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로 인해 열파(heat wave·폭염)가 농작물 수확량을 크게 줄였디. 가뭄과 열파로 맥주의 주 원료인 보리 수확량이 줄면서 맥주 가격이 오르거나 인도에서는 밀물 수확량 감소로 기근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중국 과학자들이 열파로부터 곡물을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했다. 뜨거운 날이면 선크림을 바르듯 곡물에도 햇빛을 막아줄 자외선 차단 입자를 뿌리는 것이다.
중국 난카이대 연구진은 지난 4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쌀에 산화아연(ZnO) 나노입자를 뿌리는 방식으로 열파 피해를 줄이고 수확량을 늘리는 데 성공했다”고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아연은 선크림의 주요 성분이자 식물의 대사 과정을 돕는 미네랄 성분이다. 자연에서도 흙이나 잎에 묻어 있는 아연이 식물에 스며들기도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연구진은 100㎚(나노미터, 10억분의 1m) 보다 작은 나노입자 형태의 산화아연을 논에 뿌려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지 관찰했다.
연구진은 정상 조건과 6일 연속 온도가 섭씨 37도를 넘는 열파 조건에서 벼를 재배했다. 그 과정에서 산화아연 나노입자를 뿌린 논과 그렇지 않은 논을 비교했다. 실험 결과 열파 조건에서 산화아연 나노입자를 뿌린 논의 수확량은 그렇지 않은 곳보다 22.1% 많았다.
연구진은 잎에 있는 아연이나 마그네슘 같은 영양 성분도 산화아연 나노입자를 뿌린 경우가 더 풍부했다고 밝혔다. 열파 조건이 없는 정상 조건에서도 산화아연 나노입자를 뿌리면 수확량이 더 많았다.
연구진에 따르면 벼의 잎에 있는 영양 성분이 엽록체나 광합성에 관여하는 다른 효소뿐만 아니라 활성 산소종으로 알려진 유해 분자로부터 식물을 보호하는 항산화 물질과 결합한다. 그 결과 일반 벼보다 광합성을 74.4% 증가시켰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연구진은 산화아연 나노입자가 벼의 잎에 공생하는 미생물의 다양성을 더 잘 유지한 것도 수확량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호박과 자주개자리 같은 다른 식물에서도 수확량 증가가 관찰됐다고 밝혔다.
코네티컷 농업 실험소의 제이슨 화이트 박사는 “나노 스케일의 미량 영양소는 활성 산소 종과 관련된 여러 독특한 메커니즘을 통해 작물의 기후 회복력을 크게 높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열파의 피해로부터 곡물을 지키기 위한 연구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2020년에는 중국과학원의 구오 팡칭 박사 연구팀이 열파를 견디도록 유전자를 변형한 벼를 개발해 수확량을 20% 높이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식물이 빛에 노출되면 광합성 시스템인 PSII(광계 II)라는 단백질 복합체가 전자를 활성화해 광합성을 돕는다. 그런데 열이나 빛이 너무 강하면 이 단백질 복합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식물은 이때 자체적으로 ‘D1′이라는 단백질을 만들어서 망가진 광합성 과정을 복구한다.
D1을 만드는 유전자는 세포핵 밖에 있는 엽록체에 있다. 하지만 엽록체 유전자는 변형하기 어렵다. 구오 팡칭 박사는 대신 세포핵 유전자로 D1을 만드는 방법을 찾았다. 과도한 열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D1이 나오면 실제 PSII를 복구하는 지 확인했다.
연구진은 실험용 식물인 애기장대로 실험을 진행했다. 새포핵 유전자를 변형한 애기장대 새싹은 41도의 온도에서 8시간 30분 동안 생존했다. 유전자를 바꾸지 않은 대조 식물은 모두 죽었다.
애기장대의 변형 유전자는 담뱃잎과 벼에서도 같은 효과를 보였다. 연구진은 야외 시험 농지에 실제로 애기장대 유전자를 넣은 벼를 심어서 수확량을 비교했는데, 최대 20% 더 많은 수확량을 기록했다.
참고 자료
PNAS(2024), DOI : https://doi.org/10.1073/pnas.2414822121
Nature Plants(2020), DOI : https://doi.org/10.1038/s41477-020-0629-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