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로 인한 폭염이 전 세계를 덥쳤다. 서울은 12일 현재 21일째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고 당분간 기온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없다. 폭염에 전력 수요도 치솟고 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7일 오후 2~3시 1시간 평균 전력 총수요 추계가 100.203GW(기가와트)를 기록했다. 작년 8월 100GW를 넘은 이후 1년 만에 다시 100GW를 넘어섰다. 폭염이 일상화되면서 전력 총수요 100GW 시대가 열린 셈이다.

과학자들이 냉방에 사용하는 전력을 늘리지 않고도 건물의 온도를 낮추는 방법을 찾고 있다. 냉방 시스템에 사용하는 에너지를 줄이는 새로운 건축법이다. 건물 외벽 모양을 바꿔 땅에서 올라오는 열을 차단하고, 차양을 알아서 여닫아 기온을 조절하는 건물 설계안도 나왔다. 첨단 기술 대신 전통 건축에서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 온도를 낮추는 방법도 찾고 있다. 폭염과 과학의 전쟁이 건물에서 벌어지고 있다.

건물 외벽을 지그재그 패턴으로 설계하고 복사냉각 도료를 이용하면 최대 3도까지 건물 온도를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미지는 네덜란드 건축가그룹 MVRDV이 제안한 지그재그 외벽 건물의 모습./MVRDV

◇지그재그 외벽으로 냉방 효과 구현

유안 양(Yuan Yang)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진은 지난 9일 국제 학술지 ‘넥서스’에 “건물 외벽을 지그재그 형태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건물 온도를 섭씨 3도까지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이 제안한 건물 외벽은 마치 계단을 벽에서 45도 정도 각도로 기울여서 붙여 놓은 모양이다. ‘<’ 모양의 구조가 벽에 붙어 있는 형태다.

연구진은 건물의 지붕에 복사 냉각 도료를 바르면 실내 온도를 낮출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복사 냉각은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빛의 흡수·반사를 제어해 복사열을 내보내는 식으로 온도를 낮추는 기술이다. 간단히 말해 건물 내부의 열을 적외선 형태로 밖에 내보내는 것이다.

문제는 복사 냉각 도료는 햇빛이 바로 내리쬐는 건물의 지붕에만 적용할 수 있고, 훨씬 더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벽에는 사용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복사 냉각 도료는 적외선을 우주로 방출하는 동시에 흡수하는 특성까지 지니고 있다. 건물의 벽은 지면에서 반사되는 적외선까지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복사 냉각 도료를 이용하면 오히려 건물의 온도가 오를 수도 있다. 그동안 지면에서 반사된 빛이 흡수되지 않는 옥상에만 이를 사용한 이유다.

연구진은 지그재그 모양의 패턴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하늘을 향하는 면에는 빛을 방출하는 복사 냉각 도료를 발라서 빛을 차단하고, 반대로 지면을 향하는 면에는 빛을 반사할 수 있는 금속 필름 같은 다른 도료를 발라서 열을 차단하는 구조다.

그래픽=정서희

연구진은 미국 뉴저지의 야외에 지그재그 벽 구조를 가진 1m 높이의 모형 건축물을 제작해 실제 효과를 확인했다. 실험 결과 일반적인 평평한 벽을 가진 건물보다 지그재그 벽을 가진 건물이 평균적으로 2도 정도 온도가 낮았다. 가장 더운 오후 1~2시에는 지그재그 건물 온도가 3도까지 떨어졌다.

치롱 청(Qilong Cheng) 컬럼비아대 박사후 연구원은 “건물의 창문 크기 등 여러 요인에 따라서 냉각 효과에 차이가 있지만, 가상실험 결과 2도까지 온도를 낮추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최대 4분의 1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기존 건물은 골판지 패널 같이 저렴한 자재를 이용해서 지그재그 구조로 개조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겨울에 지그재그 외벽의 방향을 바꾸면 열을 흡수해 온도를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선인장 모방한한 냉난방 차양

외벽 구조를 바꿔서 건물 온도를 낮추는 시도는 국내 연구진도 하고 있다. 이황 아주대 건축학과 교수 연구팀은 인공지능(AI)을 이용해 건물 내부의 온도와 쾌적성을 실시간으로 예측해 형태를 바꾸는 3차원 건물 차양을 개발했다.

아주대 연구팀은 선인장이 숨구멍을 이용해 열을 조절하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선인장은 빛과 습도에 따라서 숨구멍인 기공(氣孔)을 열고 닫는다. 아주대 연구진은 선인장의 기공을 닮은 건물 차양을 만들었다. 기온이 많이 올라가면 형상기억 합금이 수축하면서 차양을 닫아 햇빛을 가린다. 기온이 내려가면 이번에는 형상기억 고분자가 휘어지면서 차양이 열리고 햇빛이 들어온다.

아주대 연구진은 2021년 국제 학술지에 이 기술을 처음 소개했고, 2023년에는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해 활용성을 더욱 높였다. 이황 교수는 “실용적인 개발을 통해 현장 검증을 마친 만큼 스마트팜, 태양광 모듈을 비롯한 기타 사회 인프라 건설에도 폭넓게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주대 연구진은 선인장처럼 외부 기온을 식별해서 자동으로 차양을 열고 닫는 기술을 개발했다. 아주대 연구진은 이 기술에 '머신 런드 파사드(Machine-Learned Facade)'라는 이름을 붙였다./이황 교수

폭염에 맞서기 위해 전통적인 건축 기법을 소환하는 경우도 있다. 영국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은 모로코의 리아드 같은 페르시아식 정원이 건물이 흡수한 열을 분리해 냉각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ㅁ’ 모양의 중앙 정원이 건물에 흡수된 열이 안뜰의 식물로 이어져 건물 내부 온도가 낮아진다는 것이다.

스페인의 외부 블라인드도 폭염에 맞서는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스페인에는 건물 사이의 골목 같은 공간에 커다란 외부 블라인드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외부 블라인드는 건물에 자연적인 그늘을 만들어줘서 온도가 오르는 걸 막아준다. 중동 건축양식인 윈드캐처는 건물 내외부 공기를 순환하는데 도움을 주고, 외벽을 덮는 담쟁이덩굴도 식물 자체의 증발산 효과 덕분에 건물 외벽 온도가 오르는 걸 막아준다.

참고 자료

Nexus(2024), DOI : https://doi.org/10.1016/j.ynexs.2024.100028

Automation In Construction(2023), DOI : https://doi.org/10.1016/j.autcon.2023.1050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