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항공기 드론은 영어로 수벌이라는 뜻이다.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리가 꿀벌의 비행 소리와 비슷한 데서 유래했다. 이제 드론은 이름뿐 아니라 비행 원리까지 벌을 닮아가고 있다.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 항공우주공학부의 귀도 드 크룬(Guido de Croon) 교수 연구진은 "꿀벌이 집을 찾는 원리를 이용해 효율적인 드론 항법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14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드론이 날아다니는 모습은 이제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소포를 배달하고 방송 영상을 촬영하며 농작물의 생육 상태를 점검한다. 군대에서도 적군을 탐지하고 공격하는 필수 장비가 됐다. 드론의 활용도가 높아진 만큼 비행 거리도 늘어났다. 하지만 고성능 위성 항법 시스템(GPS)을 달면 드론이 무거워지고 에너지 소모도 커지는 문제가 있다.
델프트 공대 연구진은 자연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꿀벌이 꿀과 꽃가루를 찾아 멀리 떠났다가도 어김없이 집으로 찾아오는 비결을 드론에 적용한 것이다. 꿀벌을 모방한 드론용 항법 시스템인 '꿀벌 내비(Bee-Nav)'는 42킬로바이트(KB)의 작은 기억 정보로도 귀환 비행을 성공시켰다. 이 정도면 해상도가 아주 낮은 썸네일 사진 한 장조차 저장하기 힘든 용량이다.
◇사전 학습 비행 덕분에 귀환 경로 빨라
꿀벌은 효율적인 항법 시스템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모델이다. 참깨만 한 꿀벌의 뇌는 신경 세포 수가 인간의 10만분의 1에 불과하지만, 자신의 위치를 기억하고 거리를 측정하는 고등 인지 기능을 수행한다. 연구진은 꿀벌의 항법 원리부터 분석했다.
꿀벌은 먼저 시각적 단서로 얼마나 멀리, 어떤 방향으로 이동했는지 추정한다. 바로 주행 거리 측정이다. 말하자면 사람이 발걸음을 세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꿀벌은 비행하는 동안 주변 풍경이 눈을 지나쳐가는 속도를 측정하여 거리를 계산한다. 주변 물체가 눈 뒤쪽으로 빠르게 지나갈수록 자신이 빨리 이동하고 있다고 인지한다.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가까운 곳이라면 몰라도 멀리 가면 발걸음을 정확히 세기 어렵다. 보폭이 조금씩 달라도 누적되면 오차가 커진다. 꿀벌은 시각적 기억으로 주행 거리 측정의 한계를 보완한다. 집 같은 중요한 장소의 주변 풍경을 기억해 길을 제대로 잡았는지 점검하는 방식이다.
드 크룬 교수는 "꿀벌이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멀리 날아갔다가도 거의 직선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멀리 있어도 집 주변을 바로 알아본다고 볼 수 있다. 연구진은 그 비결이 집을 떠날 때 주변을 선회하는 짧은 학습 비행이라고 설명했다. 마치 집 밖으로 나가 주변 거리를 걸어보는 것과 같다. 그러면 돌아오는 길에 어떤 경로로 접근하든 집이 있는 동네를 바로 알아볼 수 있다.
꿀벌 내비게이션을 장착한 드론도 출발지 근처에서 짧은 학습 비행을 한다. 이를 통해 드론은 주변 환경의 파노라마 이미지를 수집한다. 그런 다음 소형 신경망으로 이 이미지들을 처리해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과 거리를 추정하도록 학습한다.
꿀벌 내비는 주행 거리 측정과 시각 기억을 통합해 길을 잡는다. 드론이 멀리 비행하면 집이 잘 안 보이거나 장애물에 가려 안 보일 수도 있다. 일단 정확도가 떨어지더라도 주행 거리 측정 수치로 집으로 가는 길을 잡는다. 집에 가까워지면 시각 기억을 이용해 길을 더 정확히 잡는다.
◇실외 비행은 바람, 조도 변화에도 대응해야
실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드론은 실내 시험장에서 가로세로 5m인 학습 영역을 먼저 비행했다. 그 결과 50m×30m에 달하는 시험장에서 진행한 네 차례 시험 비행에서 100% 귀환했다. 드론은 3.4KB 크기의 작은 신경망을 사용해 주변의 파노라마 이미지를 해석하고 이동 방향과 집까지 남은 거리를 추정했다.
더 큰 규모 시험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성공했다. 드론은 42KB 신경망을 사용해 600m 이상 비행한 후에도 귀환에 성공했다. 다만 격납고와 같은 대형 실내 공간에서는 모든 시험에서 성공했지만 바람이 부는 실외 조건에서는 성공률이 80%로 떨어졌다. 연구진은 "바람이 불어 드론이 기울어지면서 내비게이션에 이미지를 활용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라며 "태양광의 변화나 별다른 지형지물이 없는 풀밭도 실패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현 수준으로도 온실 같은 실내 조건에서는 꿀벌 내비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드론은 온실에서 작물의 생육 상태를 점검하고 질병이나 해충을 조기 탐지하는 데 쓰이고 있다. 연구진은 "온실에서는 같이 일하는 사람이 안전하도록 드론이 가벼워야 하는데 꿀벌 내비가 여기에 적합하다"고 밝혔다.
바바라 웹(Barbara Webb) 영국 에든버러대 정보학부 교수는 이날 네이처에 같이 실린 논평 논문에서 "이번 연구는 곤충의 항법 체계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넓히는 동시에, 효율적인 로봇공학 기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GPS를 쓰지 못하는 드론은 복잡한 3D(입체) 지도가 있어야 비행할 수 있다. 하지만 농장에서는 그처럼 막대한 연산과 메모리가 필요한 고성능 드론을 쓰기 힘들고, 재난 현장에서는 고성능 드론이 있어도 사전 정보가 충분치 않다. 웹 교수는 "꿀벌 내비는 연산 용량이 크지 않아 저가 드론으로도 이런 곳에서 충분히 작업을 할 수 있다"며 "실외 시험에서 나타났듯 바람이나 조도 변화에 대응하도록 기술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6),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6-10461-3
Nature(2026), DOI: https://doi.org/10.1038/d41586-026-013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