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봇 업체인 어질리티 로보틱스(Agility Robotics)는 18일(현지 시각) 두 발로 걷는 휴머노이드(humanoid, 인간형 로봇)인 ‘디지트(Digit)’를 한해 1만 대 이상 생산하는 시설인 로보팹(RoboFab)을 연말부터 가동한다고 밝혔다. 로봇 전문가들은 머지않아 자동차가 달리듯이 휴머노이드가 일상에서 흔해질 날이 다가왔다고 기대했다. 로보팹은 휴머노이드를 대량 생산하는 세계 첫 공장이 될 전망이다.
◇오리건주에서 연말부터 인간형 로봇 생산
디지트는 키 175㎝, 몸무게 65㎏인 휴머노이드다. 사람처럼 머리와 몸통, 팔다리가 달려 있고, 인간과 비슷하게 행동한다.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Ford)와 어질리티 로보틱스가 공동 개발했다. 디지트는 물건을 최대 16㎏까지 들고 나를 수 있다. 한 번 충전하면 16시간 동안 작동한다. 전력이 부족하면 스스로 충전장치로 이동해 충전을 시작한다.
최근 음식이나 의약품을 배달하는 로봇이 많이 등장했다. 이 로봇들은 대부분 바퀴로 움직인다. 디지트는 사람처럼 두 발로 걷는다. 덕분에 계단을 안전하게 오르고 내리며, 좁은 공간에서 웅크리거나 쪼그려 앉는 동작도 가능하다. 어질리티는 디지트는 앞으로 공장에서 부품을 나르거나, 소포나 화물을 원하는 현관 앞까지 배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어질리티 로보틱스는 미국 오리건주에 약 6508m²(약 1967평) 규모로 로보팹 시설을 짓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한 로봇은 2025년부터 일반 시장에 출시할 예정이다. 시제품 가격은 25만달러(약 3억 3000만원)인데, 실제 판매 가격은 그보다 저렴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볍고 안정적 움직임 위해 새 다리 모방
어질리티 연구진은 2020년 디지트의 시제품을 내놨다. 당시에는 두 다리만 있고 머리와 손이 없었다. 이번에 공개된 차세대 디지트(디지트 V2)는 머리와 손, 발광다이오드(LED)로 된 눈이 달렸다. 머리에는 카메라와 센서, 알렉스넷으로 불리는 인공지능(AI)이 장착됐다. 카메라로 주변을 촬영해 어떤 환경인지, 눈 앞에 어떤 사물이 있는지 인식할 수 있다. 옮겨야 할 짐을 구분하거나, 장애물을 피할 수도 있다.
어질리티 로보틱스는 “로봇이 이동하거나 앉았다 설 때, 또는 넘어질 때 카메라가 비추는 영상이 달라지면서 사물을 인식하는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며 “디지트는 AI 학습 덕분에 시시각각 달라지는 영상을 분석해 사물을 정확하게 인식한다”고 설명했다. 디지트는 더 많은 환경을 경험할수록 학습량이 늘어 장애물을 피하거나 최적 경로를 선정하는 효율이 높아진다고 회사는 밝혔다.
특히 디지트는 예상치 못한 장애물에 부딪쳐 넘어지더라도 균형을 다시 잡고 일어설 수 있다. 디지트가 안정적으로 움직이고 균형을 잡는 비결은 ‘생체 모방’에 있다. 연구진은 로봇이 가볍고 안정적으로 움직이도록 새의 다리를 흉내냈다. 왜가리와 학, 타조가 평지나 오르막길, 또는 휴지로 만든 컨베이어 벨트처럼 불안정한 곳에서 어떻게 자세를 유지하고 속도와 힘을 조절하는지 카메라로 촬영해 분석했다.
예를 들어 휴지 컨베이어 벨트 위를 달리고 있던 타조의 발이 휴지를 뚫고 지면에 닿았을 때 타조는 순간 균형을 잃는다. 이때 타조는 다시 자세를 잡기 위해 몸을 더욱 웅크리고 계속 달린다. 몇 걸음 만에 결국 다시 원래 속도와 자세로 달린다. 이런 움직임을 수학모델로 분석해 디지트가 같은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뛸 수 있도록 그 결과를 반영했다.
안드레아 캠벨(Aindrea Campbell) 어질리티 로보틱스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 “디지트 V2는 인력 부족, 안전사고, (근로자의) 번아웃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언젠가 휴머노이드도 자동차처럼 전 세계 곳곳에서 인간과 공존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포드는 디지트를 이용해 휴머노이드와 커넥티드(connected·연결) 자율주행 차량이 소통하는 방식을 개발하고 있다. 택배를 예로 들면, 서로 통신을 통해 연결된 택배 자율주행차량이 집 근처까지 물건을 배달하면, 휴머노이드 로봇이 내려 짐을 들고 현관 앞까지 배달하는 식이다. 이른바 라스트마일(last mile·최종 배송)을 로봇에 맡기는 것이다.
◇ 디지트의 전기모터 vs 아틀라스의 유압 피스톤
어질리티 로보틱스 외에도 수많은 기업들이 인간 노동력을 대체할 휴머노이드를 개발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공중제비 넘기’로 유명세를 탄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의 ‘아틀라스(Atlas)’도 휴머노이드다. 아틀라스는 사람의 걸음걸이와 동작, 자세를 모방해 여러 가지 센서로 균형을 잡는다. 눈에 띄는 점은 디지트와 달리 팔다리가 매우 굵다는 사실이다.
조정산 한국생산기술연구원 AI·로봇연구부문 수석연구원은 “아틀라스는 관절이 유압식이라 힘이 세고 다리가 굵지만 디지트는 전기모터를 이용해 비교적 힘이 약하고 다리도 가늘다”고 설명했다. 유압식은 피스톤처럼 공기 압력을 이용해 힘을 내는 방식으로 전기모터에 비해 강력한 힘을 낸다. 디지트는 최대 16㎏까지만 들지만 아틀라스는 89㎏이나 나가는 육중한 몸을 공중제비 돌 수 있는 이유다.
그렇다 전기모터가 성능이 떨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조 수석연구원은 “배송 로봇이 무조건 힘이 강해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어질리티가 전기모터 방식을 택했을 것”이라며 “산업현장에서 근로자들이 화물을 20㎏ 이상 들지 못하므로 디지트의 사양도 이 정도로 정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어질리티 로보틱스는 “디지트의 다리가 새처럼 얇아 가볍고, 휴대용으로 접어 차 트렁크에도 실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