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는 앞에 가는 차가 짙은 색을 띠면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다. 자율주행차의 눈으로 불리는 ‘라이다(Light Detection and Ranging, LiDAR)’ 센서는 빛을 흡수하는 검은색 물체는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내 연구진이 자율주행차의 검은색 ‘색맹’을 해결할 신소재를 개발했다.

윤창민 한밭대학교 화학생명공학과 교수 연구진은 지난달 국제 학술지 ‘미 화학회(ACS) 응용재료와 인터페이스’에 라이다가 인지할 수 있는 검은색 판상형 소재를 개발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논문은 ACS가 흥미로운 연구 성과로 소개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라이다 센서는 근적외선을 이용해 사물을 인식하는데 빛을 흡수하는 검은색이나 어두운 색의 피사체는 인식률이 떨어진다. 모니터를 보면 라이다가 하얀색 차는 라이다 센서가 정확히 인식하지만, 검은 색 차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다./한밭대

라이다는 근적외선 레이저를 사물에 쏘고 반사파가 오기까지 시간을 측정해 거리를 파악한다. 하지만 검은색 물체는 라이다가 쏜 빛을 흡수해 인식률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이 문제는 자율주행차의 대명사 같은 테슬라가 라이다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앞에 가는 차가 짙은 색이라면 자칫 추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윤창민 교수 연구진은 검은색을 내면서도 근적외선을 반사하는 새로운 소재를 개발했다. 우선 이산화티타늄(TiO2)을 유리기판에 코팅한 뒤, 불산(HF) 같은 에칭액을 이용해 유리기판을 없앴다. 이렇게 하면 이산화티타늄 중간에 빈 공간이 생기는 이른바 중공(中空)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산화티타늄과 속이 빈 공간의 근적외선 굴절률이 달라지며 계면(서로 다른 물질 사이의 경계)의 근적외선 반사율이 증가해 라이다 센서가 이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그 뒤에 이산화티타늄을 검은색으로 바꾸는 환원 공정을 거치면 눈으로 보기에는 검은색이지만, 라이다 센서가 인식할 수 있는 소재가 만들어진다. 환원 공정은 이산화티타늄에서 산소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산화티타늄에서 산소 하나를 없애면 빛을 흡수하는 정도가 바뀌면서 처음에는 흰색이었던 이산화티타늄이 검은색인 ‘블랙 티타니아(이산화티타늄)’ 물질이 만들어진다.

이전에도 라이다 센서가 검은색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개발됐다. 하지만 비용이 문제였다. 예를 들어 바스프나 머크 같은 글로벌 화학 기업들은 검은색에 근적외선을 반사할 수 있는 하얀색을 이중으로 바르는 방식에 집중했다. 이런 이중층 도포 방식은 공정이 복잡하고, 가격이 높아지는 문제가 있었다. 또 유성페인트로만 이중층 도포가 가능해 환경에도 해로웠다. 라이다 외에 별도의 센서를 달아서 검은색을 인지하도록 하는 방식도 비용이 높아지는 문제는 마찬가지였다.

윤창민 교수 연구진은 한 번 도포만으로도 검은색과 근적외선 반사가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새로운 소재를 개발했다. 윤창민 교수는 검은색을 띠는 가지에서 연구의 실마리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가지는 다른 식물보다 표면색이 어둡지만 여름에도 잘 상하지 않는다. 빛을 많이 흡수하면 식물이 상하는데 가지는 그렇지 않았다.

윤 교수는 “가지가 겉은 어두운 색이지만 내부에서 빛을 반사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가지와 유사한 구조의 물질을 고민했다”며 “처음에는 나노 수준의 물질을 제조했지만, 나노 수준 크기로는 도료로 만들고 상용화하기 어렵다고 보고 마이크로 수준의 판 모양 물질을 개발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든 소재는 나노 크기 물질 대비 생산성이 100배 이상 높아지고, 실제 도료로 만들었을 때에도 바르기 쉽고 내구성이 뛰어나다는 게 윤 교수의 설명이다.

윤창민 한밭대 화학생명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라이다 센서가 인지할 수 있는 검은색 소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영상에서 연구진이 든 판넬은 눈으로는 일반적인 검은색으로 보이지만, 라이다 센서로 보면 연구팀이 개발한 소재를 바른 부분만 'LIDAR'라는 글씨가 검은색과 구별된다./한밭대

윤 교수 연구진은 새로 개발한 소재를 이용해 직접 실험도 진행했다. 라이다를 장착한 자율주행 차량 앞에 연구원이 일반 검은색 판넬과 신소재를 바른 검은색 판넬을 들고 서 있는 실험이었다. 라이다 센서는 일반 검은색 판넬은 전혀 인식하지 못했지만, 윤 교수 연구진이 개발한 소재를 바른 검은색 판넬은 정확히 인식했다. 검은색 판넬에서 윤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소재로 쓴 ‘LIDAR’라는 글자가 라이다 센서에 정확히 보였다.

윤 교수는 세계 최초로 개발한 라이다 인지형 판상형 검은색 소재가 상용화되려면 정부와 기업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이 소재에 사용한 티타니아 코팅은 비용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실제 상용화까지 이어지기 위해서는 여러 소재를 시험해볼 수 있는 테스트 베드(test bed·시험 공간)가 필요하다”며 “완성차 업체와 페인트·도료 기업들이 이런 기회를 제공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ACS Applied Materials & Interfaces(2024), DOI : https://doi.org/10.1021/acsami.4c00470

윤창민 한밭대학교 화학생명공학과 교수./윤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