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제주공항에서 약 35km가량 떨어진 제주 구좌읍 행원리에 위치한 행원풍력발전단지 인근 앞바다에 다다르자, 제주의 바다 바람을 맞고 힘차게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지난 1998년부터 국내에서 최초로 조성된 상업용 풍력발전단지이자, 풍력으로 만든 전기로 청정 수소를 생산하는 ‘그린수소’ 핵심 기지이기도 하다. 수소를 뜻하는 ‘H2′와 압축한 수소를 옮길 튜브트레일러(수소 이동 트레일러) 충전소 옆에 붙은 팻말도 눈에 들어왔다. 2030년까지 ‘탄소 없는 섬’을 표방한 제주에서는 지난 4일 국내 최초 그린수소를 이용한 버스가 시범 운행에 돌입했다.
행원풍력발전단지에 4778㎡ 규모로 들어선 국내 1호 그린수소 실증단지의 생산시설은 지난 8월 28일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이곳 그린수소 실증단지는 한국가스안전공사의 최종 완성검사를 5월에 마쳤고, 8월 품질검사를 통과했다. 지난달부터 본격적인 실증 운전에 나섰다.
그린수소는 풍력이나 태양 등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으로 물을 분해해 만드는 수소로 천연가스의 주성분 메탄에서 수소를 추출해내는 ‘그레이수소’와 달리 탄소 배출이 전혀 없다는 게 특징이다. 강병찬 제주에너지공사 지역에너지연구센터장은 “행원풍력발전소로부터 얻은 전기를 통해 그린수소를 생산하여 1등급에 준하는 청정수소를 생산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현재 정부에서 청정수소 인증제 기준을 마련할 예정인데, 여기에 발맞춰 최상위 단계에 청정수소로 인증을 받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 청정 수소 인증제 기준을 마련할 방침이다. 현재 한국에서 생산하는 수소는 그레이수소(천연가스를 고온·고압 수증기와 반응시켜 물에 함유된 수소를 추출하는 개질방식)가 대부분이다. 개질할 때 나오는 탄소를 포집·저장하는 기술(CCS)을 접목시켜 탄소만 제거한 블루수소와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을 이용한 그린수소, 원자력발전으로 만든 전력을 이용해 만드는 핑크 수소 등이 있다. 정부는 수소를 생산하거나 수입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일정 수준 이하일 경우에는 청정수소로 인정하는 제도를 2024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산업통산자원부는 그린수소 생산을 위한 기반 기술을 개발하고 실증사업용 시설을 구축하는 지방자치단체로 제주도를 선정했다. 제주도는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3MW(메가와트)와 동복리 12.5MW, 현재 협상 중인 지역에 30MW 청정수소 실증사업을 추진하면서 50MW 규모의 청정 그린수소 생산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는 아시아 최대규모의 수소 생산단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2030년부터 제주에선 3800톤의 청정 수소가 생산돼 수소 혼·전소 발전과 국내 최초 5MW급 전소터빈 실증사업 등이 추진된다.
기자가 방문한 30MW의 국내 최초 그린수소 실증단지는 지난 4월 완공됐다. 이곳 실증단지는 사업비 222억원(국비 135억원·도비 14억5000만원·민간 72억6000억원)을 들여 알카라인(Alkaline)·펨(PEM) 등 수전해 시설, 버퍼탱크(수소압력 완충탱크), 수변전 시설, 튜브 트레일러 등을 갖췄다. 제주에너지공사가 주관사이며 한국가스공사·두산에너빌리티·수소에너젠·지티씨·한국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 등 10개 기관·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제주에너지공사는 건축물 사용승인, 고압가스 사업개시 신고 등의 인허가를 완료하고, 수전해 설비 개별 시운전을 거쳤다. 이후 생산 수소 샘플 채취 및 수소 순도 검사를 진행한 후 적합 판정이 나오면 제주시에서 추진 중인 수소 버스 운영을 위해 그린수소 공급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제주에너지공사는 이곳 실증단지에서 그린수소를 생산하고 있다. 이곳에는 수전해 설비를 갖춘 총 3개의 컨테이너가 설치됐다. 그린수소 시설의 핵심인 수전해 시설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국내에서 개발된 알카라인 방식 수전해 설비 2기와 펨 방식 1기가 도입됐다. 단지에서는 수전해 설비를 사용해 정수장 물을 전기로 산소와 수소로 분리한 뒤 산소는 대기 중으로 배출하고, 수소를 확보하게 된다. 수소를 제조할 때 사용하는 물은 수돗물을 사용한다. 300KW급 펨 방식 수전해 시스템을 공급한 윤주영 두산에너빌리티 디지털플랜트개발팀 수석(공학박사)은 “올인원 방식의 펨 시스템으로 99.99%까지 정제된 순도가 높은 고품질 그린수소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수소는 저장이 까다롭다. 수소차 연료로 사용하려면 작은 공간에 가능한 한 고압으로 많은 기체상태의 수소를 넣어야 한다. 고압으로 압축된 수소를 담는 탓에 안전이 최우선이다. 강병찬 센터장도 “안전관리규정 심사 등 관련 법규정에 따른 후속 절차 진행과 안전 관리를 엄격히 관리해 지속 가능한 수소 에너지 전환을 통해 그린수소 글로벌 허브 구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이곳 단지의 제어시스템 설계부터 제작까지 도맡았다. 윤주영 수석(공학박사)은 “수소 생산을 위해서는 위험물의 폭발을 예방하거나 또는 폭발에 의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방폭 구역 관리 강화, 안전하게 시설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그간 두산이 해온 원자력·석탄 발전소 설비 경험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안전한 수소 생산 단지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첫 그린수소 플랜트 설계 시도를 시작으로 원자력과 연계한 그린수소 플랜트를 만들어 해외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수소는 부피가 큰 기체다. 이를 옮기려면 덩치를 줄여야 한다. 대기압의 200배 정도는 필요하다. 그 단위를 바(bar)라고 한다. 200bar는 200분의 1로 줄인 것을 의미한다. 이 튜브트레일러로 수소를 충전소로 옮긴다. 이곳에서 생산된 그린수소는 버퍼탱크에서 고압하고 1대당 최대 340kg(200bar)을 담을 수 있는 튜브 트레일러를 이용해, 단지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조천읍 함덕리 수소충전소로 운송이 된다. 하나의 트레일러에는 10개의 압축된 수소가 담긴 실린더가 실린다. 함덕리 충전소는 1시간에 약 90~100kg을 충전할 수 있다.
단지 내에서는 일평균 약 200kg의 수소 생산을 통해 수소버스 9대에 그린수소를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강병찬 센터장은 “버스 연비, 배차 간격을 다 고려했을 시 9대의 하루 소모량을 예측했다”면서 “버스 1대 당 20kg 수소로 추정했을 시 약 180kg에서 최대 200kg까지 생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수소버스 1대만 시범 운영 중이다. 강병찬 센터장은 “이달 4일 사업개시를 한 다음 수소를 충전소로 본격 출하했다”면서 “현재는 1대만 시범운전하고 있으며 시민들을 태우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는 10월쯤엔 시민을 태운 수소버스 9대를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린수소는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대안 에너지로 주목받고 있지만, 여전히 한계도 있다. 생산 과정에서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인허가 기준도 까다로운 편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재생에너지를 통해 그린수소를 생산하게 하기 때문에 에너지원 조달에 값비싼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여전히 고민이 되는 지점”이라면서 “여기에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에 비교해서도 인허가 기준이 높아 관련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부분도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지나치게 문턱이 높은 생산시설 설비 기준 완화 등을 통해 국내에서도 청정 수소 생산이 활발해질 수 있게 길을 터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