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세기의 바둑 대결이 열렸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AI) 알파고(AlphaGo)와 한국의 이세돌 9단의 대국이었다. AI와 인간의 대결로 전 세계의 눈이 바둑판을 향했다. 대결은 4대 1로,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AI를 향한 인류의 열정은 그 날 시작됐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로 세계가 들썩이면서 수많은 기업이 AI의 활용방안을 고민했다. 챗GPT 출시를 제외하면 AI 전문가들이 가장 바쁘게 이곳저곳 초청되던 시기였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에서 전기전자컴퓨터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전태균 SIA(SI-Analytics·에스아이에이) 대표도 그런 AI 전문가 중 하나였다. 국내 대기업은 물론 해외 기업까지 연사 초청과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주변 AI 전문가들도 각 기업의 AI 조직 수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시기였다. 하지만 AI 기술을 실생활에 쓸 수 있는 획기적인 비전을 보여준 기업은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 만난 곳이 한국에서 위성을 제조하는 쎄트렉아이(099320)다. 쎄트렉아이 직원들은 전 대표가 위성영상을 AI로 교정한 결과물을 보여주자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수많은 기술적 논의와 토론이 이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은 2018년, 전 대표는 30대 중반의 나이로 쎄트렉아이 자회사인 위성영상 분석 기업 SIA를 창업했다.
쎄트렉아이가 2021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에 인수되면서, SIA도 손자회사로 한화그룹의 지붕 아래에 들어갔다. 한화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272210), 쎄트렉아이를 중심으로 ‘스페이스 허브’를 구축한 우주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집단이다. 스타트업에서 대기업 스페이스 허브의 구성원이 된 SIA의 우주산업 경쟁력은 무엇일까. 조선비즈는 지난 11월 22일 대전 SIA 본사에서 전 대표를 만나 위성영상의 가치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AI 연구자에서 우주 기업 창업가가 됐다.
“사실 대학원 때 창업 준비를 해봤다. 연구실에서 수행했던 아이템으로 지도교수와 함께 준비했다. 그러면서 기술은 결국 누군가 써야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알파고가 터지면서 기술 기반의 창업을 30대 중반에 다른 색깔로 창업하면 빠른 속도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결심이 섰다.”
–쎄트렉아이의 자회사로 창업에 나섰다.
“알파고 이후 많은 기업이 최신 AI 연구성과에 능통한 젊은 박사를 찾았다. 이때 많은 기업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좋은 회사들이지만 결과가 뻔했다. 그러던 중 쎄트렉아이에서 AI를 활용하고 싶다고 해서 위성영상을 개선해 보여드렸다. 다들 많은 질문과 관심을 보내줬다. 강연이 끝난 후 나를 초청해줬던 박성동 쎄트렉아이 의장에게 ‘여기서 뭔가 해보고 싶다’고 말했고, 결과적으로 창업까지 했다.”
SIA는 위성영상을 AI로 교정하고 분석해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보를 만든다. 특정 지역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다른 지역에는 어떤 효과를 낳는지 전 지구적 이해도를 높이는 게 목표다. SIA의 위성 정보를 이용하는 고객사는 국내외 20여 곳으로, 국방·농업·기후 등 분석 분야도 다양하다. 여기에 한화그룹이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생기면서 회사는 창업 5년 만에 직원 120명을 거느릴 정도로 성장했다.
SIA 기술력은 세계 무대에서도 통한다. 지난 11월 30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위성영상을 기반으로 한 기후 예측 AI 시스템을 소개하기도 했다. 개발도상국들은 구축 비용이 비싼 기상 레이더가 없어 기후 예측이 어려워 자연재해에 취약하다. SIA는 상대적으로 값싼 정지궤도 위성영상을 사용하는 ‘지오클라우드(GEOCloud)’ 시스템을 개발해 2㎞ 수준의 높은 해상도의 기상 예측 정보를 제공한다.
–'한화 스페이스 허브’라는 그룹에 속한다. 어떤 장점이 있나.
“외부에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구조일 거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우주 스타트업은 자체적으로 커가는 경우가 많은데 SIA는 쎄트렉아이와 한화까지 엮어서 봐야 한다. 한화가 대기업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다채로운 색깔이 모인 스타트업 집단이 된 기분이다. 스페이스 허브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찾고, 각자의 역량을 합쳐서 세계적인 새로운 임무를 어떻게 수행할지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쎄트렉아이와 한화시스템이 보유한 위성 데이터도 활용하나.
“쎄트렉아이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위성을 제작하고 수출하고 있다. 한화시스템도 자체 위성을 개발해 발사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근데 안타까운 건 지금까지 남들을 위해서만 위성을 만들고 수출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우리가 위성을 만들고, 우리가 쓰자’라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SIA도 쎄트렉아이와 한화시스템에서 만드는 위성을 분석에 쓰고 있는 위성군에 포함해 쓸 예정이다.”
–네이버클라우드와 미국 플래닛 랩스 같은 다양한 기업과도 협업하고 있다.
“우주 기업은 협업이 중요하다. 위성영상 분석 기업은 데이터 인프라가 필요하기 때문에 네이버뿐 아니라 다양한 클라우드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해외 기업으로는 아마존 웹서비스(AWS)와 구글 클라우드와도 협업 중이다. 최근엔 엔비디아와도 클라우드 관련 협력을 맺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플래닛 랩스는 미국에서도 굉장히 혁신적인 우주 기업으로 꼽히는 곳이다. 플래닛 랩스가 보유한 위성 영상으로 분석하면 효과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두 회사가 협업해 6개 국가의 고객사에 수출하고 있다.”
–상장 계획도 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상장 계획을 2019년부터 준비해왔지만, 최근에는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여 상장 계획을 철회한 상태다. 상장은 2~3년 안으로 다시 준비할 것 같다. 매출은 매년 3배씩 성장하지만, 업력이 짧은 만큼 아직 영업이익이 나고 있지는 않다. 지금은 전 세계 고객사에 우리의 가치를 알리는 데 빠른 속도를 내고 있다.”
–위성영상 분석 기업은 많다. SIA만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위성 영상을 분석해서 결과가 시각적으로 바로 드러나야 때문에 직관성이 가장 중요하다. 같은 지구를 보더라도 산업 분야별로 다른 특별한 정보를 도출하느냐가 관건이다. SIA는 국가 임무를 수행하면서 쌓은 경험으로 성장했고, 글로벌 파트너들과 연계해 지금의 경쟁력을 갖춰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