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GPS)을 구축하는 사업이 홍역을 앓고 있다. 위성항법 탑재체 개발을 맡은 해외 업체와의 계약이 늦어지면서 1호 위성 발사가 1년 이상 지연될 상황이다. 사업 일정이 지연되면서 내년에 KPS 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올해보다 크게 줄었다.

2일 우주항공청에 따르면, 한국형 위성항법 시스템(KPS) 개발 사업에 배정된 내년 예산은 536억2300만원으로 올해(801억3600만원)보다 33.1% 삭감됐다. 이 사업은 2022년 264억100만원을 시작으로 매년 예산이 조금씩 늘고 있었는데, 사업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예산이 큰 폭으로 삭감됐다.

KPS 위성 형상 개념도./조선비즈

KPS는 한국만의 독자적인 GPS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GPS는 우주궤도에 위성을 배치해 지구 어디에서든 대상물의 위치와 시각 정보를 제공하는 기술이다. 원래는 미국 국방부가 적군의 위치 파악과 미사일 유도라는 군사 목적으로 개발했다.

GPS가 처음 민간에 개방된 건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의 영향이 컸다. 1983년 대한항공 여객기 피격사건 이후 GPS 기술을 민간에 개방하라는 요구가 커졌고, 결국 미국이 이를 받아들였다. 이전까지는 비행체의 가속도를 기준으로 위치를 추적하는 관성항법장치(INS)를 썼는데 정확도가 낮았다.

미국이 GPS를 민간에 개방했지만, 언제든 미국 정부의 결정에 따라 GPS 접속이 차단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나 중국, 유럽연합(EU)은 독자 GPS 개발에 나섰고, 일본과 인도도 지역 내에서 활용할 수 있는 독자 GPS를 개발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한반도 인근 지역에 초정밀 PNT(위치‧항법‧시각) 정보를 제공해 교통, 통신 인프라 운영의 안정성을 높이고 신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목표로 2022년 KPS 사업에 착수했다. 2035년까지 3조7234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국책 사업이다.

하지만 사업 일정이 지연되면서 내년도 예산이 삭감되는 홍역을 앓았다. 우주항공청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은 2035년까지 KPS를 구축하기 위해 위성 8기를 발사할 계획이다. 항법신호 방송용 경사궤도위성 5기와 정지궤도위성 3기다. KPS용 위성은 단순한 통신 위성이 아니라 항법 시스템을 탑재해야 한다.

KPS 사업을 총괄하는 항우연은 유럽의 한 위성 기업과 계약을 맺었는데, 이 과정에서 당초 계획보다 계약이 늦어졌다. 위성항법 기술은 전 세계를 통틀어도 만들 수 있는 회사가 몇 군데 없고, 국내에는 한 곳도 없다. KPS 사업에 정통한 한 항우연 관계자는 “우리가 여러 업체를 비교해 고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을의 위치에서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고, 계약 자체가 늦어졌다”고 말했다.

결국 우주청과 항우연은 지난 10월 열린 KPS 예비설계검토회의(PDR)에서 위성 개발 계획을 일부 늦추기로 했다. 당초 계획대로 라면 8기의 위성 중 첫 위성이 2027년 발사돼야 하는데, 이를 1년 이상 늦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우주청 관계자는 “지난 10월 KPS 탑재체와 지상시스템에 대해 예비설계검토회의를 진행했고, 그중 탑재체에 대해서는 기술적 복잡도를 감안해 일부 사항을 보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KPS 개발 사업 전반에 대해 외부 전문가 중심으로 면밀한 점검을 진행 중”이라며 “구체적인 세부 추진일정은 점검 결과가 도출되는 대로 위성항법 소위원회 등 관련 의사결정 체계를 통해 확정하겠다”고 말했다.

한국형 위성항법 시스템(KPS) 개발 사업 구상도./우주항공청

다만 1호 위성 발사 시기가 늦어질 뿐 전체 KPS 사업 일정은 그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우주청과 항우연은 2034년 KPS 시범서비스 착수, 2035년 본 서비스 개시라는 일정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새로운 기술을 필요로 하는 대형 국책 사업에서 일부 사업이 지연되는 건 어쩔 수 없고 완성도를 높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국가우주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방효충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국내에서 항법위성을 처음 개발하다 보니 여러 소자나 부품이 계획대로 되지 않고 이런 데서 생기는 시행착오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2035년에 KPS를 구축한다는 큰 일정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사업을 진행하면서 빠르게 기술적인 부분을 학습하고 캐치업(catch up, 따라잡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방 교수는 “과거 달 탐사선 개발이나 한국형 발사체 개발도 처음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박수치는 사업이 됐다”며 “불확실성이 있지만 아직은 성공이나 실패를 단정하기에는 이르고 지금은 우주청과 항우연이 리더십을 갖고 사업을 잘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