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얀센의 폐동맥 고혈압 치료제 ‘옵서미트정(성분명 마시텐탄)’은 철옹성이나 난공불락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옵서미트정은 미국 제약사인 악텔리온이 개발한 약으로 한국에서는 얀센이 판매를 담당하고 있다. 국내에서만 매년 매출이 100억원이 넘을 정도로 꾸준히 팔리는 약이다.
그동안 국내 제약사는 옵서옵미트정의 제네릭(복제약)을 출시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옵서미트정의 특허를 회피하기 위해 10여년 전부터 여러 국내 제약사가 도전했지만 모두 물거품이 됐다. 특허를 돌파하는 데 실패한 제약사만 해도 휴온스, 인트로바이오파마, 알보젠코리아, 한미약품 등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지난 4월 마침내 옵서미트정의 단단한 특허를 돌파한 제약사가 나왔다. 대웅제약이 주인공이다. 옵서미트정은 물질 특허가 올해 3월 26일 이미 만료됐다. 제형 특허만 남아 있었기 때문에 제네릭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형 특허만 회피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옵서미트정의 국내 판매를 담당하는 얀센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김앤장을 내세워 특허 방어에 나섰다. 대웅제약은 특허법인 위더피플을 대리인으로 내세웠다. 이름값만 보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았다. 하지만 결과는 다윗인 위더피플의 승리였다.
특허심판원은 지난 4월 대웅제약이 얀센을 상대로 제기한 옵서미트정 제형 특허에 대한 소극적 권리범위확인 심판에서 청구가 성립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얀센이 이 결정을 받아들이면서 대웅제약은 옵서미트정의 제네릭에 대한 우선판매권을 가지게 됐다. 매년 100억원 이상의 매출이 꾸준히 나오는 약인 만큼 우선판매권의 가치도 크다는 게 제약업계의 분석이다.
위더피플은 어떻게 김앤장과 글로벌 제약사의 연합을 넘어선 걸까. 이번 심판 청구의 키를 쥔 건 위더피플의 김희진 변리사였다. 김 변리사는 17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얀센을 대리한 김앤장의 주장에 허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앤장은 심판 대상인 확인발명대상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품목허가를 받을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대웅제약이 옵서미트정의 특허를 회피해서 만든 제네릭이 불안정한 제품이라 품목허가를 받기 힘들고, 이런 이유로 실시가 불가능한 확인대상발명으로 심판을 청구하는 경우 확인의 이익이 없다는 식의 논리였다.
하지만 김희진 변리사는 특허법원의 관련 판례를 여럿 찾아 심판부를 설득했다. 김앤장은 대웅제약의 확인대상발명 관련 기술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허가를 못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위더피플은 약사법과 특허법이 별개라는 점을 들어 김앤장의 주장을 배척했다. 김 변리사는 “이 사건에서 확인대상발명이 의식적 제외에 해당한다는 건 명확했기 때문에 여기에 중점을 두고 김앤장의 논리를 반박했다”며 “특허법을 바탕으로 대웅제약의 제네릭이 옵서미트정의 특허권에 속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주장해서 심판부를 설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웅제약 케이스는 김앤장 같은 대형 로펌과 차별화되는 위더피플만의 강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위더피플은 원래 출원 업무 중심의 소규모 법률사무소로 운영되다 특허청 차장을 지낸 이준석 대표변리사가 합류한 2019년부터 종합 특허법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대표는 분야별로 전문성을 가진 변리사를 대거 영입했고, 이를 통해 위더피플의 개성이 두드러지게 됐다.
대웅제약 케이스를 이끈 김 변리사는 한국에 유일한 특허법원, 대법원 근무경력을 가지면서 특허청 심판장 출신의약사 자격증을 가진 변리사다. 그만큼 제약·바이오 특허 사건에서 김 변리사가 두드러질 수 있는 이유다. 김 변리사는 “심판장 출신으로 워낙 다양한 특허 심판 사건을 다뤄봐서 다른 변리사보다 쟁점 파악이 빠르다”며 “심판부를 어떻게 설득하고,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잘 보는 편”이라고 말했다. 김 변리사는 대법원에서 기술조사관을 지내기도 했다.
위더피플을 이끄는 이준석 대표변리사는 “특허청 심판장이 퇴직 전에 변리사로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위더피플은 김희진 변리사 외에도 기계전자 분야와 상표 분야에서도 심판장 출신을 영입했다”며 “특허 관련 업무를 위해 특허법인을 찾아오는 고객들은 자신에게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모르는 경우도 많은데, 우리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있다보니 고객 입장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위더피플은 변리사가 25명에 전체 직원 80여명 정도다. 이 대표변리사가 합류한 이후 빠르게 성장했다. 상표 출원의 경우 국내 고객 출원만 약 2000건 정도를 기록했는데 변리사 조력 없이 저가로 찍어내듯 업무를 처리하는 특허사무소를 제외하고 제대로 된 특허법인 중에서는 업계 최고 규모다. 김앤장 같은 대형 로펌이나 법률사무소가 특허법인을 함께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위더피플이 이렇게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걸까.
이 대표변리사는 고객의 입장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빠르게 제공할 수 있다는 게 위더피플만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보통의 특허법인은 변리사 한 명 한 명이 실적 경쟁을 하다보니 같은 법인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데 위더피플은 인센티브를 주는 개념으로 가다보니 변리사와 팀 간에 자연스럽게 협력이 잘 되는 분위기가 갖춰졌다”고 말했다.
신영의 하이엔드 주거 브랜드인 ‘브라이튼’을 상표권 사냥꾼에게서 보호한 것도 위더피플의 성과다. 최근 상표권을 선점한 뒤에 실제 주인에게 되팔아서 이익을 챙기는 ‘상표권 사냥꾼’이 분야를 가리지 않고 판치고 있다. 선(先) 출원주의를 견지하는 상표권의 특성상 먼저 출원 신청만 해도 상표권의 권리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업계에서도 대형 아파트 단지가 상표권 사냥꾼의 목표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서울 강동구의 둔촌주공 재건축조합은 ‘올림픽파크 포레’로 단지명을 정하려고 했지만, 이미 상표가 출원돼 있어 불가능했다. 누군가가 상표출원을 선점한 것이다.
신영의 브라이튼도 마찬가지 신세가 될 뻔했다. 신영은 여의도 랜드마크로 건설하는 복합단지에 ‘브라이튼’이라는 브랜드를 붙여서 광고까지 했지만, 상표 출원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이미 광고가 나간 뒤에야 상표 출원에 나섰지만, 누군가가 먼저 부동산업에 한해 브라이튼이라는 상표를 출원한 상태였다.
이때 구원투수로 나선 게 위더피플이었다. 위더피플은 처음에는 브라이튼 상표 출원만을 맡았지만, 누군가가 브라이튼 상표를 앞서서 출원한 사실을 확인한 뒤에는 브라이튼 상표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발벗고 나섰다. 이 사건을 맡은 위더피플의 김수경 변리사는 “브라이튼을 먼저 출원한 사람이 여의도 인근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찾아내고 신영이 출원에 앞서 브라이튼이라는 브랜드로 적극적인 광고와 홍보를 한 사실을 소명했다”며 “특허청이 먼저 브라이튼을 출원한 사람이 부정한 목적을 가졌다는 걸 인정하면서 신영이 정당한 상표권을 지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로펌인 덴톤스리와 적극적인 협력 관계인 것도 위더피플만의 강점이다. 대부분의 특허법인이 로펌과 상하관계인데 비해 위더피플은 덴톤스리와 동등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다보니 변리사와 변호사가 필요한 업무에서 자유롭게 공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 대표변리사는 “특허도 결국 심판 단계를 지나면 변호사와의 협력이 필요한 단계가 나오는데 이 때 다른 로펌의 변호사를 수임하려면 많은 비용과 부담이 생긴다”며 “위더피플은 덴톤스리와 회사 차원의 협력 관계를 구축했기 때문에 심판, 소송 단계마다 필요한 협력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변리사는 앞으로 5년 안에 위더피플을 지금의 두 배 규모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그는 “규모를 키우는 게 목표가 될 수는 없지만, 더 많은 고객에게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며 “5년 안에 지금의 2배 정도로 키우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