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중립 요구가 높아지면서 전기차 보급이 활발해지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부족한 충전 시설로 전기차 구매를 고민한다. 이런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게 ‘전기차 무선 충전’ 기술이다. 스마트폰을 패드 위에 얹으면 충전이 되듯 전기차를 주차 구역에 매설된 패드 위에 두면 충전된다.
미국전기전자공학회(IEEE)가 발간하는 스펙트럼지는 지난 27일(현지 시각) 에너지부 산하 오크리지 국립연구소(ORNL)가 경량 전기 자동차를 스마트폰보다 빨리 충전하는 270㎾(킬로와트) 무선 전력 전송 기술을 성공적으로 시연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시연을 한 연구진은 포르쉐의 전기차 ‘타이칸’의 배터리를 10분 만에 50% 채울 수 있는 성능이라고 설명했다.
오크리지연구소 연구팀은 지름 50㎝ 정도의 ‘다상(多相) 전자기 결합 코일’ 패드를 이용해 전기차를 충전했다. 다상 전자기는 위상이 다른 여러 개의 전력으로 자기장을 일으키는 방식을 말한다. 연구팀이 개발한 시스템은 다상 전자기 코일을 특수한 형태로 배치해 회전 자기장을 일으키고 전력을 증폭해 전송한다. 회전 자기장은 무선으로 전력이 전송될 때 전력이 손실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무선 전력 전송, 즉 무선 충전의 기본 원리는 19세기 영국 물리학자 패러데이가 발견한 ‘전자기유도(電磁氣誘導)’ 현상이다. 간단히 말해 전선에 전류가 흐르면 주변에 자기장이 생기고, 이 자기장의 에너지가 가까운 곳에 있는 다른 전선에 전류를 발생시키는 물리학 원리이다.
스마트폰이든 전기차이든 충전 패드 안에는 코일이 감겨 있다. 패드에 전원을 연결하면 코일이 자석이 되면서 여기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자석의 힘, 즉 자기장이 뻗어 나온다. 스마트폰이나 전기차에도 코일이 있다. 패드에서 뻗어 나온 자기장이 그 위에 있는 스마트폰이나 전기차의 코일을 통과하면서 전류가 발생한다.
오크리지연구소가 개발한 충전 패드와 전기차 하부 사이 거리는 12㎝ 정도다. 연구팀은 무선 전력 전송 시스템을 활용해 포르쉐 타이칸을 95% 이상의 효율로 10분 이내에 절반 이상 충전했다고 설명했다. 이 무선 충전 시스템은 과도한 전압·전류나 과열, 단락처럼 충전 중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중단되도록 설계됐다.
전기차 무선 충전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오크리지연구소는 지난 3월 현대차(005380)의 전기차 코나EV를 활용해 96% 효율로 100㎾를 무선 충전하는 데 성공했다. 단 3개월 만에 전기차 무선 충전 성능을 두 배 이상 끌어 올린 것이다. 이번 연구에 독일 폭스바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만큼 전기차 무선 충전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오머 오나르(Omer Onar) 오크리지연구소 수석연구자는 “포르쉐 타이칸용으로 설계된 전력 수신기 코일은 기존 시스템보다 8~10배 더 높은 전력 밀도를 보인다”며 “충전 용량을 생각했을 때 이번에 개발한 시스템은 가장 가벼운 무선 충전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목표는 더 작은 시스템에서 더 높은 밀도를 달성해 효율성과 성능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도 전기차 무선 충전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무선 충전이 가능한 제네시스 GV60 전기차를 시연한 뒤, ‘전기차 무선 전력 전송을 위한 무선 통신 방법 및 장치’ 특허를 출원했다. 현재 특허검색시스템 키프리스(KIPRIS)에 공개된 특허 6건 외에도 다수의 전기차 무선 충전 특허를 확보하고 있다. KG모빌리티(003620)도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IT(정보기술) 전시회인 CES에서 무선 충전이 가능한 전기차 토레스EVX를 전시했다.
다만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무선 충전을 위한 표준특허 활동을 수년 전부터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다”면서도 “현재로서는 무선 충전 서비스를 정식 운영할 계획은 없고, 무선 충전 관련 기술은 더욱 발전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