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8일 승객과 승무원 239명을 태우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떠나 중국 베이징으로 향하던 말레이시아항공 370편(MH370) 보잉 777-200 ER 여객기가 이륙 38분 만에 민간 관제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MH370기는 지상과 교신을 중단한 채 말레이시아를 가로질러 약 7시간 넘게 운항하다가 인도양 북쪽 안다만해에서 마지막으로 군 레이더에 포착됐다. 실종 직후 말레이시아와 중국, 호주 등 주변국이 총출동해 사상 최대 규모의 수색 작업을 펼쳤지만 10년이 흐른 지금도 추락 시간과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영국 과학자들이 최근 핵실험을 탐지하려고 바다에 설치한 수중 센서가 포착한 음파 신호로 MH370편과 같은 항공기가 바다에 추락한 위치를 추정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번 연구에서 MH370편과 관련됐다고 추정되는 신호도 찾았으나 정확한 추락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다. 과학계는 연구가 발전하면 앞으로 비슷한 사고를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항공기 추락 10건 관련된 수증 음향 신호 포착
영국 카디프대 연구진은 지난 3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의 수중 음향 관측소가 수집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항공기가 바다에 추락할 때 발생한 여러 건의 신호를 포착했다고 소개했다.
1996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CTBT는 대기권, 수중, 지하, 우주에서 핵실험과 핵폭발을 금지하고 있다. 가입국들은 세계 337개 지역에 핵실험 때 발생하는 지진파와 수중 음파, 초음파, 방사성 핵종을 감시하는 국제관측시스템(IMS)을 구축했다.
연구진은 CTBTO 산하 수중 음향 관측소 11곳 중 7곳에서 수중 청음기로 포착한 100시간 분량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수중 음향 관측은 물속에서 음파로 생성된 수압의 변화를 감시하는 개념이다. 수중 음파를 전기로 바꿔주는 고감도 마이크로 항공기가 추락할 때처럼 충격이 발생할 때 생성된 음파를 포착한다.
수중 음향 관측소는 수㎞ 간격으로 이뤄진 3개 음파 탐지 시설로 구성된다. 항공기 추락 때 발생한 음파가 각각 도착하는 시간차를 계산해 신호가 발생한 방향과 거리를 결정한다. MH370편을 포함해 과거 발생한 항공기 추락사고 10건은 이들 음파 관측소 주변 반경 2211~4695㎞ 떨어진 해역에서 일어났다.
연구진은 먼저 태평양 미국령 웨이크섬 수중 음향 관측소(H11S, H11N)가 포착한 2011년 7월 포착한 한국의 아시아나항공 화물기 991편 추락 사고와 2019년 4월 일본 자위대 F-35A 전투기, 2021년 7월 트랜스에어항공 810편 추락 사고의 음파 신호를 분석했다.
같은 방식으로 인도양 디에고 가르시아섬의 관측소(H08S, H08N)와 호주 서부 르윈곶 관측소(H01)가 포착한 음파 신호로 과거 발생한 항공기 추락사고 5건의 위치를 확인했다. 항공기 외에 잠수함 사고도 포착됐다. 지난 2017년 11월 15일 아르헨티나 해안에서 침몰한 잠수함 ‘ARA 산후안(San Juan)호’의 폭발음도 수천㎞ 떨어진 아센시온섬(H10)과 크로제트섬(H04)에서 감지됐다.
◇MH370편 추정 신호 1건 포착
연구진은 MH370편과 관련된 수중 음향 신호를 추적했다. 구조당국은 MH370편의 위성 교신 시점에 따라 항공기 위치를 추정한 7개 동그라미(원)를 만들었다. 구조당국에 따르면 MH370편은 8일 새벽 0시19분29초(그리니치 표준시) 마지막으로 위성과 교신을 한 이른바 ‘7번째 호(arc 원둘레)’ 해역에서 추락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공식 결론이 맞는다면 분명 디에고 가르시아섬 관측소 두 곳과 호주 서부 르윈곶 관측소에서 신호가 포착됐을 것으로 보고 분석에 들어갔다. 실제 7번째 호에서 르윈곶까지의 거리는 약 1600㎞, 디에고 가르시아 섬까지는 약 3700㎞라서 충분히 음파를 포착할 위치에 있다.
연구진은 추락 시점으로 추정되는 시간대에 여러 신호가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 그중 8일 0시30분 전후로 발생한 신호 2건이 주목을 받았다. 르윈곶 관측소에서 306도 방향에서 발생한 음파 하나가 7번째 호와 일치하는 해역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논문 저자인 우사마 캐드리(Usama Kadri) 카디프대 교수는 “신호가 추락과 관련된 사실이 밝혀지면 실종 항공기의 위치를 상당히 좁히는 것은 물론 거의 정확히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디에고 가르시아 관측소들은 전혀 신호를 포착하지 못했다. 연구진은 한 곳에서만 신호를 포착한 이유를 밝히는 일이 앞으로 과제라고 밝혔다.
8일 오전 1시34분40초에 방위각 301.4도에서 발생한 신호도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이 신호는 르윈곶에서 1700~2100㎞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다. 추락 추정 해역에서 벗어난 위치다. 같은 날 오전 1시11분부터 1시16분 사이 포착된 신호도 시간과 위치가 7번째 호 주변에서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추락 사고 관련 논쟁 해결하는 데 도움
연구진은 수중 음향 관측소에서 포착된 신호가 항공기가 바다에 추락할 때 신호가 아닌 다른 환경에서 발생한 것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캐드리 교수는 “MH370편의 정확한 추락 위치를 아직 명확하게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라며 “감지된 신호와 MH370의 실종에 대한 개연성을 증명하려면 추가 분석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MH370편의 추락 위치를 찾지 못했지만, 신호와 관련된 논쟁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스모킹건(결정적 단서)은 아니지만, 항공기 추락 시점과 위치 범위를 좁히고 유사한 사건에서 활용할 과학적 접근 방식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항공기가 추락할 때 발생한 충격을 2000~5000㎞ 떨어진 곳에서도 감지하고 사고 규모까지 판별하는 데 활용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MH370편 추락 충격과 비슷한 정도의 에너지이라면 실종 항공기의 행방을 충분히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항공기 추락은 엄청난 충격을 야기한다. 초속 200m로 수면에 충돌하는 질량 200t의 항공기는 4기가줄(GJ)의 운동에너지를 가진다. 이는 TNT 약 956㎏의 폭발력이나 규모 3.2의 지진에 해당하는 에너지다.
카디프대 연구진은 “바다에 충돌한 물체에서 발생한 수중 음향이나 음향중력파(AGW) 신호가 바다에서 육지로, 다시 육지에서 바다로 전달된다”며 “육지로 막힌 먼 바다에서 일어난 사고도 관측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음향 중력파란 음속으로 심해를 통해 전달되는 음파인데 해저 지진과 산사태, 폭발로 발생한다.
참고 자료
Scientific Reports(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98-024-60529-1
CTBTO, https://www.ctbto.org/our-work/monitoring-technologies/hydroacoustic-monitoring
SpringerBriefs in Electrical and Computer Engineering(2016), DOI: https://doi.org/10.1007/978-981-10-037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