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양자 산업에서 한국은 가장 큰 경쟁자이자 협력 파트너로 떠오를 것입니다. 이번 행사에서 한국의 놀라운 양자 기술을 확인했습니다.”

26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지털플라자(DDP)에서 만난 장 자드 루이드씨는 기자에게 상기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루이드씨는 양자 계측 기술을 개발하는 프랑스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날 개막한 ‘퀀텀 코리아 2023′의 부대 행사로 열린 ‘국제연구·산업 전시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이날부터 29일까지 열리는 ‘퀀텀코리아 2023′에서는 노벨상 수상자의 강연과 함께 국내외 양자 관련 기업과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국제연구·산업 전시회 같은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됐다.

이날 국제연구·산업 전시회가 열린 DDP 아트홀 1관에는 양자과학기술의 현황을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행사장을 찾은 시민과 사업 파트너를 찾기 위해 방문한 업계 관계자로 북새통을 이뤘다. 국내 기업에서는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를 비롯해 양자 관련 스타트업, 대학, 정부출연연구기관이 부스를 마련해 최신 연구 성과와 제품을 선보였다. 양자컴퓨터 기술을 이끌고 있는 IBM과 미국 스타트업 아이온큐를 비롯한 해외 기업까지 더하면 50여곳의 기업·기관이 참여해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퀀텀코리아 2023' 개막 첫날 국제연구·산업 전시회가 열린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지털플라자(DDP) 아트홀 1관의 모습. 이날 행사에는 국내외 50여개 기업과 관계자들이 참여했다./이병철 기자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많은 비가 아침부터 이어졌지만 전시장이 문을 연 오후 1시부터 관람객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은 곳은 SK텔레콤과 양자암호통신 분야 자회사인 IDQ의 부스였다. SK텔레콤은 양자난수생성기, 양자키분배기, 양자센서, 양자라이다(LiDAR·빛 레이더) 처럼 상용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는 수준의 제품을 선보여 주목 받았다. 특히 양자라이다를 이용해 관람객의 사진을 촬영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양자과학기술이 아직 상용화 단계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관람객이 체감할 만한 프로그램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SK텔레콤의 양자라이다가 더 주목을 받았다.

엄상윤 IDQ 대표는 “최근에는 싱가폴 통신사와 양자암호통신 분야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그외 다른 국가들과도 활발히 사업을 의논하고 있다”며 “이번 행사에서도 양자통신 기술에 관심있는 기업 관계자들이 부스를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은 퀀텀코리아 2023행사에 양자라이다를 이용한 사진 촬영 체험 부스를 마련했다. 양자라이다는 일반 라이다보다 감도가 우수해 항공, 선박 관제에 활용성이 클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기술이다./SK텔레콤

양자컴퓨팅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는 것으로 평가받는 IBM의 부스에도 많은 관람객이 찾았다. IBM 부스에 놓인 전시품은 433큐빗(qubit) 초전도칩이 유일했으나 부스를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IBM은 현재 양자 분야에서 글로벌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하드웨어, 알고리즘, 소프트웨어 개발을 비롯한 다양한 서비스를 소개했다.

소피 신 IBM퀀텀 한국 리더는 “IBM은 양자컴퓨터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뿐 아니라 양자 생태계 확장을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행사 부스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양자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연구기관들의 부스도 많은 인기를 끌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은 초전도 양자컴퓨터 실물 모형을 전시해 주목을 받았다. 아직 국내 양자 기술 생태계가 기업보다는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조성돼 있는 만큼, 많은 기업 관계자가 출연연의 부스를 찾아 최신 기술과 공동 연구에 대한 의논을 나눴다.

조명래 표준연 초전도양자컴퓨팅시스템연구단 선임연구원은 “방금 전까지도 업체 관계자와 우리가 개발하는 양자컴퓨터에 어떤 부품을 활용할 수 있을지 의논하고 있었다”며 “기업과 연구소간 협력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퀀텀코리아 2023'에전시한 양자컴퓨터 모형./이병철 기자

이날 행사는 국내에서 치러진 양자 관련 행사 중 가장 큰 규모였던 만큼 해외 기업 참여에 대한 관심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IBM, 아이온큐처럼 양자 기술 분야를 선도하는 기업뿐 아니라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유럽의 여러 기업도 참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조 선임연구원은 “IBM처럼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기업도 관심이 가지만, 유럽을 기반으로 하는 IQM 같은 업체의 부스를 눈 여겨 보고 있다”며 “유럽 기업들은 어떤 전략을 채택했는지,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인지 알아 볼 기회”라고 말했다.

미국의 양자 계측 장비 기업 키사이트 부스를 외국인 관람객들이 찾았다. 이날 행사에는 국내외 양자산업 관계자들이 찾아 다양한 사업 협력을 의논했다./이병철 기자

미국 계측장비 회사인 키사이트에서 양자계측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는 김경원 부장은 “오늘 행사를 통해 한국의 연구 기관들과 협력 방법을 의논할 계획”이라며 “대학과도 협력해 양자 분야 교육에 필요한 솔루션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한국의 양자 기술 수준과 생태계 구축 전략에 대해 큰 관심을 나타냈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루이드씨는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양자 기술에서 크게 주목받는 국가는 아니었지만, 최근 몇년간 급성장했다”며 “오늘 행사에 참가해 연구기관이 기술력을 이끄는 전략이 주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기업 관계자뿐 아니라 양자 분야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도 참여했다. 올해 처음으로 양자대학원 신입생을 받기 시작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도 부스를 차리고 홍보에 나섰다. 이곳에서 만난 한 정부관계자는 “양자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데,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방법으로 대학원 입학을 알아보고 있다”며 “관련 분야 대학원의 부스가 한 곳에 모인 만큼 정보를 한번에 알아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신정주(25)씨는 “최근 양자 분야로 진출하려고 고민하던 중 이번 행사가 열린다는 걸 알게 돼 참석했다”며 “다소 즐길거리가 부족한 것은 아쉽지만, 국내는 물론 해외 기업과 산업 동향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미국 양자컴퓨터 기업 아이온큐의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이날 아이온큐는 양자컴퓨터 신제품을 공개했다./이병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