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운영하는 핵융합 실험장치인 ‘EAST(핵융합 유도 토카막 실험장치)’가 세계 최초로 고온 플라스마 상태를 403초간 유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핵융합 발전에 필요한 1억도의 온도보다 낮은 상태에서 진행된 실험이기 때문에 1억도에서 30초를 유지한 한국의 핵융합 발전 수준이 더 높다고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중국 신화통신은 13일(현지 시각) 중국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EAST가 고온 플라스마 상태를 403초간 유지하며 지난 2017년 달성한 최고 기록 101초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는 태양이 빛과 열 에너지를 자체 생산하는 원리인 ‘핵융합 반응’을 지구상에 구현하기 위해 개발된 장치다. 이 장치를 ‘인공 태양’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다.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려면 핵융합 연료인 중수소가 플라스마 상태를 오랜 시간 유지해야 한다. 플라스마 상태란 수소와 같은 가벼운 원자에 높은 온도와 압력이 가해져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것을 뜻한다. 중수소를 플라스마 상태로 만들어야만 원자핵을 둘러싸고 있던 전자가 흩어지면서 원자핵끼리 충돌이 발생해 열 에너지가 나올 수 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과학원 플라즈마물리학연구소의 쑹윈타오 소장은 “고온, 고압 환경에서 플라스마 상태가 급격히 활성화시키는 ‘고밀폐 모드’ 덕분에 이번 성과를 달성했다”고 말했다.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를 갖고 있는 국가는 전 세계에 중국과 한국이 전부다. 한국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인 KSTAR는 지난 2021년 1억도 초고온 플라스마 상태를 30초 동안 유지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중국은 지난 2006년부터 EAST 가동을 시작하고 플라스마 가동시간을 계속해서 연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403초를 달성한 중국이 기술적으로 한국을 앞섰다고 보기엔 어렵다고 평가한다. 한국의 KSTAR와 중국 EAST의 핵융합 방향성과 기술이 다르고 한국이 기술면에서 여전히 앞서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핵융합 반응을 만들려면 이온을 가열해야 하는데 중국은 이온 대신 전자를 가열하는 쪽에 집중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KSTAR는 핵융합에 실제로 활용되는 이온을 가열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중수소를 플라스마 상태로 바꾸는 건 고온, 고압이다. 플라스마 상태로 바뀐 중수소는 매우 뜨거워서 이를 잘 가둬놓지 않으면 핵융합 장치가 녹을 수 있다. 그 역할을 하는 게 핵융합 장치에 설치된 초전도 자석이다. 초전도 자석 성능이 좋으면 핵융합 장치를 더 뜨겁게 달굴 수 있다는 것이다.
윤시우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핵융합연) 부원장은 “중국 EAST가 쓰는 초전도 자석 성능은 한국 KSTAR에서 쓰는 것에 비해 성능이 70% 수준”이라며 “때문에 KSTAR는 장치 온도를 1억도까지 올릴 수 있지만 EAST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번 실험에서 EAST의 정확한 온도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지난 2021년 실험에서는 7000만도 정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핵융합계에서 1억도는 지구에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기 위한 최소 조건으로 통한다. 태양 수준의 압력을 지구에서 구현할 수 없기 때문에 온도를 태양보다 높게 끌어올려야 핵융합이 가능한 수준의 플라스마 상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태양 중심부 온도는 섭씨 1500만도, 압력은 100억 기압에 달한다.
윤 부원장은 “EAST는 1억도보다 낮은 수준의 온도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데 먼저 적응한 다음 천천히 온도를 끌어올리자는 전략”이라며 “이와 반대로 KSTAR는 1억도에 먼저 적응한 뒤 1억도를 유지하는 시간을 늘리자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핵융합연은 2026년까지 KSTAR가 1억도를 300초 동안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잡은 상태다. 이후 2050년부터 핵융합 발전을 실현하겠다는 계획이다.