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굴기’를 외치며 우주 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해온 중국이 미국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은 정부가 우주 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며 독자적으로 구축한 우주 산업 생태계가 강점으로 꼽힌다. 반면 윤석열 정부 들어 우주 산업 생태계 육성을 선언한 한국은 가속을 붙여야 할 타이밍에 정치적 혼란이 벌어져 급제동이 걸렸다.
중국은 우주 정책 총괄 기관인 국가항천국(CNSA)과 중국항천과기집단(CASC)을 중심으로 중국 우주 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기술과 인프라(기반 시설)를 확보하고 있다. 특히 스페이스X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재사용 발사체 분야에서 가장 빠른 추격자로 평가받고 있다.
CNSA는 중국의 주력 발사체인 창정을 개발해 독자 우주정거장인 톈궁을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은 지난달 18일 9시간에 걸친 우주유영을 선보이며 세계 최장기록을 세웠으며, 미국보다 먼저 달 뒷면 토양을 채취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CNSA는 창정의 9번째 버전으로 재사용이 가능한 창정9을 개발 중이며 2033년 발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 정부를 등에 업은 우주기업들도 재사용 발사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의 우주기업 딥블루 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9월 재사용 발사체 네뷸라(Nebula)-1의 수직 회수를 위한 시험비행을 진행했다. 네뷸라-1은 약 5㎞ 상공으로 비행 후 착륙했으나, 마지막 단계에서 중심을 잃고 쓰러지면서 폭발했다. 하지만 착륙까지는 성공적으로 이뤄지면서 상당한 수준의 재사용 발사체 기술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딥블루 에어로스페이스는 올해 네뷸라-1의 시험발사를 재시도 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국영우주기업인 중국항공공업집단(AVIC)도 재사용발사체 하오룽을 개발하고 있다. 하오룽은 나사의 우주왕복선을 닮은 화물운반용 재사용 발사체다. 하오룽의 시험비행은 내년 발사가 예정돼 있다. 이 외에도 스페이스 파이오니어, 갤럭틱 에너지 등이 재사용 발사체와 소형 발사체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중국의 우주기업은 현재 430곳이 넘고, 이미 상업 발사가 수십차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중국은 우주 산업 생태계를 바탕으로 2027년 달 무인기지 건설, 2030년 유인 달 탐사를 준비하고 있다. 안형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우주공공팀장은 “중국은 발사체 분야에서 기술적으로 빠르게 미국을 추격하고 있고, 상용 발사 횟수도 경쟁자 그룹인 유럽을 앞서고 있다”며 “넓은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우주 산업을 키운 만큼, 해외 시장을 얼마나 확대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중국의 우주굴기를 막기 위해 지난 2011년 ‘울프 수정법’을 법제화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정부 자금으로 중국 정부나 기업과 협력하지 못하도록 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여러 우주 개발 사업에서 중국을 배제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중국이 스스로 재사용발사체 기술을 개발하는 등 미국을 빠르게 추격하면서 이런 ‘지연 조치’가 힘을 잃고 있다.
중국이 빠르게 우주 기술을 확보해나가는 사이 한국은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다. 차세대발사체 개발 사업과 달 착륙선 개발 사업 같은 굵직한 우주 개발 사업의 방향을 결정해야 할 국가우주위원회가 열리지 않고 있다. 국가우주위원회는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데,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직무정지되면서 리더십이 공백인 상태다. 당초 작년 12월에 열릴 예정이었지만, 미뤄진 이후 아직까지 개최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우주항공청 관계자는 “곧 국가우주위를 개최할 예정”이라며 “다만 차세대발사체, 달 착륙선 개발 사업 관련 안건이 올라올지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국가우주위가 열리더라도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나 정권 교체 여부에 따라 주요 우주 개발 사업의 추진이 불확실해질 여지가 있다. 지금도 차세대발사체 개발 사업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지적재산권 갈등에 더해 국가우주위 개최 불발의 여파로 진행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우주 분야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작년에 우주항공청이 출범하고 우주 개발 분야에서 많은 청사진이 제시됐지만, 반 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실현된 건 보이지 않는다”며 “경쟁국들이 치고 나가는 사이 한국만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어 업계의 불안이 갈수록 커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