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만든 일론 머스크는 2021년 비영리단체인 엑스프라이즈와 함께 1억달러(약 1378억원) 상금을 내걸고 탄소 제거 경진대회를 열었다. 혁신적인 ‘탄소 제거 기술(Carbon Dioxide Removal, CDR)’을 선보이는 팀을 뽑아서 수백억원의 상금과 투자를 약속했다.
전 세계 88국에서 1300여 팀이 머스크의 탄소 제거 대회에 뛰어들었다. 몇 차례 예선과 본선을 거친 끝에 지난 5월, 마지막 결선에 오를 스무 팀이 결정됐다. 엑스프라이즈는 “마지막 결선 과제는 1년 동안 1000t의 이산화탄소를 각자 제시한 기술로 제거하는 것”이라며 “향후 몇 년 안에 메가톤(100만t) 규모, 2050년까지 기가톤(10억t) 규모로 탄소를 제거할 수 있는 기술적 잠재력이 있는지 평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과는 내년 4월 22일에 발표된다.
결선을 앞두고 발표된 100대 기술에는 한국 팀도 들어갔지만, 결선에 진출한 20개 팀에는 없었다. 미국에 본사를 둔 팀이 7곳으로 가장 많았고, 캐나다 3곳, 영국 2곳이었다. 유럽이 4곳이었고, 인도와 오만, 케냐, 중국 기업이 각각 한 곳씩 선정됐다. 엑스프라이즈는 20팀을 대기, 광물, 토양, 해양 등 4개 부문으로 나눴다. 이 가운데 1억달러의 총 상금 중 1등 상금 5000만달러를 차지하게 될 팀은 어디일까.
◇12m 석회암 탑이 이산화탄소 흡수
전문가들은 기후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기가톤 규모의 탄소 포집·저장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가톤은 머스크와 엑스프라이즈가 궁극적인 탄소 제거 기술의 종착점으로 보는 기준이다. 1기가톤은 만재 상태의 미국 항공모함 1만척과 코끼리 2억마리, 인간을 제외한 모든 육상 포유류의 무게를 합친 것과 맞먹는 양이다. 인간은 지난해 약 36.8기가톤의 탄소를 배출했다. 이로 인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425ppm(1ppm은 100만 중의 1)을 기록했는데,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이 정도였던 마지막 시기는 약 300만년 전이다.
대기 속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직접탄소포집(Direct Air Capture)’ 기술은 여러 탄소 제거 기술 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스위스 기업인 클라임웍스는 이미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인 뒤 돌에 저장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엑스프라이즈에 나온 팀들도 대부분 비슷한 기술을 선보였다.
이 중에서도 미국의 에어룸이 주목 받는 건 인공적인 설비가 아니라 석회암 탑이라는 자연적인 구조물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석회암 속 탄산칼슘은 자연 상태에서도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인다. 문제는 이 과정이 자연 상태에서는 최소 몇 년은 걸린다는 점이다. 에어룸은 석회암을 고온으로 가열해서 자연 상태에서 몇 년씩 걸리던 과정을 3일로 단축했다.
에어룸이 캘리포니아 트레이시 인근에 지은 12m짜리 석회암 탑은 이미 엑스프라이즈가 제시한 1000t의 이산화탄소 제거 능력을 입증했다. 우승은 기가톤 단위로 확장이 가능한지 여부에 달려 있다. 이 회사는 이미 지난해 미국 에너지부가 주관하는 ‘프로젝트 사이프러스’ 사업을 따냈다. 미국 루이지내아 해안에 200만t 규모의 이산화탄소 포집 산업단지를 짓는 사업이다. 마이크로소프트, 탄소 제거 기술 지원 펀드인 프론티어의 투자도 받았다.
◇농장에 돌가루 뿌려 탄소 흡수
광물 부문은 비슷한 기술들이 경쟁하고 있다. 농장에 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 광물을 뿌리는 식이다. 어떤 광물을 뿌리는 지만 다르다.
아일랜드의 실리케이트 팀은 폐콘크리트를 가루로 만들어서 뿌린다. 건설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탄소도 제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규산염이 담긴 폐콘크리트 가루는 토양의 산성도를 개선하고, 농약이나 비료에 대한 의존도도 줄일 수 있다는 게 실리케이트 팀의 설명이다.
미국의 리토스카본과 영국의 언두는 현무암을 농장에 뿌리는 방식을 택했다. 현무암아 산성비를 맞으면 녹아서 탄산수소염으로 변한다. 탄산수소염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 작물 생산에도 도움을 준다. 어떤 광물을 이용하는지만 다르고 기본적인 아이디어 자체는 모두가 비슷하다.
유일한 중국 팀인 위안추는 ‘직접공기광물화(DAM)’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특수한 용액을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석회암에 격리하는 방식이다. 위안추는 이산화탄소 1t당 200달러 미만의 비용으로 1000년 동안 지속되는 안정적인 광물화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토양 부문에서 나온 해법은 바이오차가 주를 이룬다. 바이오차는 바이오매스(Biomass)와 숯(Charcoal)의 합성어로 곡물 줄기와 배설물, 음식물 찌꺼기를 섭씨 350도 이상에서 열분해해 만든 물질이다. 가축분뇨로 퇴비를 만들면 이산화탄소보다 300배 강한 온실가스인 아산화질소가 발생한다. 바이오차는 가축분뇨에서 나오는 아산화질소를 차단하고,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할 수 있다.
특히 인도의 타카차르는 대규모 공장이 아니라 농가에서 직접 바이오차를 만들 수 있는 기술로 주목 받았다. 타카차르가 개발한 이동식 바이오매스 생산 장비인 타카베이터(Takavator)는 트랙터와 함께 다니며 볏짚 같은 농업 부산물을 현장에서 바로 바이오매스로 바꿀 수 있다.
미국의 볼티드딥은 가축분뇨와 음식물쓰레기를 1000년간 지하 깊숙이 격리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폐기물을 1만년 이상 영구적으로 지질 구조에 격리할 수 있는 특허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으로 프런티어펀드로부터 5800만달러 규모의 사전구매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바닷물 산성도 낮추고, 거대 다시마 농장도
지구 표면적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바다는 거대한 이산화탄소 저장소가 될 수 있다. 엑스프라이즈도 해양 부문의 확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공대(칼텍)에서 창업한 캡츄라는 ‘직접해양포집(DOC)’이라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 기술은 바닷물 속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를 걸러내는 방식이다. 우리 몸의 나쁜 피를 걸러내는 투석처럼 바닷물 속의 이산화탄소만 걸러내는 기술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바닷물에 용해되면 해양 산성화가 일어나는데, 이렇게 되면 거대한 이산화탄소 저장소인 바다의 탄소 저장 기능이 약해지고, 해양생태계도 망가진다. 에브카본은 전기화학 공정을 활용해 해수를 산성수와 알칼리수로 분리한 뒤 알칼리수만 해양으로 다시 방출하는 방식을 선보였다. 플래닛터리는 해양에 알칼리성 물질을 뿌려 해수의 산성도를 낮추는 실험을 하고 있다. 두 회사는 해수의 산성화를 막는 기술로 해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인위적으로 해수를 알칼리성으로 바꾸는 게 해양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직은 미지수다. 에브카본은 산성수와 분리한 알칼리수를 실제 바다에 방출하지 않고 해양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연구 중이다.
네덜란드의 켈프블루는 거대한 다시마 농장을 만드는 방식을 쓰고 있다. 자체 제작한 수중 구조물을 이용해 자연 상태에서보다 다시마가 더 잘 자랄 수 있게 돕는 게 핵심이다. 해조류는 육지의 나무보다 이산화탄소를 5배 많이 흡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켈프블루는 남아프리카 나미비아와 뉴질랜드에 이미 다시마 농장을 운영하고 있고, 알래스카에도 추가로 농장을 조성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