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고지도자였던 덩샤오핑((鄧小平)은 지난 1992년에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고 말했다.

이후 20년이 지난 올해는 그의 발언을 전 세계가 절감하는 한 해가 됐다. 세계 희토류 공급의 90% 이상을 점하고 있는 중국이 이 자원의 수출을 쥐락펴락하면서 자원 무기화에 대한 우려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일본과의 영토 분쟁에서 희토류 수출 금지 조치를 통해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면서부터 희토류라는 생소한 단어는 언론에 빈번하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희토류는 스마트폰부터 하이브리드 자동차까지 현대의 첨단 기술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원료이기에 중국의 이러한 행보는 각 국의 경계를 높이고 있다.

중국 정부가 최근에도 일련의 희토류 수출 제한 방침을 발표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희토류 공급 우려는 내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불순물이 섞인 원석에서 정련(精鍊) 과정을 거친 희토류들. 맨 위 가운데부터 시계 방향으로 프라세오디뮴, 세륨, 란타늄, 네오디뮴, 사마륨, 가돌리늄.

◆ 희토류 수출 장벽 높이는 중국

지난 28일 중국 상무부는 내년 희토류 수출 물량을 올해보다 11.4% 줄인다고 밝혔다. 상무부는 내년에 자국의 31개 기업에 대한 희토류 수출 할당량을 1만4446톤으로 배정했다. 기업 수는 올해 22개에서 늘었지만, 물량은 1만6304톤에서 줄었다. 야오지엔 상무부 대변인은 지난 15일에 "각 정부 부처들이 내년 수출 물량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었고, 열흘 남짓 후에 이런 조치가 발표됐다.

수출 물량을 제한하는 것에 앞서 수출 관세도 인상하는 등 중국 정부는 희토류 수출을 전방위적으로 통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 재정부는 지난 16일 일부 희토류에 대한 수출 관세를 내년 1월1일부터 25%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재정부는 세금 인상에 대해 특별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지만 궈센증권의 펑보 연구원은 "관세 인상은 희토류 무역을 규제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올 하반기에도 희토류 수출 물량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2% 줄인다고 밝히면서 희토류 가격 급등을 촉발했다. 전 세계 희토류 공급의 97%를 지배하고, 희토류 매장량의 37%를 차지하는 중국이 수출 장벽을 높이는 것은 공급 우려를 심화시킬 수 밖에 없다.

중국은 낮은 인건비와 느슨한 환경 규제를 기반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희토류 생산국으로 올라선 지 오래다. 미국의 경우 지난 1960년대 중반에 캘리포니아주의 마운틴패스에서 희토류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1984년에는 세계 희토류 생산을 독점했지만, 중국이 싼값에 희토류를 공급하면서 1996년부터 최대 희토류 생산국의 자리를 뺐겼다.

◆ 희토류 전쟁 어떻게 시작됐나?

'희토류 전쟁'은 지난 9월 일본과 중국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영유권 분쟁을 벌이면서 점화됐다. 당시 일본은 영유권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중국인 선장을 구속했는데, 중국이 희토류 수출 금지라는 강수로 맞대응하자 중국인 선장을 풀어줬다. 중국은 경제적인 힘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고 밝혀왔으나, 결국 자원을 무기화해 일본의 항복을 받아냈다.

중국은 10월에는 미국과 유럽에 대한 희토류 수출도 중단했다. 특히 미국에 대한 금수 조치는 보복 대응의 성격이 짙었다. 미 무역대표부(USTR)가 중국의 녹색산업 보조금 문제를 조사하겠다고 밝힌 직후 희토류 수출을 금지한 것이다. 일련의 희토류 금수조치는 뉴욕타임스(NYT)의 보도로 알려지게 됐다. 중국은 이 같은 보도에 대해 부인하고 있지만 실제로 통관 수속을 늦추는 방식으로 수출을 통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은 희토류 금수 조치에 대한 국제적 압박이 심화할 조짐을 보이자 지난 10월 말 희토류 수출을 재개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방중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금수 조치를 종료한 것이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방중 직전에 호놀룰루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희토류 금수 조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겠다"며 중국을 압박하는 언급을 했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금지는 희토류 자원 확보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이 때문에 지난달 미국과 일본은 희토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고위급 협의기구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어 한국과 일본도 희토류 광산 개발, 재활용 기술에 공조하기로 했다.

국제적인 제재가 추진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주 "중국은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지 말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했다"며 "미국은 (이 문제와 관련해) 국제 무역 분쟁을 다루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 희토류가 뭐기에

희토류는 란타늄, 세륨, 네오디뮴 등 란탄(lanthanum)계열 15개 원소(원자번호 57~71번)와 스칸듐, 이트륨을 포함한 17개 원소를 일컫는다. 이름처럼 존재 자체가 희소하지는 않지만, 경제적인 채굴이 가능한 만큼 집중돼 있는 곳을 찾기는 어렵다.

희토류는 21세기 거의 모든 첨단 제품에 사용된다. 컴퓨터, DVD 플레이어에서부터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배터리, 전기차 모터용 자석, 풍력 터빈 등에 두루 쓰인다. 전통적인 에너지 분야에도 사용된다. 희토류는 중질유를 휘발유로 정제하는 데에도 쓰인다.

톰슨 로이터에 따르면 중국의 희토류 보유량은 세계 최대인 3600만톤으로 추정되고 있다. 독립국가연합(CIS)(1900만톤), 미국(1300만톤), 호주(540만톤) 등도 희토류를 보유한 주요 국가로 꼽힌다. 이 밖에 인도, 말레이시아, 브라질에도 소량이 묻혀 있다.

중국으로부터 희토류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는 일본이다. 중국이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에서 희토류 카드를 들먹인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희토류 수출량의 56%는 일본 기업이 사가고 있다. 이어 미국(17%), 프랑스(6%) 순이다.

중국이 독점하는 공급 구조를 깨기 위해서는 공급처 다변화가 필요하다. 스티븐 추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지난 15일 보고서에서 희토류 채굴이 위기에 처해있다면서 공급이 왜곡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대체재가 부족하다는 문제도 안고 있다면서 "글로벌 공급체인 다변화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희토류 채굴은 비용이 엄청나게 드는데다가 리드타임(생산부터 완성까지 걸리는 시간)이 최소 2년~10년 걸린다는 게 문제다. 희토류의 가치가 중요해지고 있음에도, 다른 국가들이 희토류 생산을 현저히 줄인 채 중국의 저가 공급에 의존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희토류 가격 급등

희토류 공급 문제가 불거진 이후 희토류 가격은 급등했다. 블랙베리와 같은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네오디뮴의 가격은 지난해보다 네 배가량 올랐다. 반도체기판 생산에 쓰이는 세륨의 가격은 지난 10월까지 6개월 동안 7배 올랐다.

희토류 가격 급등은 자원 확보에 대한 우려를 높이기도 하지만, 관련 기업들이 투자를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중국 기업을 제외하면 세계 최대 희토류 생산업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몰리코프는 앞으로 2년 내에 새 광산을 개척할 방침이다. 내년 하반기에 캘리포니아의 광산을 다시 열고 2012년말까지 20만톤의 희토류를 생산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일각에서는 희토류가 일반적인 인식만큼 희소하지 않기 때문에 우려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브리티시 지오로지컬 서베이(BGS)는 "세계는 희토류 고갈에는 직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최근 보고서에서 밝혔다.

BGS의 앤드류 블루워드 광물 부문 대표는 "희토류는 발견 초기에 찾기 어려워서 희소하다는 의미가 붙여진 것이지 실제로 희소하지 않다"며 "희토류 원소들은 은보다도 매장량이 많다"고 말했다. 아울러 현재의 매장량 수치는 믿을만한 게 못된다고 지적했다. 희토류는 모든 대륙에 분포돼 있고, 다만 상대적으로 편중된 원소가 있을 뿐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