잰시 맥피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 인간연구프로그램(HRP) 부수석과학자는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제2회 한미 우주의학심포지엄에서 “미국은 이르면 2025년 달 주위 궤도에 네 명의 우주인을 보내는 아르테미스 2호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며 “우주인 생존에 필요한 기술 가운데 ‘미싱 테크놀로지(missing technology·빠진 기술)’를 국제 협력을 통해 확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하대 우주의학연구소가 주최한 심포지엄은 미국의 달과 화성 유인 탐사에서 양국 연구자들과 기업, 기관과 협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한국은 앞서 2021년부터 아르테미스 협정에 10번째 가입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 원자력, 통신 컴퓨터, 바이오헬스 분야에서의 협력을 기대하고 있다.
◇달 넘어 화성까지 바라보는 미국
나사 관계자들은 이날 아르테미스 프로그램과 향후 추진할 화성 탐사를 포함해 미국의 유인우주개발 방향을 설명하고 협력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나사는 지난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54년 만에 오는 2026년 우주인이 다시 달 표면을 밟게 한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2031년까지 모두 네 차례 달 표면 탐사를 계획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을 비롯해 42국과 아르테미스 협정을 맺고 유인(有人) 달 탐사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계획은 달에서 머물지 않는다. 나사가 밝힌 다시 달로 돌아가는 이유는 삼중수소, 희소 금속 같은 달 자원 탐사 목적도 있지만, 화성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 더 강하다. 한동안 나사는 ‘달로 돌아간다(return to moon)’을 모토로 내세웠지만, 최근엔 ‘달을 교두보로 삼아 화성까지 진출한다(moon to mars·달에서 화성까지)’로 구상을 확장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은 화성 유인 탐사 계획의 일부인 셈이다. 나사는 장기 유인 우주탐사에 대비하고 있다. 맥피 부수석과학자는 “나사는 인간이 지구 저궤도와 달, 화성에서 맞닥뜨릴 위험의 종류와 심각성을 세부적으로 나눴다”며 “인간 연구 프로그램은 위험을 줄이고 활동을 원활하게 할 방법을 찾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고 했다.
◇민간 우주정거장서 유인 탐사 준비
나사는 1950년대 이래 유인 우주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사람이 장기간 방사선이 쏟아지고 중력이 거의 없는 우주에 머물면 신체 변화를 겪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암에 걸릴 확률도 커지고 심장에 이상이 오기도 한다. 몇 달간 폐쇄된 우주선에서 고립된 상태로 머물면 심리적 압박도 커진다.
나사는 국제우주정거장 운영 과정에서 얻은 우주인들의 건강 정보를 토대로 달과 화성 유인 탐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협에 대비하고 있다. 나사는 국제우주정거장 퇴역에 대비해 민간기업이 우주에 쏘아 올릴 상용 우주정거장에서 인간 연구 프로그램을 추진할 계획이다.
데이비드 보먼 나사 HRP 책임자는 “나사는 우주로 나가는 모든 우주인에게 인간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을 제안하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하고 있다”며 “민간 우주정거장인 액시엄 스테이션과 오비털리프, 스타랩과도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액시엄스페이스는 2026년부터 ISS에 붙일 실험 모듈 3개를 차례로 지구 저궤도에 쏘아 올려 엑시엄 스테이션을 구축할 예정이다. 이들 모듈은 국제우주정거장이 퇴역하는 2030년 이후 계속해서 우주에 머물며 과학실험과 우주제조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시에라 스페이스가 구축하는 오비털리프는 2027년까지, 미국 보이저 스페이스와 프랑스 에어버스의 스타랩은 늦어도 2028년까지 지구 저궤도에 국제우주정거장보다 작은 규모로 구축될 계획이다.
나사는 유인 우주탐사의 다양한 문제를 미국의 힘만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세계 각국의 연구기관과 과학자, 기업과 협력하고 있다. 나사에 따르면 미국은 전 세계 135국과 6700개 협력 관계를 맺고 이 가운데 지금도 760개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유인 우주 탐사에서 한국 위상 높아져
미국 유인 우주 개발에서 우주인 건강 문제를 책임진 전문가들이 국내 민간 행사에 2년 연속 참가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김규성 인하대 우주의학연구소장은 “우주의학과 헬스케어 분야는 미국도 초기 단계여서 한국과 협력 가능성을 점점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한동안 우주개발에서 미국과 소원한 관계였지만, 최근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다. 보먼 책임자도 이날 한국이 개발한 달 우주환경 모니터(LUSEM)와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의 선발대 역할을 한 한국의 첫 달 탐사선 다누리를 양국 간 주요 협력 성과로 꼽으며 신뢰감을 표시했다. 한국 기업들도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 제약사 보령은 미국의 민간우주기업 액시엄 스페이스와 조인트 벤처인 ‘브랙스 스페이스(BRAX space)’를 설립하고 우주 바이오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있다. 보령은 올해 10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우주행사인 국제우주대회(IAC)에서는 스타트업 발굴 대회 최종 결선도 여는 등 국제적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중력이 거의 없는 우주에 가면 인공장기를 키우고 신약 후보물질 발굴에 필요한 세포 배양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다. 박찬흠 한림대 의대 교수는 2033년까지 지구 저궤도에서 달까지 신약 발굴과 기초 의학 실험이 가능한 우주 실험실을 쏘아 올리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노퍽 주립대 윤학순 교수가 설립한 스페이스린텍은 강원도 정선의 수직갱도에 우주의학 연구와 신약 발굴이 가능한 무중력 실험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최기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한국이 당장 제2 우주인을 선발해 우주로 보내기는 쉽지 않지만 의학과 바이오헬스 분야를 우주와 접목해 미국의 달과 화성 탐사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유인 우주 프로그램에 시동을 거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