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개봉한 영화 ‘쥬라기 공원’은 과거 지구를 지배한 공룡을 현대 생명과학 기술로 되살려 낸다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영화에서는 호박에 갇혀 있던 모기의 피에서 공룡 DNA를 찾아낸 뒤에 개구리 DNA를 잘라 붙이는 방식으로 공룡을 되살렸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영화 속 이야기는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SF영화 속 꿈 같던 기술이 30년이 지난 지금은 현실을 바꾸고 있다. 유전자 가위라는 유전자 교정 기술로 생산성을 높이고 질병에 대한 적응력을 높인 작물이 미국과 일본에서 판매되고 있다. 난치병 치료제도 조만간 시장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 유전자 가위 기술의 선두를 달리는 국가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 같은 경쟁국에 비해 과도한 규제 탓에 상업화는 늦어지고 있다. 조선비즈는 6회에 걸친 기획을 통해 유전자가위 기술의 현재와 가능성을 짚어보고, 규제 개선 방향을 제시하려고 한다.[편집자 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유전자 편집 기술은 종자 산업과 바이오 산업의 근간을 바꾸고 있다. 하지만 인간을 포함해 모든 동·식물에 존재하는 유전자를 바꿀 수 있는 기술이 비단 농업과 바이오에만 국한될 리는 없다.
유전자 편집 기술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기후 변화를 막는 ‘그린 산업’이다. 유전자를 통해서 어떻게 기후 변화를 막는다는 걸까. 미국의 바이오테크 기업 ‘리빙카본(Living Carbon)’의 사례를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다.
리빙카본은 일반적인 나무보다 성장 속도가 빠르고 탄소를 더 많이 흡수할 수 있는 슈퍼 나무를 개발하고 있다. 나무가 부패하면 저장했던 탄소를 배출하게 되는데 ‘슈퍼 나무’는 부패에도 강해서 탄소 배출도 최소화할 수 있다.
‘슈퍼 나무’를 어떻게 만드는 걸까. 리빙카본이 세상에 등장하기 전인 2019년 미국 일리노이대 어바나샴페인 연구진은 식물의 광합성 과정을 개선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식물의 유전자를 일부 편집해 식물이 흡수한 탄소를 대기 중에 배출시키는 과정을 인위적으로 막은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식물은 기존 식물보다 25% 더 크게 자랐다.
리빙카본은 이 연구 결과를 이용해 사업화에 뛰어들었다. 포플러나무와 테다소나무 두 가지 종의 나무를 이용해 광합성능을 개선했다. 그 결과 유전자를 편집한 나무는 대조군보다 바이오매스가 최대 53%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리빙카본은 미국 조지아 일대에 이 ‘슈퍼 나무’를 심으면서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했다. 지금은 탄소배출권 사업을 통해 수익까지 내고 있다.
한국에도 비슷한 발상을 한 기업이 있다. 유전자 가위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가 창업한 그린진이다. 김 교수가 세운 그린진은 엽록체 유전자를 교정해 광합성 효율을 높이고 재배 편의성을 높인 작물을 개발하는 게 목표다. 김 교수는 “엽록체 유전자를 개량할 수 있으면 광합성 효율을 높이고 농업 생산성도 높일 수 있다”며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이 주목받고 있는데, 터빈으로 대기 중 탄소를 빨아들이는 기술은 오히려 전기가 많이 들기 때문에 진정한 친환경 기술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수억 년 전부터 지구에 존재하는 식물의 탄소 흡수를 늘리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며 “외부 유전자를 넣는 리빙카본의 기술보다 염기 하나를 바꾸는 유전자 편집 기술이 훨씬 좋다”고 설명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의 사용처는 무궁무진하다. 일본 교토대 농업대학원과 스페인 바르셀로나 진화생물학연구소 공동 연구팀은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바퀴벌레를 퇴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바퀴벌레는 경이로운 생명력으로 유명하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퇴치가 불가능한데, 유전자 가위를 이용하면 바퀴벌레를 지구에서 없애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일본과 스페인 공동 연구팀은 바퀴벌레 암컷의 몸 속에 있는 유전자를 편집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곤충의 유전자 편집은 인간을 대상으로 할 때보다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퀴벌레는 생식 체계가 일반적인 곤충과 달라서 더욱 난이도가 높다. 하지만 연구진은 바퀴벌레 유전자 편집에서 22%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바퀴벌레 유전자에서 생식 능력을 잘라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의미다. 다카키 다이몬 교토대 교수는 “바퀴벌레나 진드기 같은 해충을 없애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프리즈엠(FreezeM)이나 베타해치(Beta Hatch) 같은 해외 기업들은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로 곤충의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부화나 성장 속도를 높이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곤충 생산량을 늘려서 동물 사료나 바이오 연료, 비료 등으로 사용하려는 것이다.
참고자료
SCIENCE, DOI :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at9077
nature biotechnology,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7-023-019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