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계열사 일제 세무조사에 대해 재계에선 이건희 회장의 "(현 정부가) 낙제는 면했다"고 한 발언에 대해 괘씸죄가 적용됐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삼성그룹은 이번 세무조사에 대해 "정기 세무조사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고, 국세청도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이 회장의 발언 이후 정부와 삼성그룹 간에 형성됐던 냉기류가 이번 세무조사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달 10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지난 10년에 비해 상당히 성장을 했으니 낙제점을 주면 안 되겠죠. 흡족하다기보다는 낙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 1월 24일 서울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열린 수출·투자·고용 확대를 위한 대기업 간담회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정치권과 정부는 이 회장 발언이 나오자마자 부글부글했다. 여권에선 이 회장 발언에 대해 "이 회장이 청와대 성적을 평가하는 채점자냐. 너무 오만하다"는 다소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정부 관계자들도 "삼성이 어떻게 컸는데,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느냐"며 이 회장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노출했다. 수출을 많이 하는 삼성그룹이 정부의 고(高)환율 정책으로 가장 큰 수혜를 누렸는데, 배은망덕하다는 것이다. 실제 환율이 1원 오르내릴 때 삼성그룹의 영업이익은 수백억원이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와 정부, 여권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자, 이 회장은 지난달 31일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활동을 위해 출국하면서 "내 뜻은 그게 아니다. 완전히 오해하신 것 같다"고 적극 해명에 나섰지만, 정치권의 불만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이 회장이 정치권의 반발과 세무조사 등 삼성그룹을 둘러싼 미묘한 기류를 감지하고 도피성 출국을 한 게 아니냐"고 말했다.

특히 이번 세무조사는 일상적인 조사와 다른 몇 가지 특징이 보여, 정기 세무조사라고만 볼 수 없다는 게 재계 해석이다. 국세청이 같은 그룹 계열사 2곳(삼성중공업·호텔신라)에 대해 같은 날 동시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삼성중공업의 경우 세무조사 기간이 105일로, 통상적인 조사 기간(2개월)보다 훨씬 길게 통보됐다. 강도 높은 조사를 예고한 것이다. 서울청 조사2국에서 세무조사를 맡은 호텔신라는 이건희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재계는 이번 세무조사가 삼성그룹 최대 주력사인 삼성전자로 확대될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7년 정기 세무조사 이후 아직까지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세무조사는 통상 4년 주기로 이뤄지고 있어, 삼성전자는 올해부터 세무조사 대상에 포함된다.

▲삼성그룹은 본지 4월 6일자 A2면 '낙제 발언 후 냉기류…계열사 2곳 같은 날 세무조사' 기사에서 이건희 회장의 출국과 관련, "이건희 회장은 예정돼 있던 국제스포츠 행사인 '스포트 어코드'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한 것"이라고 알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