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지홍 금융팀장

'2강(强) 2약(弱).'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국내 최대 민간금융그룹인 KB금융 차기회장 선출 전의 판세가 드러나고 있다. 오는 15일 실시되는 최종 면접 대상자로 추천된 어윤대(66) 국가브랜드위원장, 이철휘(58)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이화언(67) 전 대구은행장, 김석동(58) 농협경제연구소 대표 등 4명 중 어 위원장과 이 사장이 2강으로 경합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 위원장과 이 사장은 사외이사 9명으로만 구성된 회장후보추천위원회(위원장 임석식 서울시립대 교수·이하 회추위)의 1차 투표 집계 결과 공동 1위를 기록했다. 두 사람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초접전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화언 전 대구은행장과 김석동 대표는 1차 투표에선 2약으로 분류됐지만 향후 경쟁이 과열돼 돌발사태가 발생할 경우 유력 후보군으로 다시 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윤대 위원장과 이철휘 사장의 양강(兩强)구도

지난 4일 1차 투표에선 어 위원장과 이 사장이 각 35점으로 공동 1위에 올랐고, 이 전 행장이 16점, 김 대표가 11점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1차 투표는 9명의 회추위원이 각각 1순위부터 5순위까지 5명의 후보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1순위로 추천되면 5점, 2순위 4점, 3순위 3점 식으로 점수를 계산해 합산했다. KB금융에 정통한 소식통은 "당초 어 위원장이 압도적 표차로 1위를 기록할 것이라는 이른바 '어윤대 대세론'이 우세했는데 1차투표 결과만 보면 이철휘 사장이 상당히 선전(善戰)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1차 투표 결과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어 위원장과 이 사장이 각각 몇명의 회추위원으로부터 1순위로 추천됐느냐는 점이다. 이는 본선에서 KB 회장을 선출하는 방식이 9명의 회추위원이 각 1명의 후보를 추천하는 '1인1표제'이기 때문이다. KB 회추위는 오는 15일 최종 면접 대상자 4명에 대한 인터뷰를 마친 후 투표를 통해 9명 중 6명 이상의 표를 얻은 후보 1명을 최종 회장후보로 선출하게 된다. KB 회추위 관계자는 "어차피 본선에선 회추위원이 1명밖에 추천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선에서 2~5순위로 추천된 후보는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본지 취재 결과, 1차 투표에선 어 위원장과 이 사장이 각 4명의 회추위원으로부터 1순위 추천을 받았다. 9명 중 나머지 1명의 회추위원은 이화언 전 행장을 1순위로 추천했다. 어 위원장과 이 사장은 총점뿐 아니라 1순위 추천 수에서도 동률을 기록하는 초박빙의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 위원장과 이 사장은 최종 면접까지 남은 일주일 동안 이화언 전 행장을 1순위로 추천한 회추위원 1명 '공략'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팽팽한 경쟁구도에서 일단 회추위원 숫자에서 5대4로 한발 앞서는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KB 관계자는 "KB 회장 선출에 필요한 정족수는 6명이지만, 3차투표까지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 과반수 득표자가 최종 후보로 선출된다"고 말했다.

민(民)과 관(官) 출신의 대결

어 위원장과 이 사장의 경쟁을 민(民) 출신과 관(官) 출신의 대결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어윤대 위원장은 고려대 총장 출신으로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다. 재무관리를 전공한 금융전문가로 고려대 경영대학원장, 초대 국제금융센터 소장, 금융통화운영위원, 한국경영학회 회장 등 학계와 금융계 요직을 두루 거쳤다. 글로벌 금융회사로 도약하려는 KB금융 CEO에 필요한 국제감각과 업무추진력을 갖췄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경영학과 2년 후배로 현 정부 들어 초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등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측근 실세라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후보들에 비해 KB 회장직 도전의사를 늦게 밝혔고, 민간영리기업을 경영한 경험이 없다는 것도 약점으로 꼽힌다.

이철휘 사장은 지난해 12월 KB 회장 최종 면접대상에 포함됐었다. 이번이 두 번째 도전이다. 그만큼 KB금융 회장직을 오래 준비해온 것이 강점으로 꼽힌다. 경기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행시 17회로 공직에 입문해 재무부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관료시절 일본 재경관과 ADB(아시아개발은행) 이사 등 해외 경험을 많이 쌓아 국제통으로 인정받는다. 2008년 1월 공직에서 물러난 후 금융공기업인 캠코 사장을 맡아 저축은행의 부실PF(프로젝트파이낸싱) 매입과 해운업체 선박 인수 등을 통해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한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지명도와 중량감에서 어 위원장에게 밀린다는 평도 있다.

청와대와 금융당국 분위기

두 후보는 모두 국내 선도금융그룹인 KB금융을 맡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두 후보 모두 '관치금융' 논란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측근인 어 위원장과 마찬가지로 이 사장 역시 이 대통령 측근인 김백준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인척관계(처남)이다. KB금융은 지난해 금융당국의 황영기 회장 징계·사퇴→강정원 행장 회장 내정자 선출·사퇴 사태를 거치며 관치금융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 중 누가 회장으로 선출되더라도 "정권의 도움을 받았다"는 꼬리표를 떼기 어려운 구조다. 1차 투표에서 3위를 한 이화언 전 행장도 현 정부와 가까운 TK(대구·경북)-고려대 출신이다. 김석동 대표는 "KB 회장 최종 면접에 응하겠다고 수락한 적이 없다"며 한발 물러서 있는 상태다. 그는 "경기고 선배인 어 위원장과 경쟁하지 않겠다"는 뜻을 수차례 밝혀왔다.

그동안 금융권 인사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청와대와 금융당국은 이번 KB 회장 선출에 '중립'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청와대는 지방선거 패배 이후 정국 수습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고, 금융당국도 작년 연말 강정원 회장 내정자의 사퇴 이후 관치금융이란 역풍에 시달렸기 때문에 이번 KB 회장 선출에 선뜻 나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청와대나 당국이 교통정리에 나섰다면 현 정부와 관련 있는 어 위원장이나 이 사장이 모두 출마했겠느냐"면서 "정부 차원에서 미는 후보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회추위 관계자는 "KB금융은 정부 지분이 단 1주도 없는 순도 100%의 민간 금융회사"라며 "지역이나 학연, 정권과의 친소관계보다는 누가 KB금융을 잘 이끌어갈 적임자인가가 중요하다"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