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로는 올해 마지막 주기 실험을 진행 중입니다.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는 핵분열 반응에서 나오는 중성자(中性子)를 이용해 반도체, 배터리 산업용 기술 연구를 활발히 수행 중입니다.”

지난 14일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HANARO)’는 국가보안시설인 연구원에서도 다시 한번 출입 절차를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방진복과 덧신을 신고 방사선 선량계를 소지한 채 하나로 안에 들어갔다.

하나로를 방문한 이날 핵연료가 담긴 수조 내부는 영롱한 푸른 빛을 내며 핵분열 반응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한 눈에 보여줬다. 원자로를 대표하는 이 푸른 빛은 ‘체렌코프 현상’으로 만들어진다. 체렌코프 현상은 핵분열 반응으로 나오는 입자가 유체를 통과할 때 속도가 느려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 내부에서 핵분열 반응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로는 핵분열 반응에서 나오는 중성자를 이용해 과학기술 연구를 하고 있다./대전=이병철 기자

신진원 원자력연 하나로운영부장은 “하나로는 개방수조형 원자로로 자연 차폐체인 초순수(순수한 물) 속에서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며 “방사선 노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수면에 상대적으로 높은 온도의 물이 흐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나로는 원자력 분야 연구개발(R&D)을 위한 대형 연구 시설이다. 연구용 원자로는 하나로가 국내에서 유일하다. 일반 원자로가 핵분열 반응에서 나오는 열을 이용해 전기에너지를 만드는 시설이라면, 하나로는 전기 대신 첨단 반도체, 배터리가 쏟아져 나와 산업의 ‘연금술 공장’으로 불린다.

우라늄 핵이 쪼개지면 전기를 띠지 않은 입자인 중성자가 튀어나온다. 다른 원자로에선 이 중성자는 핵분열 연쇄 반응을 일으키지만, 열출력 30메가와트(㎿)인 하나로에선 전기가 나오지 않는다. 중성자가 핵분열 대신 다른 곳에 이용되기 때문이다. 연구원들은 중성자로 첨단 재료를 만든다.

신 부장은 “실험에 필요한 중성자는 입자가속기, 중성자 발생기 같은 다양한 장치로 만들 수 있다”며 “연구용 원자로는 중성자를 가장 풍성하고, 연속적으로 얻을 수 있어 연구, 산업적인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하나로에서 이뤄지는 실험은 반도체, 전고체배터리 분야가 대표적이다. 반도체는 순수한 실리콘에 도핑(화학적 결함)을 만들어 제작한다. 반도체 품질은 도핑이 얼마나 고르게 되냐에 따라 결정된다. 화학물질을 이용한 도핑은 균일도를 담보하기 어려우나, 중성자를 이용해 물리적으로 도핑을 하는 방식은 보다 정교한 도핑이 가능하다.

차세대 배터리 기술로 주목 받는 전고체배터리에도 연구용 원자로에서 나오는 중성자가 쓰인다. 신 부장은 “전고체배터리는 전해질을 고체 물질로 사용해 화재 위험을 낮춘 기술”이라며 “전해질을 굳힐 때도 중성자가 사용된다”고 말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운영 중인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 전경. 현재 실험이 진행 중이지만, 방사선량은 자연 상태와 유사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대전=이병철 기자

한국수력원자력이 추진하는 체코 원전 수출 사업에도 하나로는 필수적이다. 원전에 쓰이는 건설 소재나 부품은 중성자에 의한 내구성 시험이 필요하다. 체코 원전 건설에 쓰일 장비와 부품에 대한 중성자 시험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신 부장은 “수조 내부에는 핵연료봉과 함께 중성자에 의한 물성 변화 연구를 위한 샘플들이 들어가 있다”며 “중성자를 따로 빼내 실험할 수 있는 실험공이 총 43개 있어 별개의 실험도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체코 원전에 쓰일 핵연료도 시험이 필요하다. 신 부장은 “지금은 실험 일정이 꽉 차있지만, 원자력 업계의 요구에 대해 적극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나로는 2014년 이전까지 매년 평균 180일 운영하며 국내 원자력 R&D를 담당했다. 하지만 연구용 원자로에 대한 규제가 한때 강화되면서 제대로 된 운영하지 못했다. 2020년부터 가동이 본격 재개되며 운영 시간은 연간 100일 수준으로 회복했다.

신진원 하나로운영부장은 “한때 연구 과제가 다 사라지고, 해외에서도 하나로로 실험하러 들어 왔다가 가동이 정지돼 돌아가는 일도 있었다”며 “내년부터는 가동 기간을 늘려 나가며 본격적인 연구 지원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 하나로에서 실험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원자로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폐연료봉)를 보관하기 위한 처분장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신 부장은 “앞으로 13~14년 후면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공간이 포화된다”며 “처분장 문제도 하루빨리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