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강원 철원군 심일훈련장에서 열린 한미연합군사령부·합동참모본부·주한미군사령부 연합 의무지원 야외기동훈련(FTX)에서 부상자 응급처치를 실시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군은 전장에서 부상병 관리를 위한 상온 보관용 인공혈액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연합뉴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적을 무력화할 강력한 무기만큼 아군을 지켜줄 의약품도 중요하다. 실제로 인류는 전쟁을 겪으면서 여러 의약품을 개발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류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세균에 감염돼 고통 받는 부상병을 지켜본 영국의 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전쟁이 끝난 후 페니실린을 개발해 수많은 인명을 구했다.

의약품은 최근 군사기술 연구에서도 주목 받고 있다. 전 세계에서 군사 활동을 하는 미군은 특히 인공혈액 기술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인공혈액은 혈액 세포를 인체 밖에서 배양하거나 인공 물질을 이용해 만든 혈액을 말한다.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한 군인에게 외과수술을 하려면 수혈해줄 피가 필요한데 이를 전쟁터에서 공수하기는 쉽지 않다. 대형 재난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공혈액이 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지난해 1월 ‘생체인공소생제품(FSHARP)’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프로젝트 목표는 냉장 보관하지 않고 상온에서 보관할 수 있는 전혈(全血) 인공혈액을 개발하는 것이다. 혈액에서 적혈구는 산소를 전달하고, 혈소판은 출혈이 발생했을 때 혈액을 응고시킨다. 혈액의 액체 성분인 혈장은 혈구와 혈소판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모든 혈액 구성 요소를 포함한 전혈은 냉장 상태로만 1달 보관할 수 있다. 상온에서는 보관할 수 없다.

미 해군 의무장교 출신의 장폴 크레티앵 DARPA 프로그램매니저(PM)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동안 헌혈이 감소하면서 많은 환자들이 수혈을 받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며 “이는 사상자가 많은 전장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미국 볼티모어 메릴랜드대 연구진은 4년 간 상온 보관할 수 있는 인공혈액 개발에 나선다. 이들은 혈액을 대체할 신물질 개발과 함께 대량 생산 방법을 찾고 있다. 일반적인 인공혈액은 줄기세포를 이용해 산소를 운반하는 역할을 하는 적혈구를 대량으로 배양해 만든다. 인공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인체 세포를 이용한 것이다. 세포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온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상온에서 인공혈액을 보관하려면 핵심인 적혈구를 대체할 합성물질을 찾아야 한다. 대표적으로는 산소와 결합력이 우수한 합성플루오르화 화합물이 있다. 산소는 물에 2.5% 녹을 수 있으나 합성플루오르화 화합물에는 40~50%까지 녹는다. 다만 안전성 문제로 아직 인공혈액 소재로 사용하지는 못하고 있다.

러시아 저격수의 총격을 받아 발에 큰 부상을 입은 우크라이나 군인이 군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외과 수술에 필요한 혈액 공급을 위해 각국 군은 인공 혈액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일본 자위대를 관할하는 방위성도 인공혈액을 개발하고 있다. 2019년에는 동물실험 결과를 발표하며 상온에서 1년 이상 보관할 수 있는 인공혈액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인공 적혈구와 인공 혈소판을 이용해 상온에서도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인공혈액을 수혈한 토끼 10마리 중 6마리가 살아 남으면서 안전성도 높였다. 아직 사람에게 적용하기 어려워 추가 연구를 하고 있다.

상온 보관 가능한 인공혈액 기술은 과학계도 관심을 갖던 주제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연구진은 지난해 국제 학술지 ‘바이오고분자학(Biomacromolecules)’에 ’중합 인간 헤모글로빈(polyHb)’을 이용해 인공혈액의 보관 온도를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중합 인간 헤모글로빈은 적혈구를 대체하기 위해 앞서 개발된 물질로, 상온에서 수년 이상 보관할 수 있다. 그러나 고혈압 같은 부작용 위험이 있어 실제로는 사용하지 않던 물질이다. 연구진은 중합 인간 헤모글로빈의 크기를 조절해 부작용을 줄이는 접근법을 택했다. 너무 크거나 작으면 혈관을 통과해 밖으로 빠져나가나 신장에서 걸러지지 않아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중합 인간 헤모글로빈을 네 가지 크기로 합성해 상온에서 보관 가능 기간과 수혈 시 나타나는 부작용을 확인했다. 그 결과 신장, 간, 심장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상온에서 1년 이상 보관할 수 있는 적절한 크기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다만 사람이 아닌 설치류인 기니피그로 실험한 만큼 실제 사람에게 사용하려면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안드레 팔머 오하이오 주립대 교수는 “아직 인공혈액이 실제 혈액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한다”면서도 “부상 직후 사람들이나 사람의 혈액을 수혈 받기 어려운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도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질병관리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가 참여하는 다부처 협력 사업으로 인공혈액 기술 개발에 나섰다. 한국은 줄기세포를 기반으로 인공혈액을 만들 계획이어서, 군에서 필요한 상온 보관은 어려워 보인다. 다만 안전성이 우수해 상용화가 빠를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