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맥은 우주인을 괴롭히는 대표적인 질병이다. 1987년 옛소련의 우주인 알렉산더 라베이킨은 우주정거장 미르에 머물다가 부정맥이 발견돼 지구로 조기 귀환했다. 최근 달과 화성으로 가는 장기간 우주 탐사가 추진되면서 심장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실험동물이나 평면 접시에서 키운 인간 심장 세포로 실험을 해 한계가 있었다.
한국인 과학자가 이끄는 국제 공동 연구진이 실제 심장처럼 3D(입체)로 배양한 조직으로 중력이 거의 작용하지 않는 우주 공간에서는 갑자기 늙은 것처럼 심장이 약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스페이스X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가 원하던 대로 당장 화성으로 가다가는 심장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김덕호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의생명공학과 교수 연구진은 24일 국제 학술지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국제우주정거장에서 30일 동안 심근세포로 실험한 결과, 수축하는 힘이 현저하게 줄고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지는 부정맥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김 교수 연구팀이 미 국립보건연구원(NIH), 미 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진행한 ‘우주 생체조직 칩(Tissue Chips in Space)’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이 프로젝트는 이름처럼 3D로 키운 인체 조직을 작은 칩에 넣고 우주 공간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실험하는 것이다. 심장조직이 우주 공간에서 어떻게 변하고, 미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약물에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도 확인하기 위해 계획됐다.
연구진은 다 자란 세포를 거꾸로 분화시켜 원시세포인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로 만들었다. 이 세포를 다시 심장에 있는 심근세포로 자라게 했다. 기존 실험처럼 배양접시에서 평면으로 키우지 않고 실제 심장처럼 3D로 배양했다. 심근세포가 들어있는 바이오칩은 2020년과 2023년 두 차례에 걸쳐 스페이스X가 만든 로켓에 실려 우주로 갔다.
바이오칩은 30일 동안 우주정거장에 머물렀다. 그 사이 미국 우주인들이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 바이오칩이 지구로 귀환해 9일 동안 회복 기간을 갖고 우주 공간에서 변화했던 수치들이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오는지도 살폈다.
실험 결과를 보면 왜 우주인이 부정맥에 시달렸는지 알 수 있다. 실험 결과 우주 비행을 경험한 바이오칩은 지구보다 수축하는 힘이 현저하게 감소하고, 부정맥이 증가했다. 우주에서 한 달 있는 것만으로도 심혈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우주 공간에 머무른 지 19일이 되는 날에 부정맥 위험이 지구 샘플과 비교해 크게 증가했다. 우주 비행을 경험한 바이오칩은 지구로 귀환하고 9일 동안 회복 기간을 거친 이후에도 수축력이 여전히 떨어진 상태였다. 김덕호 교수는 “우주 비행이 심혈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마치 노화가 심혈관 건강에 미치는 것과 유사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심장 박동은 1초마다 이뤄지지만, 우주에선 5배나 더 느려졌다. 연구진은 우주로 간 세포는 심장 질환의 특징인 염증과 산화 관련 유전자도 늘어났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우주 미세중력에서 심장을 보호할 약물 실험 장치도 지난해 우주로 보냈다”며 “우주에서 통하는 약물은 지구에서 나이든 사람이 심장 기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실험 결과는 민간인의 우주 여행과 화성 같은 심우주 탐사가 본격화되는 와중에 발표돼 더욱 관심을 끈다. 연구진은 “우주 비행 샘플에서는 미토콘드리아의 절반 이상에서 구조적 이상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미토콘드리아 기능 이상은 여러 질병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장기간 우주에 체류해야 하는 심우주 탐사나 달 기지 건설 전에 정확한 원인과 대처법을 찾아야 한다.
이번 실험을 이끈 김덕호 교수는 줄기세포를 사람의 장기와 비슷한 구조로 배양한 오가노이드(organoid)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오가노이드는 동물 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일종의 ‘미니 장기(臟器)’다. 김 교수는 미국으로 가기 전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나노기술 기반의 바이오칩을 개발하기도 했다. 바이오칩은 작은 기판 위에서 생체 물질의 반응을 실험하는 장비인데, 오가노이드와 바이오칩을 결합해 이번 실험에 쓰인 심장조직 바이오칩을 만든 것이다.
김 교수는 2015년 미국에서 미니 장기를 만드는 바이오 기업인 큐리바이오를 창업하고, 오가노이드와 바이오칩 기술을 한데 결합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인체 심상조직으로 만든 바이오칩이다. 큐리바이오는 현재 화이자와 버텍스 파마슈티컬스, 바이오젠 같은 글로벌 제약사에 오가노이드를 공급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오가노이드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신약 개발 속도를 높인 게 주효했다고 김 교수는 밝혔다.
김 교수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우주선에 핵연료를 활용하더라도 화성을 가는데 2년이 넘게 걸린다”며 “이론적으로 화성을 탐사하고 오면 뼈와 근육이 50% 이상 소진되고 생물학적으로 15년 이상 늙는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심장에서 그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다. 그는 “우주인들의 노화와 질병을 해결할 수 있도록 미니 장기로 관련 모델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의대 교수이자 바이오 기업 창업자이지만, 원래는 기계공학도였다. 포스텍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기계공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바이오칩을 연구하면서 의학으로 방향을 바꿔 존스홉킨스 의대로 유학을 가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한국도 우주항공청이 신설되고, 우주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들었다”며 “이번 연구가 진로를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소개된다면 기초과학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이공계 기피 현상을 막는 데 일조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PNAS(2024), DOI : https://doi.org/10.1073/pnas.2404644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