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 날개로 유명한 모포 나비의 날개를 50배, 1000배, 5000배로 확대한 현미경 사진. 날개 비늘에 파란색만 반사하는 광결정 구조가 있어 우리 눈에 파랗게 보인다. 과학자들은 나비의 광결정 구조를 모방해 햇빛을 반사해 온도를 내리는 냉방 필름을 개발했다./sphotos-b.xx.fbcdn.net

전국에 밤낮으로 폭염(暴炎)과 열대야(熱帶夜)가 이어지고 있다. 새벽 최저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초열대야도 나타났다. 전 세계가 모두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3일부터 31일까지 전 세계 평균 기온은 섭씨 17.08도로 이전 가장 더웠던 달(2016년 8월)보다 0.28도 더 높았다. 한겨울인 남반구의 아르헨티나의 기온이 30도를 넘었다.

지구온난화에 맞서 전기를 쓰지 않고도 냉방을 할 수 있는 신기술들이 잇따라 개발되고 있다. 나비의 날개를 모방한 자동차 냉방 필름부터 온도를 낮추는 유리창, 벽에 바르면 온도가 내려가는 페인트까지 등장했다. 입으면 체온을 낮추는 실크 섬유도 나왔다. 냉방 신기술들은 에너지 소비 없이 온도를 낮춰 냉방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나비 날개읙 광결정 구조를 모방한 냉방 필름. 위는 일반 페인트, 아래는 나비 날개 결정구조를 모방한 필름을 부착했을 때 온도 변화이다./중국 선전대

◇자동차 냉방 돕는 나비 날개 필름

모포(Morpho) 나비는 밝게 빛나는 파란 날개로 유명하다. 중국 선전대의 구오 핑 왕(Guo Ping Wang) 교수 연구진은 지난 20일 국제 학술지 ‘옵티카(Optica)’에 “모포 나비의 표면 구조를 모방한 필름으로 한낮의 자동차 내부 온도를 크게 낮출 수 있다”고 밝혔다.

모포 나비의 날개에는 색소(色素)가 없다. 대신 날개에 덮여 있는 비늘 표면에 크리스마스트리의 가지처럼 생긴 광결정(光結晶) 구조가 있다. 모포 나비의 광결정은 파란색 파장의 빛만 반사하고 다른 빛은 그대로 통과시킨다. 이 때문에 나비 날개가 파랗게 보이는 것이다.

페인트도 파란색을 반사하지만 동시에 다른 노란색 계열의 빛은 흡수한다. 흡수된 빛은 자동차 온도를 높인다. 모포 나비 날개를 모방한 필름은 기존 페인트처럼 빛을 흡수하지 않고도 원하는 색상을 구현할 수 있다. 그만큼 자동차의 온도가 떨어진다.

선전대 연구진은 니비의 광결정 구조를 모방해 얇은 필름을 설계했다. 필름은 두께가 수마이크로미터(㎛, 1㎛는 100만분의 1m)이고 세 층으로 이뤄졌다. 맨 위는 보호층이고 그 아래 나비 날개의 광결정처럼 무수히 많은 작은 구조가 있는 반투명 유리를 넣었다. 맨 아래는 그곳까지 투과한 빛을 다시 반사하는 은(銀)거울이다.

연구진은 나비 날개를 모방해 빨강, 초록, 파랑 등 여러 가지 색상의 필름을 만들어 7시간 동안 햇빛에 노출했다. 필름들은 모두 주변 공기보다 2도 낮은 온도를 유지했다. 연구진은 맨 밑의 은거울을 여러 층으로 만들면 최대 10도까지 온도를 낮출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 자동차에 필름을 적용하자 냉각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햇빛 아래 주차한 자동차에 일반 파란색 페인트를 칠한 필름을 붙였더니 온도가 75도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나비 모방 필름을 붙였을 때는 42도 온도를 유지했다. 연구진은 “나비 날개를 모방한 컬러 필름이 전기 자동차 에어컨의 에너지 소비를 크게 줄여 차량의 주행 거리를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열 센서 위에 일반 페인트(왼쪽 네모)와 기능성 이중 구조 페인트(오른쪽)를 칠하고 적외선을 비추면 기능성 페인트가 훨씬 온도가 낮은 것을 알 수 있다. 기능성 페인트는 색은 구현하면서도 적외선은 반사해 그 아래 물체의 온도를 낮춘다./미 컬럼비아대

◇검은색 페인트로도 냉방 효과 낸다

여름에 검은색 옷을 입는 사람이 거의 없다. 검은색은 햇빛을 모두 흡수해 온몸을 찜통으로 만든다. 이제는 벽을 검은색으로 칠해도 오히려 집안 온도를 더 낮출 수 있게 됐다. 원하는 색은 내면서도 열을 발생시키는 적외선은 반사하는 특수 페인트가 개발됐기 때문이다.

미국 컬럼비아대의 유안 양(Yuan Yang) 교수 연구진은 지난 2020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색은 유지하면서도 건물이나 자동차 내부는 시원하게 해주는 기능성 페인트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이 개발한 페인트는 두 가지 물질로 구성된다. 맨 위층은 일반적인 페인트로 색을 구현한다. 그 아래에는 절연체인 테플론과 유사한 고분자 물질을 깔아 적외선을 반사하도록 했다. 햇빛에는 가시광선과 적외선이 포함되는데 태양에너지의 대부분은 적외선에서 나온다. 기사광선은 우리 눈에 들어와 색을 구현한다.

햇빛이 새로운 페인트에 닿으면 맨 위층이 특정 파장의 가시광선을 반사해 색을 낸다. 아래층은 적외선을 반사해 그 아래 물체의 온도가 올라가지 않도록 한다. 흰색 페인트나 금속 반사거울로도 햇빛을 반사해 온도를 낮출 수 있지만 원하는 색은 내지 못한다.

연구진은 새로운 방식으로 개발한 검은색 페인트를 칠하면 그 아래 물체의 온도가 일반 검은색 페인트를 발랐을 때보다 섭씨 16도 더 낮았다고 밝혔다. 또한 기능성 페인트를 칠한 물체는 60도의 오븐에 30일 동안 둬도 색이 변하지 않았다. 햇빛이 아무리 강해도 벽이나 지붕의 색은 유지하면서도 집안은 시원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양 교수는 “새로운 페인트는 햇빛이 강한 열대 지방의 건물이나 자동차에 활용할 수 있다”며 “기능성 페인트가 냉방용 전력 사용을 줄이고 결국 전력 생산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배출까지 줄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구원이 냉방 필름이 부착된 투명 유리를 들고 있다. 가시광은 90% 통과시키고 열을 내는 적외선과 자외선은 80% 반사한다. 덕분에 기존 유리창보다 냉방용 에너지 소비를 31%까지 줄일 수 있다./경희대

◇냉방에너지 31% 절감하는 유리창

경희대 전자공학과의 이응규 교수와 미국 노트르담대 항공기계공학과의 텡페이 루오(Tengfei Luo) 교수 연구진은 지난해 미 화학회(ACS)가 발간하는 학술지인 ‘ACS 에너지 레터스’에 빛은 통과시키고 열은 차단하는 투명 유리창을 발표했다.

이 교수 연구진은 유리 기판 위에 이산화규소와 질화규소, 산화알루미늄 층을 덧대고 실리콘 오일 필름을 첨가해 ‘투명 복사 냉방기’를 개발했다. 인공지능에 각각의 물질에 대한 정보를 학습시켜 최적의 조합 형태를 찾아냈다.

이 교수는 “적외선을 반사하는 페인트가 있지만, 밖을 보는 유리창에는 적용하기 어렵다”며 “복사 필름을 붙인 유리창은 가시광은 90% 통과시키고 열을 유발하는 적외선과 자외선은 80% 반사한다”고 말했다. 복사 필름을 부착한 건물은 기존 유리창을 단 곳보다 내부 온도가 섭씨 6.5도 낮았다. 연구진은 새 유리창은 건조하고 뜨거운 날에 기존 유리창보다 냉방용 에너지 소비를 31%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냉방 유리창은 건물뿐 아니라 승용차와 트럭에도 쓸 수 있다. 이 교수는 “냉방 유리창에 쓴 물질들은 이미 대면적으로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어 공정 최적화를 이루면 상용화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미국 퍼듀대의 슈린 루안 교수는 약품과 화장품을 희게 만드는 물질인 황산바륨으로 세상에서 가장 흰 페인트를 개발했다. 이 페인트는 햇빛 98.1%를 반사해 정오에 주변보다 온도를 13.3도 낮췄다./미 퍼듀대

◇바르면 13도 낮추는 흰색 페인트

건물에서 유리창을 뺀 나머지 벽은 흰색 페인트를 발라 냉방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미국 퍼듀대의 슈린 루안(Xiulin Ruan) 교수 연구진은 2021년 ‘ACS 응용 재료와 계면’지에 “세상에서 가장 흰 페인트로 햇빛의 98.1%를 반사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현재 시판 중인 흰색 페인트는 햇빛의 80~90% 정도만 반사한다.

더운 곳에서는 집을 흰색으로 칠하는 경우가 많다. 흰색은 모든 빛을 반사해 희게 보인다. 그만큼 열은 차단하는 데 좋다. 199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고 미국 에너지부 장관을 역임한 스티븐 추 박사는 온난화를 막으려면 세계 모든 지붕을 하얗게 칠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연구진은 약품과 화장품을 희게 만드는 물질인 황산바륨을 써서 입자 크기를 다양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이전보다 더 흰색을 구현했다고 밝혔다. 야외 실험 결과, 새로운 흰색 페인트를 칠한 부분은 정오 강한 햇빛 아래에서 주위보다 온도가 섭씨 13.3도 낮았고, 밤에도 7.2도 낮은 상태를 유지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흰색 페인트의 냉방 효과는 빛 차단과 동시에 열을 내는 적외선은 방출한 덕분이다.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열기는 지구에 그대로 남아 도시 열섬 현상을 유발한다. 이에 비해 이번 페인트는 대기에 흡수되지 않고 우주로 바로 빠져나갈 수 있는 파장대의 적외선을 95% 이상 방출했다.

표면을 흰색 냉방 페인트로 칠하면 햇빛을 효과적으로 반사할 수 있다(왼쪽 사진). 적외선 카메라로 보면 냉방 페인트 부분이 주변보다 6도까지 온도가 낮다(오른쪽)./미 컬럼비아대

앞서 미국 컬럼비아대 유안 양 교수도 지난 2018년 ‘사이언스’에 “건물에 바르면 햇빛의 거의 모든 파장을 반사해 표면 온도를 섭씨 6도까지 낮추는 페인트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컬럼비아대의 페인트는 염료 대신 내부에 있는 공기방울로 흰색을 구현했다. 페인트 내부에 박혀 있는 공기 방울들은 햇빛의 99.6%를 반사한다. 이로 인해 페인트는 하얗게 보인다. 투명한 얼음을 갈면 공기가 들어가면서 빛을 반사해 하얗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연구진은 우선 플라스틱 고분자 물질을 아세톤에 녹인 후 물을 첨가했다. 이 상태로 벽에 바르면 아세톤이 먼저 증발한다. 이로 인해 고분자 물질과 물의 결합이 끊어지면서 페인트 내부에 미세한 물방울들이 생겨난다. 나중에 물마저 증발하면 페인트는 무수히 많은 공기방울들이 연결된 스펀지 구조가 된다. 연구진은 냉방 페인트의 공기 방울은 가시광선은 물론 자외선과 적외선까지 반사한다고 밝혔다.

섭씨 37도에서 나노입자가 들어있는 실크 옷감 소재의 셔츠(왼쪽)와 일반 실크 셔츠(가운데), 면 셔츠(오른쪽)를 입은 사람을 각각 적외선 카메라로 찍은 사진. 나노입자 실크 셔츠를 입으면 체온이 훨씬 낮은 것을 알 수 있다./Nature

◇면 소재보다 12도 시원한 실크 셔츠

그래도 더우면 몸을 식혀주는 냉장고 셔츠를 입으면 된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샨후이 판(Shanhui Fan) 교수와 중국 난징대 지아 주(Jia Zhu) 교수 공동 연구진은 2021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일반 실크에 나노 입자를 추가해 햇빛 95%를 반사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원래 실크는 적외선과 가시광선의 대부분을 반사하고 체열도 쉽게 내보내기 때문에 다른 섬유보다 피부에 시원한 느낌을 준다. 연구진은 일반 실크 섬유에 산화알루미늄 나노 입자를 추가해 자외선까지 반사했다.

연구진은 실리콘 고무로 만든 마네킹에 나노 입자 실크로 만든 긴팔 셔츠와 일반 실크 셔츠, 면 셔츠를 각각 입혀 햇빛 아래에서 실험했다. 마네킹에는 전기 코일을 넣어 체온과 같은 온도를 구현했다. 나노 입자 실크 셔츠를 입은 마네킹은 일반 실크 셔츠를 입혔을 때보다 온도가 8도 낮았으며, 면 셔츠보다 12.5도나 낮았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냉방은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의 15%를 차지한다.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0%도 냉방에서 나온다. 지구가 갈수록 더워지면서 냉방 신기술의 상용화 속도도 빨라질 전망이다.

참고 자료

Optica(2023), DOI: http://doi.org/10.1364/OPTICA.487561

ACS Energy Letters(2022), DOI: http://doi.org/10.1021/acsenergylett.2c01969

ACS Applied Materials & Interfaces(2021), DOI: https://doi.org/10.1021/acsami.1c02368

Nature Nanotechnology(2021), DOI: https://doi.org/10.1038/s41565-021-00987-0

Science Advances(2020). DOI: https://doi.org/10.1126/sciadv.aaz5413

Science(2018),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at9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