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금융지주회사 회장님들 좀 말려줘요."

금융위원회 실무자들이 최근 농반진반으로 하는 얘기다. 금융계의 '4대 천황' 때문에 금융위원회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것이다. '4대 천황'이란 강만수 산은금융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어윤대 KB금융 회장 등 MB(이명박 대통령)와 친분이 두터워 금융당국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금융지주회사 회장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왼쪽부터)강만수 산은금융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어윤대 KB금융 회장.

정권 실세(實勢)로 통하는 이들 4대 천황은 금융당국의 감독을 받는 을(乙)의 입장인데도, 갑(甲)인 금융당국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금융 민영화나 외환은행 매각 등 최근 금융권의 굵직한 이슈를 주무부처인 금융위가 아니라 지주회사 회장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금융위 관계자는 29일 "우리금융과 산은금융의 합병은 우리금융 민영화가 아니라 사실상 국유화이기 때문에 금융위 내부적으로도 반대 의견이 우세하다"면서 "하지만 강만수 회장의 인수 의지가 워낙 강해 감히 대놓고 반대 의견을 표명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금융위가 강 회장과 이팔성 회장 중간에 끼여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는 얘기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강 회장은 우리금융 인수에 적극적인 반면, 이 회장은 극력 반대하고 있어 금융위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만 본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지난 19일 김승유 회장이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유보한 금융당국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을 두고도 속앓이를 하고 있다. 당시 김 회장은 "금융당국이 책임 회피를 위해 시간만 끌다가 결국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면서 "이런 금융당국을 위해 세금을 내는 게 아깝다"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속은 부글부글 끓지만, 김 회장이 이 대통령 친구(고려대 경영학과 동기)인데 어찌하겠나"라며 "정권 바뀌면 두고 보자고 벼르는 선후배들이 많다"고 말했다.

어윤대 회장은 지난해 말 부실 저축은행 몇 곳을 인수해달라는 금융당국의 요청을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금융위 내부에선 "가뜩이나 저축은행 문제로 골치 아픈데 회장들이 자기 이해관계만 고집하고 있어 힘들다"고 적지 않게 불만을 토로한다. 지금은 저축은행 구조조정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회장들이 우리금융 민영화나 외환은행 매각 등으로 전선(戰線)을 확대하는 바람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해 밀어붙이는 '선택과 집중'이 안 된다는 것이다.

반면 금융당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휘둘린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전직 차관급 재무관료는 "금융당국이 소신과 책임을 갖고 업무를 집행해야 하는데 회장들이 정권 실세라며 먼저 눈치만 살피고 몸을 사린다"면서 "김석동 금융위원장조차 과거에 보여줬던 과감한 정책 판단 및 집행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