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베릴은 7월 초 미국 텍사스를 강타해 큰 피해를 입혔다. 최소 36명이 숨지고, 수백만 명이 정전과 호우 등 피해를 입었다. 유럽 중기기상예보센터와 미국 국립허리케인센터는 베릴이 텍사스가 아니라 멕시코에 상륙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지만, 베릴은 예상과 달리 텍사스에 상륙해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베릴의 경로를 정확하게 예측한 곳도 있다. 유럽과 미국의 기상청이 아니라 구글의 인공지능(AI) 기상예보 시스템인 ‘그래프캐스트(GraphCast)’다. 커다란 방 하나만한 크기를 사용하는 기상청의 슈퍼컴퓨터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베릴의 경로를 개인용 컴퓨터(PC) 한 대면 작동하는 AI 그래프캐스트는 정확하게 예측했다.

그래프캐스트를 개발한 구글 자회사 딥마인드의 수석 과학자인 레미 램은 “유럽 중기기상예보센터에서 수집한 40년간 전 세계 기상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AI 프로그램을 훈련시켰다”며 “과거 데이터에서 직접 학습한 결과를 바탕으로 슈퍼컴퓨터가 몇 시간씩 걸리는 10일 예보를 1분 안에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상예측의 주도권이 슈퍼컴퓨터에서 AI로 넘어갈까.

유럽 중기기상예보센터(ECMWF)가 지난 7월 4일 예측한 허리케인 베릴의 경로. 미국 텍사스 해안이 아닌 멕시코 해안에 상륙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실제 베릴은 텍사스 해안에 상륙했다./bennollweather

◇일주일 단기 예보는 AI가 이미 앞서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기상예측과 일기예보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이번에 허리케인 베릴의 경로를 미국, 유럽 기상청보다 정확하게 예측한 구글 그래프캐스트는 작년 11월 공개됐다.

그래프캐스트는 40년간 기상정보를 바탕으로 지구의 위도와 경도를 0.25도 간격으로 나눠서 100만개의 격자를 만들었다. 또 고도 80㎞ 높이까지 37개의 층을 나눠서 보다 세밀한 예측을 진행했다. 구글 딥마인드 팀은 “그래프캐스트는 기상정보를 제공한 유럽 중기기상예보센터의 수치예보모델보다 1380개 테스트 항목에서 90% 이상 높은 정확도를 보였다”고 밝혔다.

수치예보모델은 지구의 물리 법칙을 바탕으로 앞으로 일어날 기상현상을 수학적 계산을 통해 예측하는 시뮬레이션(가상실험) 기술이다. 이런 모델을 독자 기술로 개발한 나라는 열손가락에 꼽힌다. 슈퍼컴퓨터가 수치예보모델을 돌려 기상을 예측한다. 매 순간 바뀌는 기상 상황에 따라 매번 새로운 계산을 해야 하는데, 방 하나 크기의 슈퍼컴퓨터를 동원해도 몇 시간씩 걸린다. AI가 이를 1분 안으로 단축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일주일이나 10일 단기 예보는 AI가 기존의 수치예보모델보다 나은 성능을 보인다고 평가한다. AI 기상예측 모델 ‘카리나’를 만들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강대현 선임연구원은 “일주일 정도의 예보에서는 AI가 수치예보모델을 뛰어넘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라며 “AI의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고, 장기 예보에서는 문제가 있지만, 단기 예보에서 만큼은 성과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AI의 발전 속도가 예상보다 빠른 데다 중앙처리장치(CPU) 기반인 슈퍼컴퓨터와 달리 AI는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이어서 더 빨리 더 다양한 정보를 학습할 수 있다. 미국 메릴랜드대의 기상학자 마리아 몰리나 교수는 이런 변화에 대해 “예보를 생성하는 데 슈퍼컴퓨터가 필요 없고, 노트북만으로도 할 수 있다”며 “일기예보의 전환점”이라고 표현했다.

기상청 슈퍼컴퓨터 4호기의 모습. 전 세계 기상청은 이런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기상예측을 한다./연합뉴스

◇ICT 기업들 각축…기상예보 시장 매년 10% 성장

기상예보 시장은 단순히 출근길 일기예보를 뛰어넘는 산업적 파급력이 있다. 중장기 기상예측은 기업의 이익과 직결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마켓츠앤드마켓츠에 따르면, 전 세계 기상예보 시장 규모는 2023년 19억달러(약 2조 6106억원)에서 2028년 28억달러(약 3조 8472억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한국기상산업기술원은 2027년 전 세계 기상예보 시장 규모를 이보다 큰 58억 3504만달러로 예측하기도 했다.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도 저마다 AI 기상예측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AI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는 ‘어스-2′라는 이름의 기상예측 AI를 공개했다. 지구 대기환경을 컴퓨터에 구현한 ‘디지털 트윈 지구’를 통해 기상예측을 하는 기술이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지난 5월 기상예측 AI인 ‘오로라(Aurora)’를 공개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로라가 대기오염을 신속하게 예측하는 데 특화됐다고 소개했다. 오로라는 5일간 전 세계 대기오염 예측과 10일간 일기예보가 가능하다.

오로라 개발에 참여한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의 파리 퍼디카리스 수석연구원은 “AI가 기상예측을 할 수 있도록 방대한 양의 과거 날씨 데이터를 학습시킨다”며 “대화형 AI인 챗GPT 학습에 사용한 데이터보다 16배 많은 데이터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퍼디카리스 수석연구원은 짧으면 2년, 길면 5년 안에 기상예측 AI가 각국 기상청의 일기예보에 활용될 것으로 예상했다.

구글 딥마인드는 지난달 22일 네이처에 ‘뉴럴GCM(General Circulation Models·대기 대순환 모델)’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기존의 기상예측과 AI 기상예측의 장점을 섞은 방식이다. AI는 빠르고 단기 예측에 강하지만, 장기 예측은 서툴다. 반면 기존의 기상예측모델은 장기 예측 정확도가 높은 대신 느리다. 전문가들은 이제 AI와 슈퍼컴퓨터가 기상예측에서 경쟁자가 아니라 협력 관계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만 기상청은 엔비디아의 기상예측 AI를 올해부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유럽 중기기상예보센터도 다양한 기상예측 AI의 가능성을 평가하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의 그래프캐스트(GraphCast)가 그린 기상 예보./구글 딥마인드

◇한국도 기상예측 AI 개발 속도 내

한국도 기상예측 AI를 개발하고 있다. 국립기상과학원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2021년부터 기상예측 AI 모델인 ‘알파웨더’를 개발 중이다. 레이더 영상을 학습해서 강수를 예측하는 모델을 개발하는 게 목표다. 현재 6시간 이내 초단기 강수 예측을 실증하고 있다. 이 모델은 한 번 예측에 필요한 시간이 40초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KIST도 기상예측 AI 모델인 ‘카리나’를 개발 중이다. 카리나는 걸그룹 에스파의 멤버 카리나의 이름을 땄다. KIST 카리나는 1979~2015년 유럽 중기기상예보센터 재분석 자료를 학습했다. 다만 학습량과 학습 시간은 다른 기상예측 AI 모델보다 훨씬 적었다. 37년치 자료를 A4용지 100장 정도로 요약해 학습했다. 강대현 KIST 선임연구원은 “다른 AI 모델은 많은 데이터를 학습하면서 무거운 편인데 우리는 해상도를 낮추더라도 가볍게 작동할 수 있도록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딥마인드의 그래프캐스트가 지구를 위도와 경도 각각 0.25도씩 나눠서 예측했다면, 카리나는 이보다 10배 큰 격자로 지구를 나눴다. 해상도가 떨어지는 대신 그만큼 효율적으로 작동한다는 설명이다. 강 선임연구원은 “카리나의 목표는 일기예보가 아니라 2개월 정도 장기적인 기상예측을 통해 산업계가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2027년 2월까지 프로젝트를 마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상청도 AI 모델 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기상청은 AI 모델을 개발한 글로벌 민간 기업들과 함께 검증 작업을 수행하고, 있고, AI를 적극 활용한 3세대 예보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Science(2023), DOI :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di2336

arXiv(2024), DOI :

https://doi.org/10.48550/arXiv.2405.13063

arXiv(2024), DOI : https://doi.org/10.48550/arXiv.2403.10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