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개봉한 영화 ‘쥬라기 공원’은 과거 지구를 지배한 공룡을 현대 생명과학 기술로 되살려 낸다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영화에서는 호박에 갇혀 있던 모기의 피에서 공룡 DNA를 찾아낸 뒤에 개구리 DNA를 잘라 붙이는 방식으로 공룡을 되살렸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영화 속 이야기는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SF영화 속 꿈 같던 기술이 30년이 지난 지금은 현실을 바꾸고 있다. 유전자 가위라는 유전자 교정 기술로 생산성을 높이고 질병에 대한 적응력을 높인 작물이 미국과 일본에서 판매되고 있다. 난치병 치료제도 조만간 시장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 유전자 가위 기술의 선두를 달리는 국가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 같은 경쟁국에 비해 과도한 규제 탓에 상업화는 늦어지고 있다. 조선비즈는 6회에 걸친 기획을 통해 유전자가위 기술의 현재와 가능성을 짚어보고, 규제 개선 방향을 제시하려고 한다.[편집자 주]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에게 붙는 호칭은 한둘이 아니다. 세계적인 과학자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유전자 가위 분야의 전문가인 그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세계 처음으로 상용화한 툴젠(199800)의 창업자이자 대표를 지냈고, 서울대 교수와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을 지내기도 했다. 서울대와 IBS, 툴젠을 모두 떠난 뒤에는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새로운 창업에 나섰다. 지금은 엣진과 그린진, 레드진이라는 여러 스타트업을 이끌고 있다. 최근 공식적인 직함은 싱가포르국립대 초빙교수다.
세계 최초 유전자 편집 치료제 ‘엑사셀’이 마침내 상용화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김 교수는 어느 때보다 심경이 복잡해 보였다. 자신이 평생 몸담은 유전자 편집 기술이 마침내 인류의 삶을 개선하는데 쓰인다는 기쁨도, 그리고 10년 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지만, 지금은 경쟁에서 한 걸음 뒤처진 안타까움이 함께 느껴졌다. 지난 11월 1일 서울 금천구의 엣진 사무실에서 김 교수를 만나 한국은 왜 유전자 편집 치료제 경쟁에서 밀렸는지 물었다. 김 교수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기술이 문제가 아니다. 규제 해소가 신기술의 사업화에 결정적이다. 이건 과학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김 교수는 일본과 한국을 비교했다. 그는 “일본은 원천 특허도 없고 이 분야에서 오래 연구를 한 경험도 없는데 세계 최초로 유전자 가위로 만든 도미와 복어를 만들어서 시중에 판매하고 있다”며 “사실 동물에 대한 유전자 편집은 한국이 돼지를 통해 먼저 했던 건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나 일본은 신기술에 맞춰서 규제를 발 빠르게 정비하고, 안전성이나 위험성을 확인하는 제도가 잘 갖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비해 한국은 규제 전문가가 부족하다 보니 신기술이 나오면 일단 못 하게 막고 제도나 법은 세월아 네월아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기술 후진국이었던 일본이 유전자 가위 분야에서 한국을 앞지른 건 규제 문제를 빨리 해소한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지금이 유전자 가위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상용화에 속도가 붙는 시점이라며 한국도 상용화를 위한 규제 개선이나 제도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가 유전자 가위로 새로운 산업을 만들고 있는데 우리만 늦어지고 있다”며 “규제만 해결되면 다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실력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김 교수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가진 회사 가운데 전 세계에 상장사가 몇 군데만 있는지 아느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기자가 잘 모르겠다고 답하자 그는 미국 나스닥시장에 있는 기업들을 쭉 열거하더니 마지막에 툴젠을 이야기했다. 김 교수는 “전 세계에 유전자 가위 기술로 상장한 회사를 배출한 국가는 미국과 한국밖에 없다”며 “지금도 늦지 않았다. 규제만 풀어주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