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1000일 넘게 계속되고 있다. 이번 전쟁은 과거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전쟁 판도가 전투기와 탱크보다 드론(무인기)과 전자전 같은 첨단 과학기술에 뒤집혔다. 이제 뇌과학도 군인의 전투 능력을 일시에 높일지 모른다.

2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에서 전장에 있는 군인의 판단 능력을 키울 뇌자극술을 연구하고 있다. 마치 컴퓨터 게임 스타크래프트에서 해병대원이 스팀팩을 맞고 순간적으로 반응 속도가 빨라지듯이 빛과 전기 자극을 이용해 병사의 반응 속도를 높이는 식이다.

긴박한 전쟁터에서 군인의 상황판단 능력을 높이기 위한 기술로 뇌자극술이 주목받고 있다. 빛이나 전류를 흘려 상황을 판단하는 뇌 부위를 활성화하는 기술이다./챗GPT

김정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질환극복연구단 선임연구원은 총격전이 일어나거나 포탄이 떨어지는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 군인의 판단력을 강화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김 선임연구원은 “전쟁 중에는 아주 짧은 순간에 최선의 선택지를 찾아야 하는 순간적인 의사결정 능력이 필요하다”며 “뇌가 순간적인 의사결정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알아보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KIST 연구진은 생쥐가 갑작스러운 공포 상황에 처했을 때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되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하루 동안 굶은 생쥐에게 먹이를 주는 동시에 공포심을 유발하는 그림자 영상을 주기적으로 재생한 후 뇌 활성화 부위를 확인했다.

실험 결과, 갑작스러운 상황에 뇌의 전방대상피질(ACC)과 시상을 연결하는 부위의 회로가 급격하게 벼놔했다. 갑작스러운 공포에 먹이를 먹을지 말지 결정하려고 반응하는 뇌 부위를 찾아낸 것이다. 연구진은 이후 빛을 이용해 전방대상피질 주변을 자극해 쥐의 행동 변화도 이끌어냈다.

뇌를 자극하기 이전에는 생쥐가 공포 영상에 두려움을 느끼고 먹이를 먹는 것을 포기했지만, 뇌를 자극하자 먹이를 선택하는 행동의 빈도가 늘었다. 생쥐의 판단 능력이 개선되며 그림자 영상이 실제 위협이 아니라 단순한 영상이라는 것을 알아챘다는 의미다.

김 선임연구원은 “이번에 찾은 부위는 학습된 상황에서 행동을 조절한다고 알려졌지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처음 밝혀졌다”며 “전기자극이나 빛으로 뇌의 국소부위를 자극하는 기술이 이미 있는 만큼 실제 사람에게도 판단 능력을 높이기 위해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다르파)는 지난 6월 뇌자극술로 "약물 부작용 없이 전투원의 능력을 개선하는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미군이 겪는 수면장애로 인한 작전수행능력 향상을 위한 기술이다./미 방위고등연구계획국

미군도 군인을 위한 뇌 자극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지난 6월 어웨어(AWARE) 프로그램 중 하나로 “약물 부작용 없이 전투원의 능력을 개선하는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미군은 전쟁터에 있는 군인들의 수면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로 뇌 자극술에 주목했다. 미 육군에 따르면 현역 군인 중 14%가 수면장애를 겪고 있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상황 판단 능력과 집중력이 떨어져 전투력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미 육군은 수면 시간이 6시간 이하일 경우 전투 능력이 최대 15% 감소한다고 보고 있다.

현재 미군은 수면 부족으로 전투력이 떨어진 군인에게 각성제의 일종인 덱스트로암페타민을 처방한다. 덱스트로암페타민은 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에 쓰이는 약물로 집중력을 높이는 효과를 낸다. 하지만 이 각성제가 한국에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공부 잘하는 약’으로 알려지면서 과잉 복용으로 중독과 식욕부진, 두통, 심근경색 같은 부작용을 유발했다.

미군은 근적외선(NIR)에 반응하는 약물을 사용해 특정 부위에서만 뇌를 자극하는 기술에 도전했다. 페드로 이라조키 DARPA 어웨어프로그램관리자는 “부작용 없이 각성제의 긍정적인 효과만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며 “각성제를 빛에 반응하게 만들고, 뇌 국소부위를 빛으로 자극할 수 있는 착용형 광 방출기를 개발해 군인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김 선임연구원은 군인을 위한 뇌 자극술이 뇌질환을 치료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KIST 연구진도 당초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와 강박증 같은 행동장애의 치료법을 찾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 행동장애 환자들은 행동이 편향되고, 한번 행동을 결정하면 이를 바꾸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의사결정 능력을 개선하면 행동장애 환자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김 선임연구원은 “의사결정 능력을 개선하는 뇌자극술의 효과는 동물실험에서만 확인했지만, 사람에게도 적용하는 임상시험을 준비 중”이라며 “행동장애 환자들과 일반인 모두에게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효과를 검증할 예정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