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후 3시 포항시 구룡포항. 약 1km에 이르는 부두에 80여척의 어선들이 촘촘하게 정박해 있었다. 갑판 위에 매달려 있는 큼직한 전구들이 오징어잡이 배임을 짐작게 했다. 하지만 고기잡이를 준비하는 어부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구룡포 해경 파출소에 따르면 구룡포항에 등록된 오징어 채낚이 어선 85척 중 이날 출항한 어선은 단 한 척도 없었다.

오징어잡이를 하는 김성호(43)씨는 자신의 배인 40t급 '남양호'에 앉아 바다를 쳐다보며 한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는 "3~5월에는 오징어 어장이 남해 쪽에 형성된다"며 "예년에는 그곳까지 나가서 오징어를 잡았지만 올해는 기름값이 너무 올라 두 달째 출어(出漁)를 아예 포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언제쯤 바다에 나갈 수 있을까? 너무 오른 기름값 때문에 출어를 포기한 어민 김성호씨가 포항 구룡포항의 오징어잡이 배에서 착잡한 표정으로 바다를 보고 있다.

어선용 면세 경유 가격은 작년 4월 1드럼(200리터)당 13만6000원에서 올 4월에는 19만7000원으로 드럼당 6만1000원 올랐다. 남양호를 몰고 구룡포에서 남해까지 한번 나갔다 오면 평균 10드럼(2000리터)의 기름이 든다. 남해 어장까지 이동해야 하고, 발전기를 돌려 전구의 불을 밝혀야 한다. 낚싯줄을 감아올리는 모터도 기름을 적잖게 먹는다.

작년 같으면 남해로 한번 출항하면 오징어 3000마리 정도를 잡았고, 그것을 팔아서 평균 5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기름값과 선원 15명의 조업비, 식비·수리비·선박·선원 보험료 등 부대비용을 제하고도 55만원 이상을 순수익으로 손에 쥐었다. 김씨는 "요즘엔 한번 출어하는 데 드는 10드럼 기름값이 작년보다 61만원이나 늘어 출어할수록 손해가 난다"고 말했다.

유가급등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기름에 의존해 살아가는 어민·화물트럭 기사·화훼농민 등 '유류 한계생활자'들이 심각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일 정유사들의 '손목 비틀기' 식으로 휘발유·경유 공급 가격을 일괄적으로 리터(L)당 100원 인하했다. 하지만 인하 효과는 매월 수천억원씩 이익을 올리는 대기업이나 기름값에 생업이 좌우되는 서민들에게 똑같다. 그러다 보니 고유가로 직격탄을 맞은 '유류 한계생활자'들은 전혀 체감하지 못한 조치였다.

◆하루 2만원 버는 화물트럭 기사

1t화물트럭을 운전하는 조만희(57)씨는 21일 아침 포항 남구청 주차장에 차를 대고 운전석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전날(20일) 밤 인천시 부평에서 기계제품을 싣고 19만원을 받았다. 밤을 꼬박 새우며 390㎞를 달려 포항까지 왔지만, 기름값과 고속도로 통행료, 식비를 제하고 그가 남긴 돈은 4만8000원이었다. 여기에 보험료와 차량 관리비까지 감안하면 하루 순수입은 2만2000원에 불과했다. 조씨는 "기름값을 줄이려고 대구 집에는 1주일에 한 번 정도 들어가고 찜질방 가는 돈도 아까워 차에서 주로 잔다"고 말했다. 정부의 유가보조 지원 제도도 큰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유가보조 카드로 할인(L당 330원)받을 수 있는 기름이 680L로 열흘치 물량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경남 김해시 진례면에서 장미 재배를 하는 김원윤씨는 “매일 오르는 기름값 부담에 장미를 내다 팔면 팔수록 손해”라며 한숨을 쉬었다.

◆장미 1송이당 100원씩 손해 보는 화훼농가

하우스 재배를 하는 화훼농가도 고유가의 직격탄을 맞았다. 김해시 진례면에서 36년째 장미농사를 지어 일본에 수출하고 있는 김원윤(62)씨는 요즘 장미 한송이를 팔 때마다 약 100원씩 손해를 보고 있다. 장미는 섭씨 20도 밑으로 내려가면 꽃이 제대로 피지 않는다. 김씨는 9900㎡(3000평) 규모 비닐하우스 13개동을 데우는 데 2~4월 기간 중 하루 평균 900L의 경유가 들어간다. 그런데 농업용 면세 경유 가격은 작년 3~4월 L당 평균 821원에서 올 3~4월에는 1073원으로 올랐다. 면세유 가격은 농업용과 어업용이 다르다.

김씨는 지난 21일 3000송이의 장미를 농협에 출하하고 90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기름값과 3명의 인건비, 농약값 등을 제하고 나니 29만원의 손실이 났다. 김씨는 "고유가에 일본 지진사태로 수출가격마저 떨어져 장미를 팔수록 적자가 난다"고 했다.

산업연구원 주현 중소기업 연구실장은 "유가에 취약한 생계형 자영업자들은 일반적으로 업계 경쟁이 심해 유가 인상분을 가격에 전가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자기손실로 떠안을 수밖에 없다"면서 "유가에 취약한 분야 종사자들의 생존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