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를 이용해 신약과 신소재 개발에 필요한 화학 공정을 시뮬레이션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양자컴퓨터의 기술적 한계로 지목되던 양자 오류를 보정해 계산 정확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마틴 람 스웨덴 찰머스대 화학·화학공학과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20일 국제 학술지 ‘계산 및 이론화학 저널’에 슈퍼컴퓨터로는 계산할 수 없는 분자의 특성을 양자컴퓨터로 계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양자 기술은 얽힘·중첩 같은 양자가 가진 고유의 특성을 활용해 기존 장치의 성능을 뛰어넘는 장치를 만드는 기술이다. 대표적인 응용 분야로는 양자컴퓨터, 양자 암호통신, 양자 센서가 꼽힌다. 이 중 양자컴퓨터는 양자의 성질을 활용해 계산을 하는 장치로 0과 1로만 정보를 표현할 수 있는 기존 컴퓨터와 달리 양자의 중첩 현상을 이용해 3개 이상의 정보를 표현할 수 있다. 덕분에 슈퍼 컴퓨터로 10억년이 걸려야 풀 수 있는 문제를 단 100초 만에 풀 수 있는 성능을 낼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그러나 양자컴퓨터는 100~1000번의 연산당 1번의 오류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복잡한 계산을 위해 큐비트의 숫자를 늘릴수록 오류가 발생할 확률은 계속 높아진다. 현재 양자컴퓨터로 계산한 결과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만큼 양자 오류를 줄일 수 있는 기술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양자컴퓨터가 정확한 계산을 하기 위해서는 오류율을 수십억 분의 1 수준으로 낮춰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스웨덴 연구진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슈퍼 컴퓨터와 계산 결과를 비교해 오류를 보정하는 방식을 개발했다. ‘참조 오류 보정(REM)’이라고 부르는 이 방식은 슈퍼컴퓨터로도 계산할 수 있는 간단한 수준의 연산을 양자컴퓨터로 계산한 후 결과를 비교해 오류를 보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스웨덴 연구진은 자체 개발한 양자컴퓨터 ‘세흐림니르(Särimner)’에 이 기술을 적용해 양자 오류를 개선했다. 그 결과 양자 오류는 절반 이하로 줄었고, 수소와 리튬화수소처럼 작은 분자의 고유 에너지를 정확히 계산하는 데 성공했다. 고유에너지는 물질이 가진 에너지의 총량으로 새로운 화학 반응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고 있다.
람 교수는 “이번 실험에 사용된 양자컴퓨터는 성능이 낮아 가벼운 분자에 대한 계산만 했지만, 고성능의 양자컴퓨터를 사용하면 크고 복잡한 분자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신약·신소재를 만드는 화학 공정을 설계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생명과학에서 인공지능(AI)이 주목 받듯이 화학에서는 양자컴퓨터가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으며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구글도 2020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자체 개발한 양자컴퓨터 연산장치인 시커모어의 양자 오류를 제어해 2개의 수소 원자와 2개의 질소 원자로 구성된 디자젠 분자의 구조 변화를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양자컴퓨터는 실제 자연에서 나타나는 양자 현상을 계산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로, 양자 현상을 고려해 공정을 설계하면 생산 효율을 높이고, 고장률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에 따르면 양자컴퓨터 기술 발전으로 신약 개발 성공률은 5~10% 높아지고, 개발 시간은 15~20% 줄어들 전망이다.
최근에는 이론적으로 양자 오류가 발생하지 않는 방식의 ‘위상 양자컴퓨터’가 주목받고 있다. 내부와 표면의 전기적 성질이 다른 위상 물질을 이용한 방식이다. 다만 양자컴퓨터를 구현할 수 있는 위상 물질이 없어 아직 기초 연구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이다.
황찬용 한국표준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장은 “양자 기술의 상용화는 오류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만큼 위상 양자컴퓨터가 갖는 의미가 매우 크다”며 “양자 기술이 산업적 가치가 큰 만큼 다양한 양자 기술을 동시에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