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등교육재단과 최종현학술원이 26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 컨벤션센터에서 ‘미래인재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한국고등교육재단 50주년을 맞아 열린 이날 행사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미래를 선도할 수 있는 주제 10개에 대해 석학들과 젊은 학생들이 서로 질문을 던지고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나노 시대를 넘어서 옹스트롬 시대로

워커힐 컨벤션센터 워커홀과 그랜드홀에서 동시에 진행된 이날 행사의 첫 번째 세션은 ‘옹스트롬 미터 시대 반도체 기술’이었다. 옹스트롬(Å)은 100억분의 1m 크기다. 현재 반도체 시장에서 쓰이는 나노미터(㎚·10억분의 1m)보다 10분의 1 작은 단위다.

삼성전자(005930)와 대만의 TSMC가 주도하는 반도체 기술 경쟁은 2025년에 회로 선폭 2㎚를 바라보고 있다. 현재 사용되는 반도체 공정 기술은 실리콘 기반의 상보성 금속 산화막 반도체(CMOS) 공정 기술이다. 지난 50년 동안 무어의 법칙에 따라 1~2년 마다 집적도를 2배씩 높여가면서 발전했다. 하지만 ㎚ 단위의 현재의 반도체 공정 기술은 물리적 한계에 거의 다다랐다.

신창환 고려대 반도체공학과 교수가 26일 서울 워커힐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미래인재 컨퍼런스'에서 옹스트롬 반도체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이종현 기자

CMOS 칩의 집적도와 복잡도를 높여서 성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누설 전류 문제를 풀어야 한다. 회로 선폭이 좁아질수록 누설 전류가 증가한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지금의 실리콘 기반 반도체 공정 기술은 1.5㎚가 한계일 것으로 예상된다.

나노미터 수준을 넘어서 옹스트롬 수준으로 반도체 공정 기술을 미세화하려면 원자 단위에서도 물질의 성능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소재가 필요하다. 신창환 고려대 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실리콘 소재 자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옹스트롬 단위 두께의 2차원 채널물질과 같은 새로운 반도체 소재를 사용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오랜 시간 성숙된 실리콘 기반 CMOS 공정 기술과 호환이 가능해야 새로운 소재와 설계를 반영한 신공정이 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염한웅 포항공과대학교(포스텍) 물리학과 교수와 최성율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는 실리콘 기반 기술의 한계를 돌파하면서 기존의 반도체 플랫폼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새로운 반도체 소자를 제시하기도 했다. 염 교수는 “실리콘이 가지는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소자는 급증하는 에너지 소모 문제를 풀기 위해 현재의 폰 노이만 구조를 극복한 새로운 구조를 가져야 한다”며 “초전도체나 양자 홀, 솔리톤이 여러 조건을 만족하는 입자들”이라고 말했다.

초전도체는 전류가 아무런 저항 없이 흐르는 물질이다. 양자홀 효과는 그래핀과 같은 2차원 전자 시스템에 거대 자기장을 걸어주면 관측되는 놀라운 저항의 양자화 현상이다. 솔리톤은 특정한 구조가 주변과 상호작용을 통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유지하는 현상이다. 특히 솔리톤은 최근 실리콘과 2D 물질에서 구현이 가능하다고 입증돼 솔리톤 입자를 활용한 반도체 소자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버려지는 태양 에너지를 전기로 바꿔라

“2050년에 탄소 중립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를 사용하지 않고, 배출하지도 않는 신재생에너지 기술이 필요하다. 태양전지는 에너지원이 무한한 태양의 에너지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기술이기에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술로 기대된다.”

박남규 성균관대 화학공학·고분자공학부 종신석좌교수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이다. 박 교수는 광흡수 물질을 이용해 안정적이면서도 효율이 높은 고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세게 최초로 개발했다. 과학 부문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한국인 과학자로 꼽힌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유기물과 무기물이 섞여 있는 금속 산화물이다. 반도체와 부도체, 도체의 성질을 모두 가지는 물질을 발견한 러시아 광물학자 레프 페로브스키의 이름을 땄다. 페로브스카이트는 실리콘 전지보다 장점이 많다. 실리콘은 고온에서 가공하지만 페로브스카이트는 간단하면서도 저렴한 화학반응으로 만들 수 있다. 또 실리콘 전지는 딱딱하고 무겁지만 페로브스카이트는 용액 상태로, 플라스틱 필름에 바르면 휘어지는 전지가 된다.

세계 최대 태양전지 생산업체 큐셀의 독일 본사 건물 입구 한쪽 벽면에 알파벳 ‘Q’가 벽면 전체 크기로 새겨져 있다. 'Q’는‘Quality’의 첫 글자로, 제품의 품질을 자신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블룸버그

박 교수는 이날 컨퍼런스에서 ‘효율 60% 태양전지’라는 화두를 던졌다. 태양전지가 빛을 전기로 바꾸는 변환 효율은 아직 20~30% 수준에 머무른다. 태양 에너지의 70~80%는 전기로 바꾸지 못하고 버려지고 있는 셈이다.

박 교수는 “단일 접한 태양전지를 여러 층으로 다중 접합해 쌓는다면 효율을 높일 수 있는데, 다중 접합에서 최고 효율이 47.6%라는 보고가 있었다”며 “p타입과 n타입 반도체를 무한으로 접합하는 PN접합을 통해 효율을 87%까지 높일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고 말했다. 아직은 이론과 실험실 수준의 연구 결과지만 효율 60% 태양전지’가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박 교수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려면 75테라와트(TW, 1조와트)의 태양전지가 필요한데, 낮은 효율의 태양전지는 땅을 많이 차지해 그 많은 양을 생산하기가 힘들고, 효율이 지금의 2~3배인 60%의 태양전지가 나오면 필요한 설치량이 획기적으로 줄어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고등교육재단과 최종현학술원이 26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 컨벤션센터에서 '미래인재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한 학생이 홍용택 서울대 교수의 공간디스플레이 기술에 대한 발표를 듣고 질문을 하고 있다./이종현 기자

박 교수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파장에서 나오는 최대한 흡수할 수 있는 새로운 태양전지 설계와 태양전지에서 발생하는 열에너지를 활용해 효율을 높이는 방법 등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바이오 분야에서도 다양한 연구 목표가 제시됐다. 이준호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장수를 목표로 하는 항노화를 넘어서 늙은 사람이 다시 젊어지는 역노화 기술 개발을 위한 과제를 소개했다. 이 교수는 “염색체 끝부분인 텔로미어 길이 연장, 젊은 피 수혈, 노화된 세포의 제거 등 다양한 역노화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다”며 “부작용 없이 원하는 기능만을 가지는 새로운 역노화 인자를 개발하는 연구에 AI를 적극 활용하면 역노화 기술을 더 빠르게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