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생명공학 기업 제너스가 개발한 유전자 편집 돼지. 업체는 미 식품의약국(FDA)의 식용 승인을 받아 시장에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식용 돼지 중 유전자 편집 기술이 적용된 최초의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제너스

최신 유전자 편집 기술로 태어난 돼지가 이르면 올해 말 식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한 생명공학 기업이 개발한 이 돼지는 사육할 때 바이러스 감염이 잘 되지 않게 유전자를 편집했다. 가장 최신 기술인 크리스퍼(CRISPR-Cas9) 유전자 가위가 사용됐다. 축산 농가의 비용을 줄이고 동물 감염병 사태 시 불필요한 살처분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농업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12일 과학계에 따르면 영국 생명공학 기업 제너스는 이르면 올 연말 미 식품의약국(FDA)에 유전자편집 돼지의 식용 허가를 받고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 돼지는 ‘생식기호흡기증후군(PRRS)’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유전자 일부를 교정했다. 이 증후군은 공기와 접촉을 통해 전파되는 바이러스성 감염병이다. 기침과 고열을 유발하고 어린 돼지에서는 성장이 늦어지거나 멈추는 증상이 나타난다. 전파력이 워낙 커서 국내에선 3종 가축전염병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축산 농가들은 매년 PRRS로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고 있다. 고병원성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폐사율이 60%에 이른다. 2007년 세계 최대 돼지고기 생산국인 중국에서 돼지 수만마리가 폐사하면서 전 세계에 돼지고기 파동이 나기도 했다.

제너스는 PRRS 바이러스가 돼지 폐 세포에 침투하는 통로인 단백질 ‘CD163′의 유전자를 변형하는 방식으로 감염을 막는다. 유전자 편집은 유전자를 원하는대로 바꿀 수 있는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해 생명체에 원하는 특성을 부여하는 기술이다. 이전에도 유전자 편집 돼지가 탄생한 적은 있다. 하지만 식용 돼지를 대상으로 한 실험은 처음이다. 제너스는 지금까지 4종의 식용 돼지의 유전자를 편집했다.

제너스는 유전자 편집 돼지의 맛과 인체 안전성은 일반 돼지와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 사육 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고 소개한다. 정확하게 폐 세포의 유전자만 편집하는 동시에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변이와 같아 식품 안전에 대해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FDA도 유전자 편집 식품에 대해 관대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 농무부(USDA)와 FDA는 유전자 편집 동·식물을 유전자 변형 생물(GMO)과 별개의 기술로 보고 있다. 유전자 편집 채소는 이미 FDA의 승인을 받아 시판되는 사례도 있다. 미국 스타트업 페어와이즈는 유전자 편집 기술로 쓴 맛을 제거한 채소로 샐러드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FDA는 앞서 성장 속도가 빠른 연어와 알레르기 반응을 막는 돼지의 식용 승인을 허가했다. 다만 돼지고기의 경우 판매용이 아닌 연구용으로 개발돼 아직 출시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제너스가 계획대로 연말까지 FDA의 승인을 받는다면 최초의 식용 유전자 편집 돼지고기로 기록될 전망이다. 다만 업체가 편집한 단백질이 자연적으로 변형된 사례가 없어 승인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클린트 네스빗 제너스 규제담당자는 “FDA에서 완벽한 심사를 거쳐 출시를 준비하겠다”며 “최종 승인을 위해 간단한 일부 과정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