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헌 스페이스솔루션 대표가 지난달 25일 대전 유성구 본사에서 조선비즈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이 대표는 "회사가 성장하는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우주모태펀드 유치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송복규 기자

지난해 5월 국내 기술로 개발된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3차 발사에 성공하면서 한국은 자국 땅에서 실용위성을 쏘아올릴 능력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오랫 동안 누리호 독자 기술 확보를 위해 힘을 모은 연구자들에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들 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누리호 개발에 혁혁한 공을 세운 국내 중소기업들도 있다. 자세제어 시스템이나 추력 시스템에 들어가는 부품을 한땀 한땀 만든 기업들이다. 우주 발사체 국산화를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부품 개발에 헌신한 21세기의 ‘우주 산업 역군’이다.

스페이스솔루션도 누리호 개발의 숨은 주역으로 꼽힌다. 스페이스솔루션은 누리호 3단에 들어간 추력 시스템 개발에 참여했다. 영하 200도를 견디는 밸브와 유체 제어 부품, 추진제 탱크처럼 우주개발에 필수적인 기술들을 보유한 잔뼈가 굵은 기업이다. 지난해 12월 제주 남쪽 해상에서 발사한 고체연료발사체 개발에도 참여해 기술력을 입증했다. 국내 우주 개발 분야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대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이다.

이재헌 스페이스솔루션 대표는 2000년 9월 회사를 세웠다. 올해로 벌써 창립 24주년을 맞이하는 셈이다. 하지만 회사 이름은 업력과 기술력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따로 외부 투자를 유치하지 않았고, 홍보보다는 사업 모델과 기술력 확보에 집중해왔다.

묵묵히 회사를 키워오던 이 대표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우주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마련한 우주모태펀드 1호 투자기업으로 선정되면서다. 조선비즈는 지난달 25일 스페이스솔루션 대전 유성구 본사에서 이 대표를 만나 우주 기업으로서의 그동안의 발자취와 미래 계획을 들었다.

스페이스솔루션이 개발한 발사체용 자세제어 시스템. 이 시스템은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3단에 실려 발사체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스페이스솔루션

–스페이스솔루션은 어떤 기업인가.

“우주 분야에서 스페이스솔루션은 자세제어 시스템 전문기업이다. 친환경 연료를 이용한 자세제어 시스템과 추력기의 부품류를 개발하고 있다. 우주 분야에서도 친환경 연료를 이용한 시스템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 기존에 독성이 있는 연료를 친환경 연료로 대체하려고 한다. 이외에도 우주탐사에 필요한 연료탱크도 개발하고 생산한다.”

–24년 전 창업에 나선 계기가 궁금하다.

“사업하기 전엔 미국 항공우주 기업인 EG&G의 계열사에서 한국 지사장으로 6년 정도 일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부품 단위에서 우주항공 관련 제품을 만드는 업체가 없어서 미국에서 수출 허가를 받아 수입해 판매해야 했지만, 우리나라도 앞으로 우주산업의 기술 발전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던 중 수입제품을 국산화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관련된 시장과 기술을 잘 아는 내가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업을 하게 됐다.”

–한국이 우주 산업의 불모지였던 만큼 회사 운영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자세제어와 관련된 밸브와 벨로우즈가 들어간 축압기 두 가지 제품을 가지고 창업했다. 처음엔 단순한 제품이니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고생 정말 많이 했다. 당시엔 중소기업에 맡긴다고 하면 불안하다면서 문전반대가 심했다. 중소기업이 굉장히 열악한 환경에 있다 보니 생태계도 제대로 조성이 안 돼 있었다.

당시엔 중소기업에 우주 관련 제품을 개발한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을 때였다. 하지만 신뢰를 주기 위해 건물부터 깔끔하게 짓고, 품질 보증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개발 과제를 하나씩 진행했다. 처음 두 개 제품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점점 제품군을 탱크류와 추력기, 자세제어 시스템으로 늘리면서 회사를 운영해왔다.”

이재헌 스페이스솔루션 대표가 지난달 25일 대전 유성구 본사에서 조선비즈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이 대표는 "회사가 성장하는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우주모태펀드 유치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송복규 기자

이 대표를 만난 사무실 한쪽에는 한국무역협회에서 받은 ‘칠백만불 수출의 탑’ 상패가 놓여있었다. 스페이스솔루션은 우주용으로 만든 밸브와 벨로우즈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정을 만드는 데 판매해 매출을 올린다. 매출의 60%가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용 부품에서 나올 정도다. 여기서 벌어 들인 돈은 다시 우주기술 개발에 재투자한다. 그동안 스페이스솔루션이 우주 기업으로서는 특이하게 외부 투자를 받지 않은 이유다.

–그동안 외부 투자를 거의 받지 않았다. 이유가 있나.

“처음 창업할 때 확보한 벨로우즈는 우주기술뿐 아니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핵심 산업용 부품이다. 제품 판매를 산업용 부품으로 확장하면서 미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 유럽으로 수출을 시작했다. 아마 우주용 부품에만 계속 매달렸으면 진작 망했을 것 같다. 그동안은 매출을 재투자하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것으로도 충분히 사업이 가능하다고 봤다.”

–정부가 마련한 ‘뉴스페이스펀드’의 첫 투자기업으로 선정됐다. 투자 유치에 나선 이유도 궁금하다.

“그동안은 천천히 가도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우주 산업이 커지면서 좋은 기회들이 생겼고, 잘 활용하면 회사가 성장하는 시간을 앞당길 수 있겠다는 판단이 나왔다. 특히 최근 미국 반도체 장비 기업과 논의하는 내용도 있고, 친환경 연료 추력 시스템을 만드는 데 사업장을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도 상황에 따라 투자 유치는 이어갈 생각인데, 반도체와 방산·우주 분야 매출이 좋아질 것으로 보이는 2027년쯤에는 상장도 고려하고 있다.”

대전 유성구 스페이스솔루션 본사에 마련된 '한국형발사체 진공 추력 측정 시험장비'. 스페이스솔루션은 고가의 우주용 실험 장비들을 활용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송복규 기자

반도체 산업용 부품 덕을 보고 있지만, 스페이스솔루션은 우주 기업이다. 한국 우주 산업을 이끌어갈 차세대 기술을 바쁘게 개발하고 있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실제로 본사 건물 주변에 들어선 실험동에는 각종 고가의 우주용 실험 장비들이 가동되고 있었다. 이 대표는 연구개발 외에도 작은 한국 우주 기업들이 성장하기 위해선 문서 작업과 같은 관리 시스템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최근 개발하는 기술은 무엇인가.

“친환경 연료인 ADN(암모늄 디니트라마이드)을 활용한 추진 시스템 개발이다. 현재 위성 추진제로 사용하는 과산화수소는 추력이 떨어지고 하이드라진은 맹독성 물질이라 대체할 연료가 필요하다. ADN 추진 시스템은 부품 단위에서는 개발이 끝났고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많은 양의 연료를 넣을 수 있는 표면 장력 탱크도 개발했다. 이전에는 가스와 연료를 고무막이 막고 있는 ‘다이어프램’ 탱크를 사용했는데 크기를 키우면 누설이 생기거나 찢어지는 문제가 있다. 표면 장력 탱크는 정지궤도나 화성을 가기 위해 많은 연료를 주입해야 하는 우주선에 필수적이다.”

–금전적인 것 외에도 한국 우주 기업들을 지원할 방안이 있을까.

“우주항공 분야 기업을 운영하면서 의외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문서 작업이다. 예를 들어 어떤 부품을 만드는 데 어떤 가공법을 적용하는지 문서로 만들어야 기술이 축적된다. 조립 절차에서 어떤 시험을 했고,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서로 만들어서 제공해야 한다. 대부분 우주 기업이 중소기업이다 보니 이런 부분이 조금 미흡하다. 제품 보증·관리 시스템이 잘 갖춰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같은 곳에서 기업들을 컨설팅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