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 활용 서비스 산업인 ‘다운스트림’ 시장을 둘러싼 국내 기업 간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 기존 우주기업뿐 아니라 우주발사체와 위성 제작에 힘을 쏟던 한국항공우주(047810)(KAI)까지 본격적으로 위성 활용 시장에 뛰어들었다. 전문가들은 국내 우주 기업들이 살아남으려면 수요가 한정적인 국내 시장을 벗어나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18일 항공우주업계에 따르면 KAI는 다운스트림 관련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위성 제조에서 서비스까지 사업 수직계열화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회사는 지난 7일 항공전자·위성통신 전문기업인 제노코를 인수했다. 앞서 지난 9월에는 영상분석 전문 기업 메이사에 10억원을 추가 투자하면서 투자 총액 77억6000만원으로 2대 주주에 올라 있다.
위성 산업은 크게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으로 구분한다. 업스트림은 위성 제작과 발사체 운영처럼 위성을 지구에서 우주 궤도로 올리는 산업이다. 반면 다운스트림은 지구에서 위성을 운용하거나 위성의 데이터를 내려 받아 가공하는 산업을 의미한다. 위성을 활용해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모든 일이 다운스트림에 포함된다.
KAI는 제노코 인수와 메이사 투자 확대를 통해 다운스트림 산업으로 확장을 꾀하고 있다. 제노코는 위성 운용을 위한 지상국 부품과 설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메이사는 위성 데이터 분석을 위한 영상 기술을 갖고 있다. 2022년 KAI와 합작법인 메이사 플래닛을 설립하고 위성영상 분석을 위한 인공지능(AI)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KAI는 그간 위성 업스트림 기술 확보에 주력해왔다. 지난 30년간 지구 저궤도의 다목적 실용위성과 정지궤도의 복합 위성을 개발했으며, 최근에는 차세대 중형위성 사업에 참여해 고성능 위성 플랫폼 개발에 성공했다. KAI가 개발한 차세대 중형위성 1호는 2021년 3월 발사에 성공했으며, 후속 모델인 2~5호도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발사될 예정이다.
하지만 항공우주 업계는 민간 주도의 우주개발인 뉴스페이스(new space)를 이끌 산업 분야로 위성 다운스트림을 꼽고 있다. 그만큼 우주기업이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면 다운스트림으로의 확장이 필수적이다. 안형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 센터장(직무대리)은 “다운스트림은 전체 우주 산업 분야에서 발사체, 업스트림 시장에 비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위성산업연합(SIA) 자료에 따르면 2022년 3840억달러(한화 535조3728억원) 규모의 글로벌 우주 시장은 위성 분야가 73%를 차지했는데 이 중 발사체, 위성 제조는 6%에 그쳤다. 나머지는 지상장비와 위성서비스가 각각 38%, 29%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2022년 국내 우주기업의 전체 매출 2조9518억8600만원 중 ‘우주활용’ 분야가 2조3162억1900만원으로 전체의 78.5%를 차지했다. 반면 위성과 발사체 제작을 비롯한 ‘우주기기제작’ 분야는 6356억6700만원으로 산업 전체의 21.5%에 머물렀다.
KAI가 본격적으로 다운스트림 산업에 진출하면서 국내 위성 산업의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 위성 다운스트림 사업은 한화, 컨텍(451760), 나라스페이스, 텔레픽스를 비롯해 이미 다수의 기업이 진출해 있다. 한화는 한화시스템(272210), 에스아이에이(SIA)를 중심으로 위성 운용과 영상 분석에서 앞서나가고 있다. 컨텍은 지상국 사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나라스페이스와 텔레픽스는 위성 영상 분석 사업에 진출해 있는 상황이다.
국내 위성 다운스트림 기업들은 대부분 지상국과 위성 영상 분석에 집중하고 있으나, 국내 민간 수요는 아직 성장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문제는 이미 해외에서도 다운스트림 기업들은 인력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을 통한 산업 재편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가 시장이 열린 블루오션이 아니라 이미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인 셈이다
미국의 위성영상 분석 기업 플래닛랩스는 지난 6월 직원 180명을 해고한다고 밝혔다.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 기업 새틀로직도 지난 5~6월 두 차례에 걸쳐 직원의 절반에 가까운 104명을 해고했다. 기전업체가 위성 영상 분석을 활용한 신규 서비스를 예상보다 늦게 출시하는 반면,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꾸준히 늘면서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한국은 특히 위성 서비스 수요 대부분을 정부에 의존하고 있어 상황은 더 심각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이 다운스트림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단기적으로는 해외 시장 진출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차세대 기술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로 대변되는 ‘우주 정보통신기술(ICT)’이다.
안 센터장은 “다운스트림 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는 지상국, 위성영상 분석이 아닌 우주 ICT로 우주 통신·인터넷 등 미래 기술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라며 “국내 기업들도 단기적으로는 전통적인 다운스트림 분야에 집중하되, 장기적으로는 우주 ICT 기술에 투자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