 살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것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이후 정부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FT는 재벌 위주의 경제 성장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남은 중소기업들과 서민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FT는 한국자살예방협회의 김성일씨의 말을 인용해 “주요 지표를 보면 한국 경제가 좋아 보이지만 대부분의 일반인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며 “불완전한 사회안전망과 불안한 고용, 그리고 청년 실업은 높은 자살률의 배경이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자살률은 두 배로 늘어 10만명 가운데 31명꼴로 자살했다.

한편 FT는 높은 가계 부채율이 '시한폭탄'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소득 대비 146%까지 증가하면서 미국 가계가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질 당시의 가계부채율(138%)을 웃돌았다. 지난해에도 미국 및 영국 가계는 부채 상환에 치중했지만 한국 가계의 부채는 9% 증가했다. 4.2%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율(4월)로 인해 금리 인상 압력도 커지고 있다. 금리를 올리면 가계가 짊어지게 되는 부채 규모가 더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가계가 부채 상환에 애쓰면서 가처분 소득과 저축은 감소하고 있다고 FT는 설명했다. FT는 서울 도심의 점심시간이 이러한 현상을 반영한다면서 "6000원 짜리 식당밥 대신 1000원짜리 컵라면을 먹으러가는 직장인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썼다. 편의점의 컵라면 매출은 올 들어 30% 증가했으며 지난해 김밥 매출은 100%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