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 중에서도 수면 의학을 전공한 김태 광주과학기술원(GIST) 의생명공학과 교수는 누구보다도 수면 장애 환자의 고통을 잘 알고 있었다. 김태 교수는 분당서울대병원과 강동경희대병원 등 여러 병원에서 정신과 의사로 환자를 직접 만난 임상의 출신의 의사과학자다. 수면 장애 환자들을 치료할 방법을 찾으려고 GIST 교수로 부임했다.

김태 교수의 고민은 의공학을 전공한 김재관 GIST 의생명공학과 교수를 만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김태 교수는 근적외선 빛이 뇌 속의 아데노신 분해를 촉진해 수면을 유도하는 과정을 연구하고 있었다. 의공학자인 김재관 교수와 협업하면서 근적외선 빛을 내는 웨어러블(wearable·착용형) 의료기기 개발이 시작됐고, 2021년 10월 테디메디라는 회사를 창업한 이후 3년 만에 시제품까지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정신과 의사 출신인 김태 교수와 실제 의료기기를 제작할 수 있는 의공학자 김재관 교수의 협업이 창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김재관(왼쪽)·김태 GIST 의생명공학과 교수는 '테디메디'를 창업해 근적외선 빛을 이용한 수면 장애를 개선하는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있다./GIST

두 사람이 수면 유도 기술에 집중한 것은 한국인의 수면 상태가 양이나 질 모두 세계 최악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7시간 51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시간 27분보다 36분 적다. OECD 회원국 중 일본(7시간 22분) 다음으로 수면 시간이 짧은 나라이다.

수면 시간이 적다 보니 수면의 질도 나쁘다. 네덜란드 의료기업인 필립스가 2021년 전 세계 1만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수면 만족도 조사에서 수면의 질에 만족한다고 답한 한국인 비율은 41%로 전 세계 평균(55%)을 밑돌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작년 말 발표한 수면장애 환자 진료 현황에 따르면, 수면 장애로 병원을 찾은 사람은 2018년 85만5025명에서 2022년에는 109만8819명으로 늘었다. 4년 만에 28.5%가 증가했다.

테디메디는 한국인이 편안한 잠을 자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아직 직원이 김태, 김재관 두 명의 교수가 전부인 작은 교원창업기업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스타트업 지원프로그램인 ‘C랩 아웃사이드 프로그램’에 선정돼 컨설팅과 사업 지원금을 지원 받는 등 기술력은 인정받았다. 김태 교수가 기초연구를 맡고, 김재관 교수가 의료기기 개발을 맡는 등 각자의 강점을 살리면서 역할을 나눈 덕분이라고 두 교수는 설명했다.

김재관 교수는 “첫 번째 시제품을 만든 이후 단점을 보완해서 두 번째 시제품까지 만든 상황이고, 이달 말까지 판매용 시제품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며 “8월에 KC인증(안전인증)을 받고 올해 하반기에는 실제 제품을 생산까지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태 교수는 수면 장애를 치료한다는 기기들이 시장에서 팔리고 있지만, 과학적으로 효능을 인정받은 적은 아직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수면 장애에 도움을 준다는 기기들은 동물실험이나 인체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한 사례가 없다”며 “연구 결과가 논문으로 나오거나 데이터를 통해 보여주기 보다는 막연한 믿음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테디메디는 과학을 베이스로 한 수면 장애 의료기기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김태 GIST 의생명공학과 교수가 자신이 만든 근적외선 방출 의료기기 시제품을 착용하고 있다. 김 교수는 자기 전에 1시간 정도 의료기기를 착용한 채로 근적외선 빛을 받으면 수면 장애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GIST

근적외선 빛은 어떻게 수면을 촉진하는 걸까. 김태 교수는 근적외선 빛을 쬐면 생명체의 에너지원인 ATP(아데노신삼인산)가 뇌 안에서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에 주목했다. 그는 “우리는 ATP가 분해되면서 수면을 유도하는 아데노신이라는 물질을 만든다는 걸 동물실험을 통해 확인했다”며 “이 원리를 활용해 근적외선 빛을 내는 광생체 수면 개선 기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김태 교수와 김재관 교수는 생쥐 실험에서 근적외선 빛을 받으면 그렇지 않은 날보다 아데노신이 평균 4.4% 증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김태 교수는 “생쥐는 사람과 달리 5~6분 자다가 깨는 수면 패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 적용하면 아데노신 농도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도 준비하고 있다. 김태 교수는 현재 강의를 하지 않고 연구만 하는 안식년을 보내고 있다. 덕분에 미국 하버드 의대 산하 매사추세츠종합병원(MGH)과 임상시험을 논의하러 수시로 보스턴을 방문할 수 있었다. 그는 “근적외선 빛을 우울증 치료에 쓰는 연구가 미국에서 진행 중”이라며 “우리와 비슷한 방식이어서 현지 연구진도 수면 장애 개선에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함께 임상시험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근 테디메디와 비슷하게 근적외선 빛을 이용해 사람의 수면 장애를 개선하는 연구 결과가 미국에서 발표되기도 했다. 작년 6월 미국 애리조나대 연구진은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제37차 수면전문학회(APSS) 연례학술대회에서 근적외선을 이용한 수면 장애 치료 결과를 발표했다.

애리조나대 연구진은 성인 30명을 대상으로 5주 동안 근적외선을 방출하는 기기를 착용하고 잠을 자게 했다. 그 결과 근적외선 치료를 받은 그룹은 잠 드는 시간이 빨라지고, 얕은 수면인 렘(REM, 급속안구운동)수면은 줄어들었다. 김태 교수는 “근적외선 빛을 쏜 뒤 마우스의 뇌파를 분석해보고 깊은 수면인 비렘수면 시간이 26~30% 정도 증가한 걸 확인했다”며 “근적외선 빛이 수면의 양과 질을 모두 개선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태 교수는 “동물실험 결과를 보면 잠을 자는 동안에 근적외선 빛을 받으면 오히려 잠을 설치는 수면분절이 일어날 수 있다”며 “자기 전에 1시간 정도 일상생활을 하면서 의료기기를 착용하고, 잠을 잘 때는 의료기기를 벗으면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테디메디가 만든 근적외선 방출 의료기기 시제품 모습. 테디메디는 올해 하반기 실제 제품 생산을 목표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테디메디

테디메디의 의료기기는 언제쯤 수면 장애 환자들이 사용할 수 있을까. 김재관 교수는 올해 하반기에는 초기 투자를 받아서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제품 생산을 위한 준비를 거쳐서 올해 말에는 환자들이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김태 교수는 “사실 수면 장애는 환자가 생활 습관만 잘 바꿔도 개선되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환자의 노력이나 의지가 의사의 지시를 잘 따라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라며 “우리가 개발한 의료기기를 환자의 수면 습관 교정이나 비약물 치료법과 함께 쓰면 효과적으로 치료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 자료

SLEEP(2023), DOI : https://doi.org/10.1093/sleep/zsad077.0378

NEUROSCIENCE(2015), DOI : https://doi.org/10.1073/pnas.1413625112

NEUROSCIENCE(2015), DOI : https://doi.org/10.1016/j.neuroscience.2015.06.037

Science(1997), DOI : https://pubmed.ncbi.nlm.nih.gov/91578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