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차를 바꾸기로 한 회사원 이주영(여·41)씨는 국산 중형세단을 살지, 수입 경쟁모델을 살지 고민 중이다. 이씨는 "국산 중형세단도 옵션을 전부 갖추면 3000만원에 달하기 때문에 3000만원대 수입차를 사는 것에 저항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디자인, 안전·편의사양을 비교해보고 마음에 드는 쪽으로 고를 생각"이라고 말했다.

수입차 중에서 국산차의 점유율을 노리는 '국산차 킬러(Killer)'가 늘어나고 있다. 국산차가 대형화·고급화에 주력하면서 가격이 계속 오르자, 일부 수입차들이 국산차와 정면승부를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작년까지만 해도 수입차 업계 동향에 무관심했던 현대차 국내영업본부가 최근에는 도요타 등 일본 업체의 판매동향을 하루 단위로 체크하는 등 바짝 긴장해 있다"며 "판매대수가 가장 많은 중형세단 분야에서 국산차와 본격 경쟁하는 차종(국산차 킬러 모델)들이 계속 생겨날 경우, 국내업체들이 마케팅 전략부터 새로 짜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일본차, GM대우 제치고 내수 중형세단 시장 3~4위권 진입

대표적인 국산차 킬러 모델은 도요타 캠리. 값을 쏘나타 최고급형과 그랜저 최고급형의 정확히 중간 지점인 3490만원으로 맞추고 내수시장을 정조준했다. 때문에 내수시장의 50%를 점유한 현대차가 먼저 쏘나타와 캠리의 비교시승을 준비하는 등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캠리는 센터페시아·조작버튼 등 내장의 수준이 국산 소형차보다도 떨어진다는 일부 반응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월 3만대씩 팔리는 베스트셀러 세단의 명성을 무기로 열흘 만에 289대가 팔렸다. 공급만 충분하다면 월 2000대는 당장 팔 수 있다고 딜러(판매대행업체)들은 말한다.

캠리 외에 닛산 알티마, 혼다 어코드 등 일본산 3개 차종의 지난달 판매대수는 758대. 같은 기간 GM대우 토스카(562대)의 판매를 눌러 국산 중형세단과 비교해도 쏘나타·SM5·로체에 이어 4위권이다. 토스카는 모델이 노후화된 데다 내년에도 신차 계획이 없는 상태. 따라서 도요타가 캠리 단일모델만으로 중형세단 시장에서 GM대우를 누르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분석이다.

포드 신형 토러스, 캐딜락 2010년형 CTS 등 미국산 고급세단의 국산차 공략도 만만찮다. 토러스(배기량 3.5L·3800만원)는 에쿠스급 차체에 그랜저(3.3L·3435만~4159만원)급 가격을 무기로 한국차 고객을 노리고 있다. CTS는 배기량을 2.8L에서 3L로 올리면서도 값은 5140만원에서 4780만원으로 오히려 낮췄다. 캐딜락을 파는 GM코리아 관계자는 현대차의 제네시스(4129만~6923만원)급 고객을 타깃으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중대형 비중 높은 황금 시장"

수입차들이 국산차 킬러 모델을 내놓으며 한국시장을 공략하는 이유는 한국의 중대형 고급차 시장이 '상대적으로' 크고 수익성도 높기 때문이다.

그랜저급 이상의 중대형차 시장만 보면 이미 수입차 점유율이 20% 내외에 달하며 국산차를 위협하는 킬러 수입차들이 10여종 이상 나와 있다.

업계 분석 자료에 따르면, 국산 준대형세단(현대차 그랜저, 르노삼성 SM7)과 경쟁 수입차(어코드·알티마·캠리·ES·G37세단 등)를 비교할 경우, 2007년 수입차의 점유율은 5.8%에 그쳤다. 그러나 작년에는 12%, 지난달에는 14.3%에 달했다.

대형세단(제네시스·오피러스·체어맨)은 더 심각하다. 지난달 이들 국산 대형세단의 판매대수는 3761대.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아우디 A6 등 독일산 3개 차종의 같은 기간 판매대수만 1097대로, 오피러스(927대) 체어맨W(272대) 판매를 넘어섰다. 대형세단 시장 전체의 수입차 점유율은 25~30%에 달한다.

또 한국의 경제규모는 14~15위권이지만, 수입차 업체가 분석한 국가별 고급차 판매순위에서는 5~6위권이다. BMW 대형세단 7시리즈의 올해 1~9월 국가별 판매대수를 보면, 한국은 중국·미국·독일·중동에 이어 5위다. 반면 지난 10월 프라이드·베르나·젠트라 등 국산 소형차 판매는 고작 2867대로, 경차를 제외한 국내 전체 자동차 시장의 3%에 지나지 않았다.

◆국산차, 대형·고급화로 맞대응…가격인상 안 멈추면 준중형 시장도 위험

기아차는 24일 준대형세단 K7을 출시하고 일본·독일 고급세단 시장을 겨냥한다. K7을 타 본 업계 관계자는 "전후면 디자인 및 실내 고급감은 BMW 5시리즈나 아우디 A6 같은 독일산 고급세단과 비교해도 될 정도"라고 평했다.

그러나 차급을 키우고 고급화시켜 수입차를 막아내는 것은 곧 한계를 맞을 전망이다. 고급화와 함께 가격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바람에 이미 중대형차급에서는 국산·수입차의 가격차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도요타는 내년 하반기에 준중형세단 코롤라를 선보이고 국산 아반떼급과 승부하겠다는 각오다. 따라서 국산차 업체들이 가격인상을 멈추고 소비자가 원하는 더 다양한 모델을 선보여 대응하지 못하면, 대형차급에서 시작된 '국산차 킬러'들이 준중형·소형차급까지 잠식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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