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경기도 화성의 리튬일차전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화재는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칠 정도로 피해가 컸다. 배터리셀 1개에서 시작된 불길은 공장 전체를 집어삼켰다. 이 공장은 군에 납품하는 일차전지를 생산하던 곳이다.

일차전지는 충전을 할 수 없다.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리튬이차전지는 충전이 가능하다. 일차전지는 주로 군에서 사용된다. 야전에서 충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차전지가 많이 쓰이다 보니 군에서도 폭발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 화재 사고 이후 이뤄진 조사에서는 국내 군부대에서 1년에 9차례 이상 일차전지 폭발 사고가 일어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전 세계 군 연구기관이 리튬일차전지를 대체할 새로운 기술을 찾고 있다. 군부대 내에서 화재 사고는 특히나 위험하다. 각종 탄약, 화약류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화재 위험성이 낮은 전지 기술은 국방뿐 아니라 우주 분야에서도 활용도가 크다. 섭씨 영하 수백도에서 영상 수백도를 오가는 극한의 환경을 갖는 우주에서 임무를 안전하게 수행하려면 리튬일차전지를 대체할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다. 안전한 일차전지는 군이 먼저 개발할까, 아니면 우주 연구자들일까.

지난달 24일 오전 경기 화성에 있는 일차전지 제조 업체인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곳에서는 군용 리튬일차전지를 생산하고 있다. 리튬일차전지는 화재와 폭발 위험성이 커 군에서도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연합뉴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방부에서 제공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우리 군에서 발생한 리튬일차전지 사고는 총 92건이다. 육군에서 84건, 해병대에서 8건의 사고가 났다. 평균적으로 매년 9차례 이상 리튬일차전지로 인한 사고가 발생했다는 의미다. 사고 중 28건은 단순히 보관하던 중이던 전지가 폭발해 발생했다. 일부 부대에서는 폭발을 막기 위해 리튬일차전지를 냉장고에 보관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튬전지의 화재 위험성이 큰 이유는 온도가 올라가거나 과도한 충·방전, 물리적 충격을 받으면 열폭주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열폭주는 연쇄적인 화학 반응으로 제어할 수 없이 온도 상승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소화수를 뿌리는 것으로는 진화가 불가능하다. 전극에 쓰이는 리튬 금속의 반응성도 문제다. 리튬 금속은 반응성이 커 물과 만나면서 수소 가스를 만든다. 수소 가스는 폭발하기 쉬워 화재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세계 각국에서 군이 폭발 위험이 낮으면서도 에너지 용량이 큰 일차전지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다. 군 연구기관은 리튬일차전지를 대체할 차세대 배터리 기술로 리튬/탄소플루오르화물(Li/CFx) 전지에 주목하고 있다.

리튬 전지는 음극에 저장된 리튬 이온이 양극으로 이동하면서 전자의 이동을 불러 전류를 발생한다. 현재 우리 군은 리튬/염화티오닐(Li/SOCl₂) 일차전지를 사용한다. 음극으로는 리튬 금속을 사용하고 양극에는 탄소를 사용한다. 전해질로는 티오닐을 사용한다. 리튬/탄소플루오르화물 전지는 탄소플루오르화물을 양극으로, 전해질로는 플루오르화붕소(BF)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기존 방식보다 에너지 밀도가 높고 화재 위험이 낮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고전력에 적합하지 않고 사용 초기에 전압 지연이 심하다는 단점이 있다.

최근에는 이산화망간(MnO₂)과 혼합해 성능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산화망간은 일차전지 소재로 사용했을 때 빠른 전류 방전 속도, 안정적인 작동 전압 같은 장점이 있으나 에너지 밀도가 낮다는 한계가 있다. 두 전지 소재의 적절한 비율을 찾아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식의 연구가 진행 중이다.

미국의 배터리 업체 레이요백에서 판매하는 리튬/탄산플루오르화물(Li/CFx) 일차전지. 전 세계 군에서는 리튬일차전지의 폭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안전한 전지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레이요백

미 해군연구소(ONR)는 군·학 협력 프로젝트 ‘넵튠(Neptune)’을 가동해 리튬/탄소플루오르화물 전지를 연구하고 있다. 넵튠은 미국의 국가 방위 전략(NDS) 중심의 연구 지원 프로그램으로 국방 분야 기술은 물론 민간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의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미국 카네기멜론대 연구진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리튬일차전지뿐 아니라 저렴한 소듐(Na)을 이용한 소듐일차전지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군 출신의 연구자는 “미군은 이르면 올해 말 연구를 마치고 새롭게 개발한 리튬일차전지를 보급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연구 속도가 빠르다”고 말했다.

한국 군도 리튬/탄소플루오르화물 전지 개발에 나섰다. 국방과학연구원(ADD)은 2020년부터 올해까지 ‘리튬계 일차전지 기술 개발’이라는 이름의 연구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ADD는 기존 리튬일차전지보다 2배 이상의 에너지 밀도를 내는 것을 목표로 연구하고 있다. 필름 형태의 파우치셀로 만들면 에너지 밀도를 크게 높이면서도 다양한 구조로 만들 수 있다.

리튬/탄소플루오르화물 전지에 주목하는 곳은 군대뿐만이 아니다.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도 우주 탐사에 이 기술을 활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전지 업체 두 곳의 제품을 받아 시험한 이후 우수한 성능의 전지를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나사 제트추진연구소(JPL)는 목성 위성 탐사에 나서는 탐사선 ‘유로파 클리퍼’에 리튬/탄소플루오르화물 일차전지를 사용할 예정이다. 유로파 클리퍼는 올해 10월 발사돼 2030년 목성 궤도에 진입한다. 이후 목성의 위성 중 하나인 유로파에서 생명체의 흔적을 찾는 임무를 수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