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사회참여 강조하는 `콜라제왕'…쿠바난민출신 자수성가 .

'최고의 세계적 기업을 만든 세기의 경영.' 쿠바에서 코카콜라사 주
식 1백주를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와 미국의 간판 기업인 코카콜라사의
최고 경영자가 된 로베르토 고이주에타(65). 그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
마와도 같다.

쿠바 태생인 고이주에타가 미국으로 이주한 것은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 정권이 들어선 다음해인 60년. 미국 예일대에서 교육을 받고 쿠바
로 돌아가 하바나의 코카콜라 지사에서 화학 분야 기술자로 일하던 그
에게 쿠바 혁명은 인생의 큰 전환기가 됐다. 가족이 경영하던 사업과
코카콜라 쿠바 지사에 대한 몰수를 앞두고 그의 가족들은 쿠바를 탈출,
멕시코와 마이애미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부인과 세 자녀, 그리고
가정부를 데리고 마이애미에 도착, 모텔에서 한 달을 지내고 있던 그에
게 코카콜라사는 마이애미 지사에 일자리를 만들어주었다. 당시 그가
가진 재산은 뉴욕의 은행에 보관했던 코카콜라사 주식 1백주가 전부였
다. 이 주식은 사업을 했던 아버지로부터 돈을 빌려 사둔 것이었다.

난민 출신이었던 고이주에타가 코카콜라사의 최고 경영자가 된 것은
결코 평범한 과정을 거쳐서가 아니었다. 그는 코카콜라사에서 주업종인
청량 음료 부문이 아닌 기술 분야 업무에서 주로 일했다. 그는 그러나
비상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된사람으로 비쳤
다. 그는 75년 수석 부사장에 임명된 후 81년에 최고 경영자로 발탁됐
다. 고이주에타와 개인적 시간을 많이 가졌던 코카콜라의 전 최고 경영
자로버트 우드로프는 고이주에타를 자신의 후계자로 발탁한 이유를 이
렇게 설명했다. "소위 비핵심적 경로를 거친 사람들은 관행이나 인습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들은 '임금님이 옷을 입지 않았다'고 제대
로 말해줄 수 있다. IBM을 회생시킨 루 거스너가 그런 것처럼. 그러나
인사이더면서도 아웃사이더의 눈을 가진 이가 있다면 그것은 두 가지
세계를 다 가지는 것이다.".

그가 처음 코카콜라사의 실권을 손에 쥐게 됐을 당시 코카콜라에는
여러 업종들이 혼재해 있었고 시장 점유율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그
는 취임 후 앞으로 청량 음료 시장이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기업 구조 개편을 단행했다. '업종이 다양하다고 해서 결코 좋지는 않
다'는 판단이었다.

그가 또 역점을 둔 것은 적극적인 해외 시장 공략. 코카콜라가 가장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하는 데 있어 그의 리더십은 엄청난 괴력을 발
휘했다. 그 결과 현재 코카콜라사는 전체 매출의 3분의 2, 수입의 82%
를 해외로부터 거두어들이고 있다.

● 포천, 2년연속 `존경받는 기업' 선정.

고이주에타는 미국 기업가들 사이에서는 투자자들을 위한 수익 제조
기로 알려져 있다. 81년 40억달러에 머물렀던 코카콜라사의 시장 가치
(주식 총액)는 지난해 말 무려 1천3백억달러로 늘어났다. 코카콜라사의
지난해 투자자들에 대한 이익배당률은 43%였으며 매년 수익률이 두자리
수를 기록하는 등 이 부문에서 미국 기업들 중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
다. 고이주에타의 경영 하에 코카콜라는 치열한 '콜라전쟁'에서 숙적
펩시사를 멀리 따돌리고 '콜라 제왕'으로서의 자리를 확고하게 굳혔다.

뿐만 아니라 코카콜라는 올해와 지난해 2년 연속으로 포천지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되는 영예도 안게 됐다.

청량 음료 하나로 세계 최고 기업을 만들어낸 고이주에타는 지금까지
수익을 위해 감원을 해보지 않은 '때묻지 않은' 경영자다. 이윤 확대와
경영 합리화라는 명분으로 감원이 일반화됐을 때 그는 이를 단호히 거
부했다. 그는 이윤 추구도 좋지만 기업에는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이 있다고 강조하는 자기철학이 뚜렷한 '선비형' 경영자다. 그는 기
회있을 때마다 다른 경영자들에게 스스로의 역할을 보다 넓게 설정할
것을촉구했다. 그는 분기별 경영 실적 위주의 급격한 조치들이 단기적
으로는 효과를 볼지 모르나 궁극적으로는 해가 된다고 강조한다.

그의 특이한 경영 철학은 월스트리트 주식 시장에 대한 자신의 견해
에서도 잘 드러난다. 고이주에타는 주식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 과정이 시간을 두고 이루어져야 하며, 직원과 고
객, 사업 상대와 사회에 이익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윤추구에 급급한 경영 문화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그는 또
기업의 가치를 말해주는 주식은 오랫동안 보유되어야지, 눈앞의 이익에
만 급급해 샀다 팔았다 반복되는 투기용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고 지적
했다. 현재 수백만주의 코카콜라 주식을 보유한 그는 지난 20년 동안
단 한주도 팔지 않았다.

● 사회 단체들에 자사 주식 나눠줘.

그는 기업의 역할과 사회적 책임 문제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큰 관심
을 보이고 있다. 그는 특히 여론이 대기업과 그 경영진들에 대해 부정
적이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한 예로 현재 미국 최고 경영자들의
평균보수는 일반 근로자들에 비해 무려 2백배나 되는 엄청난 액수. 이
는 미국 기업과 최고 경영자들의 윤리성과 도덕성에 관한 본질적 문제
를 제기하는 민감한 사안으로 최고 경영자들로서는 거론하고 싶지 않은
문제이다. 그러나 고이주에타는 이를 기피하지 않았다.

그는 최근 시카고 로욜라대학에서 행한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
다. "경영은 문명 사회를 창조할 하나의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사회적 병폐들이 제대로 치유되는 사회를 말입니다." 이는 기업이 사회
문제 해결에 적극 기여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을 반영한 말이다. 그는
코카콜라사 경영진들에 대해 자선단체들과 비영리 봉사 단체, 각급 사
회 기관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후원해 나갈 것을 당부했다. 실제로 코카
콜라사는 미국 내에서 지역 사회 기여에 가장 후한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코카콜라의 주식을 각급 사회 기관에 나누어주어 주식 가치
가 상승하면 자연 혜택을 보도록 했다. 이는 기업의 사회 기여는 결국
스스로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요소라는 인식의 결과다. "장기적 관점에
서 볼 때 우리가 병든 사회에서 건강한기업을 유지할 수는 없는 것입니
다." 고이주에타는 지난해 7백10만달러를 벌었으며, 현재 8억5천만달러
에 달하는 주식을 가진 거부로 변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존경받는 기업과 기업인으로서 그가 코카콜라와 미국 기업 문화에 끼친
영향이다.


박스
● "코카콜라의 비밀은 경영진에 있다"
세계 시장 48% 점유 … 1백년 전엔 하루 아홉잔 판매
1886년 5월 애틀랜타에 살던 약사인 존 스티스 펨브톤이 캐러멜 색
상의 시럽을 개발해 현재 코카콜라 본사가 있는 도로 변의 한 약국에서
큰주전자에 담아 팔기 시작한 것이 코카콜라의 시초. 당시 새 청량 음
료 가격은 잔당 5센트였고 하루 평균 판매량은 아홉잔에 불과했다. 그
후 얼마 안가 우연인지 의도적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탄산수가
첨가되어 오늘날과 같은 맛이 탄생됐다.

그러나 팸버톤은 자신이 개발한 음료수의 잠재력을 잘알지 못한 채
주식의 상당수를 매각했다. 그가 죽고난 후 애틀랜타의 제약 업자인 아
시캔들러가 2천3백달러를 들여 매각된 주식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코카
콜라 컴퍼니'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콜라 사업을 벌였다. 마케팅의 귀
재였던 그는 코카콜라라는 글자가 새겨진 컵과 달력, 포스터, 벽광고,
음식 쟁반, 시계 등으로 광고를 해 다음해부터 매출을 수십배로 늘려놓
았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보이게 하라'는 그의 광고 전략은 현재
까지 지속되고 있다.

코카콜라사는 콜라와 환타 스프라이트 등 청량 음료만으로 오늘날 세
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기업이 됐다. 전세계에 불과 2만6천여명의 직
원을 가진 코카콜라의 지난해 매출액은 1백80억달러. 세계 청량 음료
시장의 48%에 해당한다. "코카콜라의 비밀은 맛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
로 경영자들에게 있다." 월스트리트 기업 분석가들의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