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로 지구촌 곳곳에서 기상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극지나 고산 지역의 빙하가 사상 최대로 녹고 있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최근 스위스 연구진이 스위스 알프스 지역의 빙하가 지금보다 온도가 낮은 1940년대에 더 빨리 녹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빨리 녹고 있다는 세간의 통념에 반하는 연구여서 전문가들이 주목하고 있다.

알프스 빙하는 1940년대에 가장 빨리 녹아

스위스 다보스 지역의 알프스 빙하는 매년 겨울이면 두꺼워졌다가 기온이 올라가는 여름이면 녹아 얇아진다. 고도 3000m의 알프스 빙하가 이처럼 주기적으로 덩치를 키웠다가 줄이는 과정은 1914년 이후 기록으로 남아 있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ETH) 수력학 및 빙하학과의 마틴 펑크(Funk) 교수팀은 "1914년 이후 94년간 알프스 빙하의 두께를 분석한 결과, 가장 빨리 빙하가 녹았던 시기는 1947년으로 확인됐다"며 "이는 지구 온난화로 알프스 빙하가 가장 빨리 녹는 시기는 최근일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측에서 벗어난 결과"라고 밝혔다.

스위스 알프스 빙하는 지금보다 1940년대에 더 빨리 녹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은 스위스 샤모니 지역의 빙하를 스키를 타고 오 르는 산악인 모습.

펑크 교수팀이 분석한 결과로는 알프스 빙하는 1940년대를 지나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꾸준히 두꺼워졌다. 이후 1990년대 들어서는 다시 빙하 두께가 얇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당시 기온이 지금보다 높았던 것은 아니다. 기온은 지구온난화로 지난 100년 사이 최근이 가장 높다.

펑크 교수팀은 알프스 빙하가 1940년대에 지금보다 급속도로 녹은 까닭은 아이로니컬하게도 공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스모그, 벤젠 계열의 공해 물질은 대기 중에서 미세한 입자로 존재하는데, 이를 에어로졸(aerosol)이라고 한다.

연구진은 "에어로졸 같은 공해 물질이 하늘에 많으면 햇빛 중에서 특히 강한 에너지의 단파장을 차단해 알프스 빙하가 느리게 녹는다"고 설명했다. 반면 1940년대에는 상대적으로 공해가 적어 단파장의 햇빛 투과율이 높았기 때문에 빙하가 빨리 녹았다는 것이다.

펑크 교수팀은 그 근거로 1940년대 여름 알프스 지역에 내리쬔 단파장 햇빛의 세기가 지난 94년간의 평균치보다 8% 강하다는 수치를 제시했다. 지난 10년간과 비교한다면 1940년대에 ㎡당 평균 18W(와트) 이상의 단파장 햇빛이 더 많이 지상에 내리쬔 것으로 확인됐다.

펑크 교수는 "보다 많은 단파장 햇빛이 1940년대에 알프스 산지에 많이 비추면서 지난 10년보다 빙하가 4% 정도 더 많이 녹았다"고 말했다.

지구온난화 부정하기엔 일러

그렇다면 에어로졸이 빙하가 녹는 것을 막는 고마운 존재라고 볼 수 있을까. 에어로졸의 햇빛 차단 효과는 이전부터 알려져 있다. 지난해 영국 과학자들은 성층권에 에어로졸을 분사해 햇빛을 막아 지구온난화를 늦추는 지구엔지니어링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장의 굴뚝이나 자동차, 땔감을 때면서 발생한 에어로졸은 그 자체가 공해 물질이어서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 또한 에어로졸이 대지를 냉각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강수량을 변화시켜 가뭄과 홍수 같은 기상이변을 불러온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현재로선 좋게 볼 것은 아니란 말이다.

이번 연구 결과가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홍성민 박사는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급속도로 녹고 있다는 설명은 지구촌 전체의 평균적인 수치를 말하는 것이지 모든 지역의 빙하가 다 전례 없이 빠르게 녹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는 빙하가 더 두꺼워진다는 보고가 있다"고 말했다.

또 홍 박사는 "빙하 두께의 결정 요인에는 햇빛의 세기 말고 강수량 같은 다른 요인도 많아서 이번 스위스 연구진의 연구를 설명할 수 있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펑크 교수팀의 마티아스 후스(Huss) 박사도 "이번 연구 결과로 최근 10년간 지구촌 빙하가 유례없이 빨리 녹고 있다는 전형적인 주장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면서도 "그렇다고 이번 연구가 지구 온난화가 가져올 문제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지난달 3일 국제학술지 '지구물리연구지(Geophysical Research Letters)'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