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경국

“이메일도 못 쓰는 컴맹” “소문 들었지만 말도 안돼” 모두 펄쩍
 인터넷 IP 추적 외엔 방법 없어… 경찰청은 “영장 없으면 불법”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토론방인 아고라에서 활약하던 인터넷 경제 논객 ‘미네르바’가 절필을 선언한 지 한 달 만인 2008년 12월 29일 글을 올렸다. 정부가 한시적으로 달러 매수 금지령을 내렸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가 “허위사실을 인터넷에 유포하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반박하고 나서자 인터넷 토론방이 후끈 달아올랐다. 이에 따라 미네르바는 누구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지고 있다.

미네르바는 아고라에 올린 글에서 스스로를 ‘고구마를 파는 노인’이라고 묘사했다. 그러자 ‘고구마’가 노란 황금색으로 ‘외환 시장’을 일컫는 속어로 통용된다고 해서 ‘미네르바가 외환딜러 아니냐’는 소문이 지난 10월쯤 퍼졌다. 또 그가 올리는 정보에 일반인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민감한 내용이 많다는 점 때문에 “전직 경제 관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일부에선 해박한 경제 지식과 화려한 수사를 들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목하기도 했다.

미네르바 글의 영향력이 커지자 정부에서도 신원 파악에 나섰다. 지난 11월 3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홍일표 한나라당 의원이 미네르바를 언급하며 “경제위기를 틈타 증권가 루머나 인터넷 괴담이 번지고 이로 인해 기업, 투자자, 일반 국민들이 얼마나 피해를 입게 될지 모른다”며 “특히 외국계 증권사 보고서의 부정적 전망이 인터넷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확산되는데 수사할 의향이 없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김경한 법무부 장관이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면 당연히 수사해야 한다”고 답했다.

11월 11일에는 ‘매일경제’가 정보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미네르바가 “나이는 50대 초반이고 증권사에 다녔으며 해외 생활 경험이 있는 남자”라고 보도했다. 이때부터 미네르바 후보자들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증권가에서는 1990년대에 ‘미네르바의 부엉이’라는 제목으로 정보지를 만들었다는 모 증권사 부장이 거론되기도 했다.

“0.1%에 속하는 극상위층” “존경 받는 기업인”
 온갖 소문 무성… “내가 미네르바” 패러디 소동도

미네르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11월 21일 대학 교수로 알려진 ‘readme’라는 필명의 네티즌이 ‘내가 아는 미네르바’란 글을 아고라에 올렸다. 이 글에서 readme는 자신이 미네르바의 친구라고 주장하며 미네르바를 “대한민국 재계의 유명인” “훌륭한 사회 활동을 많이 하는 존경받는 기업인” “상위층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0.1%의 극상위층” 등으로 묘사했다.

그러자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이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김 전 행장은 1947년생(61세)으로 나이는 많지만, 증권사 근무 경험이 있는데다 기부를 많이해 존경 받는 기업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김 전 행장은 케이블 방송 MTN과의 인터뷰에서 “(인터넷으로) 글도 잘 보지 않는데 왜 미네르바냐고 묻느냐”며 미네르바 소문을 부인했다.

하지만 세간의 관심은 식지 않았다.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전 금통위원)가 “훌륭한 사람”이라며 미네르바를 옹호하고 나섰고, 이동걸 금융연구원장이 “어떨 땐 미네르바처럼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말하고 싶다”라고 말한 인터뷰 내용이 알려지면서 “미네르바가 예일대 출신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관심이 집중되자 미네르바는 신동아 12월호에 게재된 글에서 “증권사에 근무한 적이 있고 해외 체류 경험도 있다”며 항간의 소문 일부를 시인했다. 미네르바는 그러나 “내 나이에 대해서는 코멘트하지 않겠다”며 “유명세를 타고 싶다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 이제까지 글을 써온 게 아니기 때문에 굳이 신원이나 얼굴을 공개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미네르바의 신원에 대해서는 글을 실은 ‘신동아’ 내부에서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네르바는 이에 대해 “내부 참고용으로 만들어놓은 걸 잡지사에 가져다가 팔아 먹는 놈이 있다”고 밝혔다. 일부에선 동아일보가 미네르바 관련 기사를 상대적으로 많이 실어왔으며, 미네르바가 신동아에 기고를 했다는 점을 들어 “미네르바가 동아일보사와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미네르바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면서 곽인찬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이 지난 12월 초 ‘미네르바 자술서’라는 칼럼을 통해 “내가 바로 그 미네르바”라며 “자수한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파이낸셜뉴스는 “곽 논설위원이 일종의 비유를 사용한 것”이라며 “그저 칼럼일 뿐”이라고 해명해 파문을 진정시켰다.

IP ‘211.178.OOO.189’와 ‘211.49.OOO.104’
아고라 운영진 “수사기관 요청 없인 밝힐 수 없다”

정부 당국과 증권가에선 미네르바에 대해 ‘경기고·서울대를 졸업했고, D증권사에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미국 명문대를 나와 해외 체류 경험이 있는 50대 남자’로 파악하고 있다. 이 조건에 맞는 사람 중에는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K(54)씨와 외국계 투자은행 한국지점장 등을 지낸 또 다른 K(54)씨가 주목받고 있다.

취재팀은 지난 12월 19일, 23일, 26일 세 차례에 걸쳐 두 명의 K씨와 접촉을 시도했다. 이중 한 K씨의 부친은 동아일보 고문을 지낸 명사다. 항간에 떠돌던 ‘동아일보와의 인연설’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는 하지만 자신이 미네르바일 것이란 일부의 관측을 부인했다. 이 K씨는 23일 밤 본지와의 통화에서 “미네르바가 나라는 얘기를 한두 달 전부터 들어 알고 있다”며 “하지만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지만, 나는 이메일도 못쓰는 완전 컴맹”이라며 “외국과 접촉할 때도 이메일을 못 보내기 때문에 전화로 다 하는데, 미네르바라니…”라며 관련설을 부인했다.

또 다른 K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내가 미네르바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안다”며 “하지만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답했다. 그는 “내가 왜 인터넷에 그런 글을 올리겠느냐”며 “의견을 표출하려면 다른 방법도 많이 있는데, 굳이 그런 방법을 사용할 까닭이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미네르바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IP(Internet Protocol·인터넷 송·수신자를 식별하기 위한 주소)를 추적해야 한다. 미네르바는 ‘211.178.OOO.189’와 ‘211.49.OOO.104’의 두 가지 IP를 사용하고 있다.

IP는 1~3자리로 된 4개의 단위로 구성돼 있다. 여기서 가장 앞에 있는 3자리 단위(211로 표기된 부분)를 A클래스라 하고, 두 번째 단위를 B클래스, 3번째 단위를 C클래스(OOO으로 표기된 부분)라고 한다.

전산 전문가는 “사용자 위치를 파악하려면 C클래스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며 “현재로선 사용 국가와 라인망 정도 외에는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네르바가 글을 올리는 ‘아고라’ 운영진은 “수사기관의 공식 요청이 없는 한 IP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고 답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영장이 없는 상태에서 IP를 추적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선 미네르바 본인이 신원을 밝히기 전엔 그의 실체를 알아내기 힘든 상황이다. 미네르바는 12월 29일 그동안 올린 글을 삭제하고 ‘폐업’을 선언한 뒤 은둔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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