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동영상 불법 스트리밍 서비스인 ‘누누티비’가 국내에서 논란으로 떠올랐다. 누누티비는 해외에 서버를 두고 국내 콘텐츠와 드라마, 영화을 불법적으로 제공하며 광고로만 수백억원의 부당이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과 경찰이 경위 파악에 나서면서 꼬리를 감췄지만, 제2 제3의 누누티비 사태가 현재 진행형이다. 해외에 서버를 두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한 탓이다.

지난 5월 26일 일본의 특허법원에 해당하는 지적재산고등재판소(知的財産高等裁判所·지재고재)는 해외에 서버를 둔 불법 행위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을 내려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 나온 판결이지만, 해외 서버가 불법이나 탈법의 만능키가 될 수 없다는 걸 특허의 관점에서 설파한 판례이기 때문이다. 국내 특허전문가들도 주목하는 이 판례는 어떤 내용일까. 법무법인 세움의 남현 파트너변호사와 함께 알아봤다.

◇보고 있는 동영상에 내가 단 댓글이 뜬다

일본의 도완고(ドワンゴ)는 유명 동영상 플랫폼인 싱글벙글 동영상(ニコニコ動画)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는 ‘니코동’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이 인기를 끈 이유 중에 하나는 동영상 시청자가 실시간으로 보내는 코멘트를 동영상 화면에 바로 띄워주는 기능이었다. 도완고는 이 기술에 ‘댓글 전송 시스템(コメント配信システム)’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특허를 받았다.

일본의 도완고(ドワンゴ)가 운영하는 유명 동영상 플랫폼인 싱글벙글 동영상(ニコニコ動画)의 로고. 영상 안에 코멘트를 시청자가 직접 쓸 수 있는 기능으로 유명하다./도완고

그런데 ‘FC2′라는 동영상 플랫폼 회사가 이 댓글 전송 시스템을 따라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FC2는 다카하시 리요라는 일본인이 만든 회사지만 미국 네바다주에 설립했다. 파일 서버 역시 미국에 뒀다. 형식상으로는 미국 회사처럼 보이지만, 일본 시청자를 대상으로 동영상 플랫폼을 제공했다. 실제로는 성인물 판매가 주 목적인 회사다.

도완고는 FC2의 특허권 침해를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FC2가 도완고의 특허를 실제로 침해했느냐였다. 이 부분은 어렵지 않게 정리가 됐다. 1심 재판소인 도쿄지방재판소 재판부는 FC2의 시스템이 도완고의 특허발명의 기술적 범위에 속한다고 인정했다. 한 마디로 FC2가 도완고를 베낀 게 맞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1심 재판부는 FC2가 도완고의 특허를 베낀 게 맞다면서도 FC2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가 주목한 건 ‘속지주의(屬地主義)’의 원칙이었다.

◇미국에 서버 있으면 일본 특허법 적용 못 한다고?

특허권은 그 권리를 인정하는 국가의 영토 안에서만 인정하는 속지주의를 따른다. 도완고의 특허는 일본 안에서만 인정된다는 의미다. 이 원칙은 전 세계 어디서나 똑같이 적용된다. 이 사건에서 쟁점은 FC2의 동영상 플랫폼을 일본 국내에서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할지 여부였다.

1심 재판부는 FC2의 시스템이 일본 국내에서 생산된 것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되면 속지주의의 원칙에 따라 FC2는 특허권을 침해한 게 아니라는 결론이 난다. 1심에서 FC2가 승소한 이유다.

1심 재판부는 왜 이런 판단을 내렸을까. 속지주의 원칙에 따르면 특허발명의 구성 요건을 충족하는 모든 물건이 일본 국내에서 만들어졌어야 한다. FC2의 시스템 중 동영상 전송용 서버와 댓글 전송용 서버는 일본이 아닌 미국에 있기 때문에 구성 요건이 모두 일본 국내에 있어야 한다는 속지주의의 원칙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본 것이다. 남현 변호사는 이런 판결에 대해 “1심 재판부는 형식 논리에 치우쳐서 판단을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시청자가 직접 동영상에 코멘트를 넣을 수 있는 기능으로 유명한 일본의 동영상 플랫폼인 싱글벙글 동영상(ニコニコ動画). 한 시청자가 영상에 코멘트를 넣는 방식으로 귀여운 토끼 모양을 만들었다./일본 트위터(X) 캡쳐

하지만 항소심에서 이 판단은 정반대로 뒤집혔다. 항소심을 맡은 지재고재가 1심 판결을 뒤집고 도완고의 청구를 상당 부분 인용하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일본 도쿄고등재판소에는 지식재산 사건을 담당하는 특별지부가 있는데 이를 지재고재라고 부른다.

◇네트워크형 시스템의 ‘생산’은 다르다

그렇다면 항소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와 왜 다른 판결을 한 걸까. 항소심 재판부는 인터넷처럼 네트워크를 통해 서버와 단말기가 연결된 시스템의 발명에서 ‘생산’의 개념을 달리 봐야 한다고 설파했다. 단독으로는 발명의 구성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더라도 복수의 요소가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돼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게 되면서 구성요건을 충족시키는 걸 네트워크형 시스템의 생산으로 새롭게 정의한 것이다.

이 사건에서 쟁점이 된 댓글 전송 시스템의 경우, 사용자의 단말기(컴퓨터, 휴대폰)가 동영상 파일을 수신한 시점에는 네트워크를 통해 서버와 단말기가 연결돼 있는 만큼 모든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이 미국과 일본에 걸쳐서 이뤄지기는 하지만, 시스템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의 기능과 역할, 시스템을 이용하는 게 특허권자의 경제적 이익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생산 행위가 일본 국내 영역에서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밖에 서버를 둔 동영상 플랫폼 시스템이라고 해도 일본 국내 이용자가 단말기로 동영상 파일을 받아야 시스템이 완성되기 때문에 발명의 실시행위로서 특허법상 생산이 맞다는 설명이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는 FC2의 특허권 침해를 인정하고, 댓글 전송 시스템의 사용을 금지했다. 손해배상금으로 약 1100만엔(약 1억127만원)을 지급하라는 명령도 함께였다.

도완고의 손을 들어준 일본 지적재산고등재판소(知的財産高等裁判所·지재고재) 판결문. 속지주의를 형식 논리에 치우치지 않고, 특허권을 두텁게 보호하는 판단을 내렸다./지재고재

국내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면 어떤 결론이 내려질까.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이번 판례 같은 케이스가 거의 없는 편이다. 하지만 남현 변호사는 특허권자를 보호하는 경향이 큰 한국의 특성상 일본 지재고재와 같은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고 이야기했다.

남현 변호사는 “속지주의의 원칙을 따른다고 해서 특허를 침해한 물건이나 방법 중 특허발명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것 모두가 국내에 존재해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한국도 특허강국으로 특허권자를 보호하는 쪽에 정책의 무게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비슷한 케이스가 한국에서도 벌어진다면 일본 지재고재가 설시한 법리와 비슷한 논리로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제3자 의견모집 제도도 등장

이번 판례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제3자 의견모집 제도’가 처음으로 실시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제3자 의견모집 제도는 특허에 관한 판결이 당사자 외에 제3자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 일반인의 의견을 모집해 증거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표준필수특허처럼 민간의 약정·거래관행과 관련이 있는 사건이나 첨단기술 같이 다양한 산업분야에 널리 사용되는 기술과 관련된 사건 등에서 쓸 수 있다. 일본에서는 2014년 삼성과 애플의 특허분쟁에서 한 차례 실시한 적이 있는데, 정식으로 특허법에 반영된 건 지난해 4월이었다. 그리고 작년 9월 이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가 제3자 의견모집을 실시하면서 법 시행 이후 처음 실시됐다.

특허전문가들은 제3자 의견모집 제도는 한국에서도 도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남현 변호사는 “제3자 의견모집 제도는 미국의 법정 조언자 의견서(Amicus brief) 제도를 참조한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에서도 특허 재판에서 업계 전반의 상황이나 국내외 법리를 고려하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하는 게 좋을 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현 법무법인 세움 파트너 변호사·한국특허법학회 이사. /법무법인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