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바이러스성 호흡기 감염병의 확산을 미연에 막을 수 있는 진단 기술을 개발했다. 사용자의 침에서 여러 종류의 바이러스를 동시에 검출할 수 있으면서도 정확한 진단이 가능한 기술이다. 미래에 찾아 올 미지의 바이러스 유행을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홍정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 책임연구원이 이끄는 연구진은 18일 여러 종류의 호흡기 감염 바이러스를 현장에서 검출할 수 있는 플랫폼(기반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는 권오석 성균관대 나노공학과 교수, 송현석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이 함께 참여했다.
2022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2012년 중동호흡기중후군(MERS·메르스)에 이어 2019년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처럼 바이러스성 호흡기 감염병은 전 세계 보건에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됐다. 바이러스의 변이로 이전에 없던 새로운 감염병이 유행하면서 빠른 대처가 불가능했던 탓이다.
신종 호흡기 감염병이 발생하면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진단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그러나 기존 진단 기술은 민감도와 특이도가 낮아 현장에서의 신속한 진단에는 제약이 있다. 최근에는 키트를 이용한 현장 진단 기술이 크게 발전했으나 여전히 유전자 증폭 검사(PCR)와 같은 별도의 검사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연구진은 차세대 신소재로 꼽히는 그래핀을 이용해 수십초 만에 여러 종류의 호흡기 바이러스를 동시에 선별하는 현장 진단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 방식보다 민감도가 높아 적은 양의 바이러스도 검출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래핀을 여러 겹 쌓아 활용하는 기존 현장 진단 기술은 신호에 잡음이 섞여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외부 환경에도 영향을 받아 안정성이 떨어져 현장 진단에서 활용하기에도 어려웠다.
이번에 개발한 진단 기술은 작은 자극에도 반응하는 다채널 트랜지스터를 이용해 민감도를 높였다. 동시에 여러 종류의 바이러스에 의한 신호를 구별해 선택적으로 검출할 수 있게 했다. 신호의 간섭도 최소화해 잡음 없이 정확하게 신호를 분석할 수 있게 했다.
외부 환경 변화에 따른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그래핀 표면에 코팅을 입혀 바이러스 신호를 받는 수용체와 그래핀 소재, 키트 구성 물질의 안정성도 높였다. 그 결과, 환경 변화에도 성능 저하 없이 안정적인 바이러스 검출이 가능했다.
별도의 처리 없이 사용자의 침으로 바이러스를 진단할 수 있게 해 편의성도 높였다. 코로나19를 유발하는 델타·오미크론 변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영장류를 이용한 동물 실험에서도 정확하게 바이러스를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홍 책임연구원은 “현장 신속진단 플랫폼을 개발한 만큼 앞으로 다가올 신종 호흡기 감염병의 대비에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영장류 감염모델이 다양한 병원체 진단 기기 개발에 유용하게 활용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여러 종류의 호흡기 바이러스를 동시에 고감도로 검출할 수 있어 고위험 전염병의 사전 확산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다음에 찾아 올 감염병 대유행(팬데믹)에서 유연한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 3월 1일자에 소개됐다.
참고자료
Advanced Materials, DOI: https://doi.org/10.1002/adma.2023030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